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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아리 Aug 08. 2022

AI는 동묘에서 옷을 팔 수 있을까?

이직 후, 오랜만에 외부 기고했던 글을 올려봅니다 :-)


작년 여름 처음 동묘 시장에 갔다. 


연예인 정려원과 친구들이 동묘에서 산 옷을 입고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고향 친구들과 서울 패션을 논하다가 “우리도 그렇게 입어보자!”라며 무작정 1호선을 타고 동묘를 향했다. 전철역을 빠져나와 낮은 높이의 상가 몇 채를 지나니 느닷없이 시장이 펼쳐졌다. 사람, 물건, 배경이 오합지졸인 혼란스러운 풍경. 카테고리도, 장르도, 스타일도 불분명한 곳이었다. 


널브러진 옷가지와 물건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곳에 있어도 되는 물건인가 싶은 것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무질서한 곳에서 우리의 취향은 갈 길을 잃는 듯했다. 그 속에서도 친구들의 의견이 만장일치 모아져 구매한 옷이 있었다. 구매 직전에는 가격이 문제였다. 만 원 이상이면 절대 사지 않겠다며 흥정을 시도했지만 단호한 아주머니의 기에 눌려 제값을 치렀다. 사실 그게 정말 제값인지도 모르겠다.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인 아주머니의 태도에 순간 조급함이 들어 원하는 값을 주고 말았다. 억울한 마음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지금 이 순간 동묘 시장 아주머니와 흥정을 했다면 어땠을까?’ 


SF 소설이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AI의 최종 꿈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 그들은 인간보다 뛰어나고자 사람의 심리를 학습한다. 사람 간의 대화, 일상생활 등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대응 방법을 배운다. 그런 AI에게 동묘는 가장 이상적인 공간일지 모른다. ‘동묘에 간다면’이라는 과제는 AI에게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 한 도전일 것이다. 



기어코 동묘를 찾아간 AI

AI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정말 동묘에 갔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형체든 상관없다.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일 수도 있고 그냥 컴퓨터일 수도 있다. 어쨌든 AI가 심리 변수의 끝판왕인 동묘를 찾아가 옷을 판다고 가정해보자. 학습된 대로 가만히 앉아 정직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할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특징을 파악하고 입고 있는 옷을 무드, 스타일, 핏, 소재 등의 기준으로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동묘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고객군인 노인을 타깃으로 패션과 관련된 심리를 분석한다. 아무런 편견 없이 말이다. 


성별은 남자, 나이는 60대 후반 추정, 피부톤 23호, 키 165cm. 그가 입은 옷의 스타일은 페미닌, 선호하는 색상 그린, 명품 선호, 시계와 선글라스 착용을 봤을 때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신발과 가방은 튀지 않는 색을 선호한다. 대신 상의는 포인트색 셔츠를 입는다. 작은 키를 감출 수 있도록 상의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 노란색 기형학적 무늬가 프린트된  티셔츠 정도(사진 하단 박스)가 되지 않을까.  


결과를 도출해낸 AI는 노인이 가까이 온 순간, 이 옷을 그에게 내민다. 동묘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공통 목적을 노려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며 “이 옷 싸게 줄게요”라고 말한다. 그가 이 물건을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AI의 당연한 실패

구매 여부는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노인이 이 옷을 사지 않을 확률은 매우 높다. 노인 한 사람에게는 AI가 예측하지 못하는 무한한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동묘에 오기 전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 날씨, 시장에 모인 사람들, 이전에 봤던 TV 프로그램, 친구의 패션, 컨디션, 체력 등 노인의 감정을 좌우할 만한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변수는 타이밍과도 연관이 깊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 노인을 만나 시도했더라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1시간 전에 만났다면, 10분 전에 만났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심리를 움직이는 변수는 동묘에서 매출 1위를 찍는 상인도 맞히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도 자주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날이 아니구먼.” 




혼란 속에서 나아가는 AI

사람과 AI는 많이 다르다. AI에게는 특별한 날이 없다. 오류가 일어난 날 다시 새로운 답을 찾고자 다양한 변수를 예측한다. 그리고 또 시도한다. 좌절이라는 시간도 없다. 그들의 시도가 계속 반복되는 이유는 모순적이지만 ‘심리’가 없기 때문이다. 심리가 없다는 건 그들의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가장 강력한 장점이기도 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패배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한 AI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류투성이에 범접 불가 영역이 더 많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장 무서운 점은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도 심리의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오류가 나는 즉시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또 즉시 시도한다.  


그들은 변수를 통해 감정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도출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AI는 기어코 혼란을 찾아갈 것이다.  


혼란을 통해 학습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출처 : 백아리 - AI는 동묘에서 옷을 팔 수 있을까? (패션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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