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딜레마

시진핑 시대 중국의 자화상

by 보안손님
x9791160406177.jpg 중국 딜레마 표지 이미지 - 한겨레출판

나는 기자들이 쓴 글을 신뢰한다. 나 자신이 그 길을 걷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나, 대개 기자들은 사실의 명징한 전달을 위한 훈련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이 ‘실핏줄’이라 불렀던 글쓰기 능력 말이다. (물론 연합뉴스의 1차 기사를 물어다 어미와 조사만 이리저리 바꾸어 쓴 기사. 광고형 기사, 어뷰징·우라까 이 기사는 제외다.) 거기다 으레 메이저 언론사 기자라고 하면 대개 여러 사건을 거치며 느낀 나름의 소회나 식견도 있을 것이고, 주관 개진 능력이 나름 잘 다듬어져 있을 것이다. 특히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전문기자들이 만드는 기사들은 굉장히 질 높은 자료와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출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관심 가는 책이 생기면 일단 저자부터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언론인이 만든 책(특히 해당 분야 전문기자)은 일단 믿고 보는 편이다. 특정 이해관계가 섞여 있는지는 살피면서. 이 책도 그랬다. 책의 저자인 박민희 기자는 한겨레신문에서 국제뉴스와 외교 분야 기사를 쓰고 있다. 이미 중국에 관해 써낸 책도 2권이나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그 길의 방향성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뢰가 갔다.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최악의 올림픽

서울신문 임병선 기자가 올린 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었지만 결국 삭제되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났다. 낮이든 밤이든 TV를 틀면 생중계가 이뤄졌다.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 이렇게 올림픽에 무관심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예상보다 빠르게 이빨을 들이밀자 미국은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우리나라를 향한 ‘한복 공정’과 올림픽 편파 판정으로 국내 여론은 중국을 더욱 적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굳이 통계 따위를 들이밀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눈 뜨고 코 Beijing'이라는 합성사진이나 이미지화되어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사진이나 기사들로 말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가 조작 및 정치적 중립성 등의 이유로 삭제되며 그 수요가 인터넷 커뮤니티 등으로 옮겨가며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 속보나 이슈를 뉴스 기사를 통해 접하기보다는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보고 접하는 사람도 늘었다. 물론 아직 통계화된 데이터 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과거와 비교해서 ‘중국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는 가?’가 된다. 그 양상은 중립-긍정에서 부정으로 가는 듯 보인다. 과거 중국 관련 밈이 ‘대륙 시리즈’라 불리며 ‘대륙의 어마어마한 스케일…’. 등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와 낙후성으로 인식되었다면 지금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중국의 이미지는 주변국에 갑질하고 민폐 끼치는 국가, 심하게는 중국인 혐오에까지 이르고 있다. (중국에 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를 주제로 논문을 쓰면 인용이 많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관한 인식 변화는 점진적이기보단 급작스러운 측면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반은 안 보적인 측면이 컸으며 최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로 그 경향성이 더욱 가팔라졌다고 본다.



중국은 왜 이렇게 빨리 미국에 도전했는가?

Xi-Jinping-Deng-Xiaoping-China.jpg 시진핑(좌)과 덩 샤오핑(우) - Asia Times

박근혜 정부에서 미국의 사드(THAAD) 배치 요구를 수용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주 달랐다. 흔히 한중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들 했다.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지만, 중국과도 미국처럼 경제 교류를 잇겠다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제정세가 지금처럼 냉랭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정은보다 시진핑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한중관계에도 순풍이 불던 시기였다. 많은 이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 ‘중립국 대한민국’을 꿈꿨다.


하지만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말처럼 도광양회 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이빨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2 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일본에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자 일본이 했던 것처럼 말이다. 불과 1년 뒤 미국은 견제를 위해 경북 상주에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박근혜 정부는 “한일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뒤엎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한일 위안부 합의’이다.(외교부의 공식 외교라인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 비서실장의 일본 쪽 휴민트 통해 일본 총리 관저와 물밑 합의를 했다) 이후 미국은 한미일 군사정보 교류 협정 지소미아(GSOMIA. 19년 여름 논란이 되었던 그 협정) 또한 추진하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2017년 대한민국 대선에서는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도전에 노골적인 맞대응을 했고 그 결과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번졌다. 중간중간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과 정상회담으로 국제적 관심의 추가 옮겨가긴 했지만 2020년 바이든의 당선과 대중 강경책의 계승, 최근 잇따른 북한의 미사일 도발 및 탈레반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정세는 답보 상태에 놓인 불투명 상태이다. 그 과정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중국 공급망 봉쇄 조치 등 최소한 첨단 기술적 측면에서는 냉전으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군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아직 미국이 중국보다 한참 앞서 나가고 있으며, 중국의 섣부른 도전은 다소 무모하고 조금 이른 것처럼 보인다. 중국 GDP가 미국을 따라잡는 것도 약 10년 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의문점은 “왜 이렇게 중국은 빨리 미국에 도전했는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책이 안고 있는 문제의식 중 하나다.


책은 먼저 뉴스에 많이 오르내렸던 중국 공산당 핵심층 일부 인물들의 배경과 생각, 그동안의 행보를 정리해서 보여준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손인주 교수는 현 상태를, 나아가 시진핑의 정치를 ‘황제의 불안, 두 려움의 정치’라고 평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일당 독재의 정치구조를 가진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은 바로 ‘공산당의 붕괴’라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과 달리 민주주의나 삶의 질 개선,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목소리뿐 ‘소수민족 인권 문제’까지 있다. 따라서 중앙정부에 의한 강력한 통제가 필요했다. 물론 시진핑에게는 지금처럼 강력한 통제와 억압보다는 조금 더 부드럽게 정책을 펼칠 여지도 있었으나 그의 숙명적 라이벌, 보시라이의 도전 이후 ‘붕괴’라는 두려움으로 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이는 시진핑만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집권하고 있는 고위급 중국 공산당원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며 2010년대 중동에서는 재스민 혁명으로 독재 정권이 붕괴했다. 그에 맞추어 중국 내부에서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회, 노동, 소수민족 등의 풀뿌리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졌으며 중국 공산당은 이를 ‘붕괴의 씨앗’이라 고 판단했다. 여러모로 북한과 닮아있다. 이러한 배경을 살펴보면 중국은 내치의 안정을 위해 사회적 요구를 힘으로 억누르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내치에서의 문제를 미국에 대한 성급한 도전으로 곧바로 이어버리기에는 어딘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국내 문제 때문에 굳이 미국과 격돌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보다는 거시적 측면의 경제, 안보, 자원 문제가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제국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국은 끊임없이 확장해야 하며 확장의 실패는 곧 국내 경기의 둔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과 자원은 유한하다. 경쟁을 통해 자신의 파이를 늘려야 한다. 거기다 모든 국가의 산업은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나아간다. 우리나라가 농업과 경공업에서 시작해 단기간에 반도체 분야의 강자가 되었듯이 말이다. 그 바탕에는 기업 간의 자유로운 무한 경쟁을 통한다고는 하지만 그 기업이 속한 정부의 외교력과 자본력, 국방력이 원자재 수급과 공급망 인프라를 얼마다 받쳐주느냐에 기인한다. 결국, 본질은 희소자원과 부가가치를 둘러싼 축(Axis)의 대결이며 거시적 측면에서는 각국의 사회적 요구나 인권 등이 ‘축의 대결’이라는 하부구조에 영향을 받는 상부구조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바로 이 요인이 중국이 미국에 이르게 도전한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독재국가 중국과 민주국가 미국의 근본적인 차이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큰 의미에서의 축의 대결이나 이런 거대 담론들이 미국민 개개인의 일상에는 비교적 가시적이고 시의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 내부를 결속시킨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인권 탄압과 소수민족 말살을 자행했다. 강력한 힘으로 내부 불평불만을 억제하겠다는 거다. 이런 인식은 고위급 중국 공산당원들의 생각이기도 하 며, 이에 중국 내 개개인들의 삶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뉴욕 특파원인 김한석 기자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도 내부 단결용으로 기획된 것이었을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제국의 그림자에 가려진 이들


저자는 앞서 언급한 거대 담론만 책에 담지는 않았다. 상황 설명을 위한 기술이었을 뿐, 그가 파고들었던 것은 그 아래 ‘개개인’들의 이야기다. 어찌 보면 책상 앞 학자가 아니라 직접 현장 취재를 하며 발로 뛴 기자 출신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위구르인, 홍콩인, 대만인, 그리고 중국 내 취안 타이가 세대들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국가폭력과 불합리의 개선을 외치며 산화한 그들의 이야기는 항상 거대 담론의 그림자에 가려져 왔다. 신문만 보더라도 외교·안보·경제 분야에 가려져 더 적은 지면에서, 대개 1면이 아닌 뒤쪽 국제면에서 다뤄진다.

SSI_20201203172909.jpg 시나리오 작가 저우샤오쉬안이 유명 방송인 주쥔에 제기한 성추행 소송 첫 번째 재판에 참가하기 전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베이징 AP통신

그 가운데에서도 내 이목을 끌었던 것은 위구르인과 취안타이이 세대 개개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홍콩이나 대만은 국제적으로 받는 주목도가 이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홍콩과 대만은 중국 관련 거대 담론의 가운데에 있기도 했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갖고 있었기에 국내외 매체에서도 더 심도있게 다뤘다. 하지만 위구르인과 취안타이이 세대는 그러지 못했다. 위구르는 이미 중국에 의해 사실상 점령된 지가 오래되었고, 해당 지역에 중국인들이 대거 이주하며 지역에서의 목소리도 작아져 갔다. 취안타이이 세대들은 노동문제와 사회 문제에 관해 연대하고 플랫폼 기업의 착취에 저항하며, 미투 운동 또한 이끌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전국적인 조직이 생길 듯한 움직임이 보이면 중국 공산당은 바로 탄압을 가한다.


우리는 미디어에서 홍콩의 우산 혁명을 이끈 ‘조슈아 웡’이나 중국에 맞서는 대만의 현 총통 ‘차이잉원’에 관한 정보를 쉽게 습득하지만 위구르인이나 취안타이이 세대는 그렇지 않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우산 혁명이나 대만의 현 시국에 대해서, 이를 대표했던 인물이 누구였는지는 어렴풋이 알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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