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한 서양철학적 도그마로부터의 탈피

장자의 인식론적 시각으로

by 보안손님

작년 여름 교양 수업 '철학의 물음들'에서 과제로 냈던 레포트다. 지금보면 얕은 지식을 논문의 형식으로 숨기려 했음이 여실히 보인다. 쓸 때부터 '큰일났다' 싶었다.(깊이 알지는 못하니까) 그래서인지 제목부터 뭔가 복잡하고 있어 보이게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전략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좋은 성적'이라는 목표를 위해 부족한 내용을 형식의 힘을 빌어 은페한 것이니까. 출처 명시가 아닌 부연설명을 위한 각주는 괄호로 처리했다. 조금 길어도 그냥 읽도록.



1. 머리말


지난 수천 년의 인류사와 철학사를 볼 때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리를 찾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철학적 도야를 통해 인간의 행복을 보위하기 위함이다. 다만 이 진리를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명제로 간주하느냐, 아니면 상대적인 명제로 간주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철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진리를 위한 철학의 첫걸음은 이 논쟁의 시발점인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당대 철학자들의 주장과 논거를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고대 그리스를 요람으로 한 서구 문명은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긍정적 독단주의,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부정적 독단주의 그리고 진리는 찾는 중이라는 회의주의 이 세 가지 관점으로 진리를 조망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는 세 차례에 이르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내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때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뭉쳤고,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맹주국으로 부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는 전쟁 승리 이후 평화기를 맞이했다. 상공업은 점차 발달했으며, 그로 인해 민주적 정치 질서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특히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기 민주정의 황금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민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화려한 말솜씨를 가진 이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작동했다. 당대의 그리스인들에게는 민회에서 활약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대부분의 아테네 시민(아테네 민주정의 참정권은 자국민에 해당하는 성인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흔히 ‘제한된 직접 민주주의’라 불리는 까닭이다.) 중 성공을 갈망하는 이들은 당연히 변론술이나 레토릭을 터득하길 원했다.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도 정치적 방어수단을 원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지켜야 할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중산층 이상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민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방패막이 역할을 할 논리를 익히기 위해서라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그 대가를 치르려고 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을 바탕으로 아테네에서는 소피스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상대주의적인 진리관으로 세상을 마주하려한 한 소피스트들은 절대적 진리관에 의구심을 가졌다. 따라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추상적인 것들보다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경험을 중시했으며, 이는 현실 속 인간과 사회를 향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소피스트들을 비판하며 무지의 지, 지행합일설을 주장하며 소피스트들이 옹호하던 것과는 상반되는 절대적 진리관을 제시했고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으로 계승되며 서양철학사의 주류가 되었다. 반면 상대적 비주류인 피론을 계승한 회의론자들은 ‘진리가 어떻고 어떻다.’라는 도그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해불가능성을 전제로 판단을 유보했고, 종국적으로는 부동심(Ataraxia)을 얻고자 했다.

한편 지구 반대편 춘추전국시대, 장자는 물아일체를 통해 이상적 인간군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며 서양철학의 근간이 되었던 언어와 논변을 비판하며 작은 지혜보다는 큰 지혜를 지향했다.



2. 프로타고라스의 진리와 소크라테스의 진리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롭게 현명한 사람’을 칭하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됐다. 한 분야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을 존경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던 단어였으나 상대주의를 전파하는 소피스트들이 득세한 기원전 5세기 말부터는 교육업(業) 종사자를 칭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기록상 최초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인간척도설’을 내세웠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함축되는 이 이론을 매개로 프로타고라스는 ‘절대적 진리는 허상이며 오직 상대적일 뿐’이라고 피력했다. 원래부터 지각 가능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좋다고 느끼면 좋은 것이고, 나쁘다고 느끼면 나쁜 것이기에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다. 이를 위해서 인간의 감각과 경험은 측정 도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적 도그마가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의 감각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철학자인 것이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설파한 프로타고라스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Socrates)다.


소크라테스의 진리관은 프로타고라스로 위시되는 주류 소피스트들과는 완전한 대척점에 있었다. 그는 ‘절대적 진리’를 내세운 철학적 도그마를 제시했다. 진리란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으로, 시공을 초월하는 영구불변의 원리라는 것이다. 그는 감각과 경험을 중시했던 프로타고라스와는 달리 이성적 사유를 통해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 더불어 부,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했다.(사설 학당을 차려 많은 수강료를 취득했던 소피스트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무료강좌를 진행했다.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절대적 진리관의 핵심 테제는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뿐이라는 ‘무지의 지’이다.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으로는 산파법(대화를 통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상대방은 결국 질문자의 문답법에 스스로 신념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후 상대방이 자신의 독단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면 이를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아포리아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난제와 모순을 의미한다.) 을 채택했고, ‘무지의 지’를 깨달은 다음의 단계를 진리에 도달하는 선함의 단계로 생각했다. 즉, 그는 참된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정의가 필요하며 참된 지식에 이른 사람은 고의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았다.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그 사람이 무지하기 때문인 셈이다.


3.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진리


‘절대적 진리가 있다’라는 긍정적 독단론과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상대적일 뿐’이라는 부정적 독단론 외에도 ‘진리를 찾는 중’이라는 철학적 제3의 길이 존재한다. 바로 ‘회의주의’이다. 회의주의는 ‘진리가 있다/없다’라는 독단주의에 반대하여 판단유보를 통해 특정 명제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오직 계속해서 진리 탐구에만 열중할 뿐이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계통으로 내려오는 이성주의적 긍정적 독단론이 주류 철학이라면, 피론에서 시작된 회의주의는 상대적인 비주류 철학이다.


최초의 회의주의자이자 피론주의 회의주의의 창시자인 피론(Pyrrhon)은 기원전 4~3세기경 인물로,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에 참여해 불교를 비롯한 여러 인도 철학을 접촉했다. 그는 회의주의의 핵심 테제인 (1)이해 불가능성과 (2)판단 유보를 정립했다. 시간이 흐른 뒤 아르케실라오스(Arkesilaos)는 소크라테스의 회의주의적 면모를 강조하며 아카데미아 회의주의를 창시했고 카르네아데스(Carneades) 이후 기원전 1세기, 아카데미아가 스토아학파의 영향으로 점점 독단주의화 경향을 보이자 아이네시데모스(Ainesidemos)가 피론을 시조로 하는 피론주의 학파를 창시했다. 피론주의 회의주의는 이후 아그리파를 거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가 완성한다.


섹스투스는 피론이 정립한 (1)이해 불가능성과 (2)판단 유보, 아이데시네모스가 정립한 (3)등치의 원리(정[A]이 있으면 반드시 반[~A]이 있다는 이론으로, 독단적 믿음을 멀리할 것을 말한다.) 외에도 자기 자신이 정립한 진리 탐구의 자세를 고안했다. 당시 회의주의는 스토아학파에 비해 삶의 방식에 실천적 방안/대안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섹스투스는 4가지 실천의 길로 ‘ 자연 또는 본성의 인도, 느낌의 필연적 욕구, 법률과 관습의 전통, 전문 기술의 교육’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인간의 고통은 외부세계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마음의 평안을 위한 회의적 탐구와 진리를 위한 철학적 탐구를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피론주의 회의주의자는 독단적 진리를 부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진리 탐구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다.


섹스투스는 자신 대에 이른 회의주의를 어떤 명제도 긍정/부정인지 모른다는 ‘판단유보의 길’ 내지는 계속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탐구의 길’로 정리했다. 이해불가능성을 바탕으로 판단 유보를 하지만 이는 결코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며, 부동심(Ataraxia) 위해 계속해서 진리를 찾아나가는 회의주의의 목표를 함축한 것이다.


4. 진리를 관망하는 장자의 인식론적 시각


앞서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한다.’라는 긍정적 독단론,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정적 독단론, ‘진리를 찾는 중’이라는 회의주의를 각 1인의 철학자와 시대상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필자는 서양철학의 이 세 가지 입장을 살펴보면서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는 절대적인 데 반해 이를 인식하는 인간의 관점이 상대적일 것’이라는 다소 양립적인 발상 내지는 추론을 해보았다. 때문에, 필자는 이를 뒷받침할 철학적 논거로 춘추전국시대의 도가 사상 동양철학자인 장자(莊子)의 인식론을 차용하려 한다.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중국을 통일한 주나라가 무너지고 전국의 소국들이 힘을 기르며 중국을 분할 점령하던 시대다. 그만큼 국가와 국가 간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을 통일하려는 군주들의 야망이 제자백가 시대를 불러일으켰고, 수많은 사상이 범람했다. 그 가운데 장자는 혼란이 극도에 달했던 춘추전국시대 말기 도(道)를 외치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삶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 시도했다. 장자는 사회 혼란의 원인을 감각적 경험(오감)에 기초한 지식으로부터 비롯된 시비, 우열, 선악 등의 차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이를 보잘 것 없는 ‘작은 지혜’로, 만물평등을 ‘큰 지혜’로 간주했다. 이상적인 삶의 상으로는 외물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적 해방의 상태, 절대 자유의 경지인 물아일체(이때 장자가 사용한 유명한 예시가 바로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의 상태를 제시했다. 차별과 대립, 선악 구분이 없는 이상적 인간군상인 진인(眞人)에 도달하면 비로소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반되는 수행론으로는 장자가 설정한 심재좌망(心齋坐忘)이 있다.(『장자』「인간세편」에 따르면 인간의 감각이나 의식을 잠재우고 마음을 화평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장자가 볼 때 우리 몸의 주체인 마음의 작용에 따라 신체가 영향을 받기에 마음 다스림을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관점이 장자를 논할 때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설명이다. 이렇듯 혼란한 시대에 욕심을 버리고 인간의 행복을 추구했다는 점 때문에 스토아학파나 에피쿠로스학파와 장자를 비교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보편적이었다.


필자는 장자의 도가 사상적 보편성보다는 그가 진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우선『장자』 「대종사」의 ‘진인 이후에 참된 앎이 있을 수 있다[且有眞人而後有眞知]’는 구절을 보면 장자는 이상적 인간군상인 진인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진지(眞知)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장자는 기존의 지식이 진지(眞知)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장자는 그의 저서에서 진리(眞理)라는 표현보다는 진지(眞知)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장자의 관점에서 언어의 유한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을 사용하고 계속해서 논변하는 것은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기존의 앎은 사물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하지 못하고 부분에 치우친 앎에 해당한다. 예컨대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기의 주장만이 옳고 타인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속단한다. 이와 같이 편협하고 고정된 인간의 인식은 인위적으로 성취해내려고 하는 성심(成心)에 의해서이다.(장자는 마음이 외재 대상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즉 마음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기관에 해당한다. 장자는 이를 성심(成心)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장자에 의하면 언어와 논변에 의한 지식, 분별적인 지식, 그리고 성심에 의한 지식은 진지(眞知)가 될 수 없다.”

이처럼 장자는 언어의 유한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그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를 이해하면 그의 생각을 납득하기 용이하다. 전국 각지에서 군웅들이 할거하던 시대 여러 제자백가 사상가들은 난세를 타파할 방법을 ‘언어’라는 도구로 설파했다. 하지만 장자가 보기에 언어로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또 장자는 자신들의 생각만이 옳고 타인의 생각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했다. 바로 이 때문에 장자는 논변을 통한 시시비비가 진지에 도달하는 방법론으로는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장자는 난세를 극복할 진리 전달 도구인 언어에 유한한 한계를 느낀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예컨대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자기의 주장만이 옳고 타인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속단한다.’라는 대목은 ‘우리가 좋다고 느끼면 좋은 것이고, 나쁘다고 느끼면 나쁜 것이기에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했던 부정적 독단론자인 프로타고라스를 향한 비판이 될 수 있다. 또한, 논리적인 반박을 주고받는 논변에도 회의적인 것으로 보아 장자의 인식론적 시각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산파법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즉, 장자는 소크라테스적 긍정적 독단론과 프로타고라스적 부정적 독단론 모두와 어느 정도의 교집합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이는 지엽적일 뿐이다.


그렇다면 장자의 인식론적 시각은 서양철학적 회의주의에 해당하는가?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앞서 설명했던 호접지몽 이야기와 작은 지혜, 큰 지혜를 통해 장자가 서양철학적 회의주의자 또한 아님을 알 수 있다.

장자가 큰 지혜를 얻는 과정에는 작은 지혜에 대한 회의가 수반되기는 한다. 장자는 호접지몽으로 인생이 꿈과 어느 만큼이나 다른지를 언급하며 작은 지혜들을 회의하며 이 때문에 장자의 큰 지혜가 회의주의로 끝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서양철학적 회의주의에서는 절대적 독단론이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장자는 작은 지혜에 대한 문제 제기로 터득할 수 되는 큰 지혜를 선망한다. 작은 지혜에 대한 장자의 회의는 큰 지혜를 얻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장자는 회의주의를 진지를 얻기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볼 뿐, 회의주의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끝으로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는 절대적인 데 반해 이를 인식하는 인간의 관점이 상대적일 것’이라는 필자의 미숙한 사유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장자의 인식론은 서양철학이 진리를 바라보는 삼분법적 프레임에 놓일 수 없다. 굳이 설명하려면 이진경 충남대 교수가 제시한 ‘통일적 상대주의’ 또는 ‘구체적 보편주의’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5. 맺음말


사람들은 흔히 장자의 인식론이 절대적 진리를 옹호하는 긍정적 독단론인가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부정적 독단론인가, 또는 회의론인가를 논리적 언어로 정의하고자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는 절대적인 데 반해 이를 인식하는 인간의 관점이 상대적일 것’이라는 사유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장자의 인식론을 서양철학적 진리관으로 구분 짓기는 힘들다.


대개 철없는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이 이쁘고 남의 자식은 이쁘지 않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뻐 보이는 것들이 타인이 보기에는 이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 제각각의 상대적인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진리 그 자체가 상대적이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진리가 상대적이기에 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판단하고 싶은 대로만 판단하는 확증편향적 경향 때문에 필터버블(FilterBubble)에 갇혀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진리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보다는, ‘어떻게 진리를 인식하고 수양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실천, 실현할 것인가’ 하는 현실적 구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주와 자연은 모두 일원적 질서인 도에 의해 운영되며, 삼라만상의 흐름과 모습은 낮과 밤이나 선함과 악함으로 분리할 수 없다고 보는 장자의 인식론이 현실 세계를 살아가며 진리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참고문헌

박규철(2017), 『그리스 로마 철학의 물음들』, 동과서, 121쪽.

이영문(2017),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론의 도덕교육적 함의」,『도덕교육연구』29, 한국도덕교육학회, 83쪽.

김수정(1993),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설」,『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1992학년도 석사학위 청구논문』,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46~48쪽.

박규철(2017), 『플라톤 철학과 회의주의』, 한국학술정보, 171쪽~179쪽.

황설중(2018), 「신(新)아카데미학파와 피론주의의 차이에 관하여 - 실천이론을 중심으로」,『철학논총』91, 새한철학회, 365~369쪽.

전정화(2017), 「장자의 인식론과 수양론 연구」,『서울대학교 대학원 윤리교육과』, 1쪽.

이진경(2017), 「장자의 인식론에서 상대주의와 보편주의의 문제」,『도교문화연구』39, 한국도교문화학회, 146~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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