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onrightsea Jun 1. 2023
즐겁지 않았다.
낭만도 안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 들기에는 나는 이미 고등학교 때 느꼈던 그 두근거림과 설렘이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아 있었다.
대학을 들어와 처음 맞이한 축제는 연인들의 파티였다.
누군가 사랑을 하고 고백을 하고 이뤄지고 설레는 고백과 성년식이 있는 공간. 불빛은 화려했고 저마다 왁자지껄 화려한 조명에 예쁘게 꾸민 여대생들.
그런 그들과 달리 나는 작업복에 압치마에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렇게 실기실 한편에서 시끄러운 밤하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넌 안 가봐? 그러다 선배들한테 찍혀. "
" 내 순번 때만 가면 되잖아. "
옆에서 동기가 말을 거는 데도 나는 무심히 그렇게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을 한 채 한참을 불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눈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한 손에 맥주 캔을 흔들며 서 있는 경윤.
" 내려와. 한잔하자."
계단을 내려오자, 오징어다리를 입에 문 그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내게 맥주를 권했고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맥주를 받아서는 한잔 들이켰다.
"캬~아."
"캬~아~ 시원하지?"
"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는 말없이 등 뒤 건물을 돌아봤다.
" 저기서 우리 실기실이 보여?"
" 응. 낮에는 안 보이는데 밤에는 보여. 가끔 네가 창가에 왔다 갔다 할 때만."
" 신기하다. 넌 창문만 보고 있어?"
" 아니? 네가 창문만 보고 있던데?"
나는 피식 웃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를 향한 두근거림이 점점 줄어들며, 그렇게 나는 감정이 바짝바짝 말라버려 웬만한 것에도 동요되지 않고 있었다.
" 힘든 일 있어?"
" 음? 왜?"
" 좀 달라 보여. 예전이랑."
나는 손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한번 훔치고는 목구멍에 시원하게 털어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매마르게 만들어 갔을까? 주마등 처럼 지나가는 숱한 순간들. 불꽃처럼 피어 오르려던 그에 대한 마음이 내가 꿈을 위해서 잔인하게 잘라버리고 그래도 들불처럼 번지려던 그 마음을 그래 아마도 내 꿈이 좌절되었던 그 순간에 내 열정과 함께 싸늘히 식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간절한 무엇인가를 갈구하면 할수록 실체는 더더욱 망가져 보이니까. 학생회에 대한 어떤 기대도 사람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그렇게 마치 들불처럼 번지듯 불이 붙다 채 피어보기도 전에 꺼져 버렸는지 모른다.
" 넌 어때? 좀 달라 보이는데? 예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말도 많아진 거 같은데?"
" 오. 이제 알아보는 거야? 나 엄청 노력 중이거든. "
" 신나 보여. "
그는 내게 맥주를 들어 올려' 짠'을 권했고 그런 그의 맥주에 나는 응답했다.
" 금방 다 떨어져 버렸네. 아쉽다. "
" 좀 걸을래? 학교아래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내게 팔짱을 끼고 다시 풀어서 내 팔을 자신의 팔에 두르고는 그렇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가로수 사이 지그 재그로 쳐진 전등은 크리스마스때 처럼 반짝 반짝 아름답게 반짝이고 여기 저기서 심야 영업을 알리는 호객행위가 이어진다.
" 저기 멋진 두분 이리오셔서 커플게임에 도전하시죠. 이리오세요."
" 저희 커플 아닌데..."
" 빙긋"
호객의 손에 이끌려 간 곳에는 체대학생들이 서 있었고 줄줄이 테이블과 인형도 보이고 술도 보였다.
" 자 두분 여기 계신 남성분이 여성분을 번쩍 들고 한쪽 다리를 들고 30초이상 버티시면 성공하시는 겁니다. 오래 버틸수록 원하는 상품을 고를 기회는 늘어납니다. "
" 앗 저 게임!"
내가 손을 들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경윤을 바라보자, 경윤이 대뜸
" 도전할게요!"
" 야. 나 무거워."
" 뭐 어때. 그때도 했는데 어차피 저기 저 맥주도 주는데 말이야."
" 자자. 고민하지 말고 오시죠. 저 거기 커플도 오셔요. "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공간이라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도전하는 커플은 없었다. 아마도 여자친구앞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호기롭게 우리만 도전한 줄 알고 도전을 외친 경윤 옆으로,
" 짜식. 같이 하자. 저희도 도전할게요. 누구? 안녕하세요. 천문과 이태석입니다?"
왠 남학생이 인사를 건넸다. 그의 손에는 예전 구내식당에서 보았던 천문학과 퀸가가 앙탈맞게 그의 손을 흔들며 시선은 테이블 위 예쁜 선물 상자로 향해 있었다. 빠른 시간에 그들의 관계를 파악한 나는
" 안녕하세요. 저 경윤이 여사친 이미소에요. "
" 아. 여사친. 자주 뵈요. 너 뭐냐. 저런 미인을 곁에 두고? "
경윤은 그의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오로지 테이블 위 맥주만 바라보고 있었다.
" 이야. 이 두 분 기싸움이 장난 아닌데요? 이번 게임 재밌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자 신사 숙녀 여러분 준비하시고. 시작!"
어느새 몰려든 인파에 애워싸여 우리는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석이는 두 팔을 들어 가뿐히 여친을 안아올렸고 그런 그의 목을 그녀는 가녀린 팔로 휘감아 그에게 폭 안겼다. 우리도 질세라, 경윤이 두다리를 조금 벌리고 키를 낮추자, 나는 그의 목을 감싸며 안겼고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 단단히 조였다. 그러자 경윤은 지난번과 달리 몸을 조금 뒤로 젖힌 채 그 큰 손으로 내 엉덩이를 감싸들었다. 그리고 깍지를 꼈다. 카운터가 시작되고
" 오 두분 다 대단하신데요? 25초... 28초 저 여기 커플은 탈락 안타깝네요."
태식커플은 아깝게 태식이 비틀 거리며 바닥에 발을 내 딛는 바람에 탈락하였다. 하지만 경기를 이미 치뤄봤던 우리는 잘 안다. 무게중심을 잘 잡고 둘의 호흠을 일정하게 고르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것을.
" 오 이 분들 자주 관계하시나봐요. 자세가 예사롭지 않고 안정적이시군요. 잘 버티십니다. 38초!"
사회자의 멘트에 나는 그만 팔에 힘이 풀려버렸다. 왜냐면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이는게 갑자기 생겨서 였다. 그건 경윤과 나 사이 그러니까 경윤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예전에는 미쳐 깨닫지 못했는데 새삼스레 그의 그... 암튼 그것이 더 내게 느껴졌었다. 경윤이 손의깍지를 끼고 허리를 젖힐수록 더 강하게 느껴지는데 사회자의 멘트에 그만 ... 나는 손을 놓아버렸다.
" 아 여자분이 포기하시나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아무튼 두분 축하드립니다. "
이런 내 당황스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윤은 신나하며 상품으로 기껏 고른 맥주캔을 가져와 시원하게 " 캬~아"
소리까지 내며 그 긴 목너머 한잔 쭈욱 시원스레 들이켰다. 하늘의 향해 뻣어 올라가는 그의 목젓은 연신 캔을 집어 삼킬듯 그렇게 꿀꺽거리며 넘어갔다. 몇모금인지 모를 그 벌컥 거림 뒤에야 그는 캔을 따서 내게 주며,
" 자. 자 잠깐만. 내껀 다먹어서. 한 모금만. "
이렇게 말하고 내게 준다고 내민 맥주마저 두 세 모금 더 들이키고는 다시 내게 내밀었다. 나도 피식 웃으며 그가 내민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고는 그에게 다시 주었다. 그러자 그는 연신 남은 맥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 너 술 진짜 많이 세졌네? 전에는 너 술 거의 입에도 안댔잖아."
" 나? 좀 세졌지?"
" 주량이 어떻게 돼?"
" 나 맥주 4캔."
" 뭐야? 너 방금 3캔 먹은건데?"
" 어. 그렇네. 어쩐지 화장실이 가고 싶더라. 잠시만."
그는 이내 바로 옆 건물로 뛰어갔고 내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자 어느새 금새 돌아왔다. 근데 걸음 걸이가 영 휘청 되기 시작했다. 나는 살며시 다시 그의 팔짱을 끼었다. 그러자, 그가 나를 바라봤다.
" 예전에는 말이야. 네가 이렇게 팔짱만 껴도 내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거든."
"그랬어? 내가 팔짱 낀 적이 있어?"
" 왜 기억 안 나?"
" 응. 언제지?"
" 왜 있잖아. 나보고 갈길이 멀다고. 그때 밤에 둘이 걸을 때."
" 둘이 걸었던 게 하루 이틀이야지."
내가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경윤은 나를 내려다보며, 멈칫 그 자리에 섰다.
" 뭘 그렇게 또 정색을 하고 쳐다봐. 가자."
그런 경윤을 돌려세우며 나는 다시 팔짱을 끼고는 천천히 걸으며 담담히 말했다.
" 이제는 좀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냐? 한두 번 본사이도 아닌데."
" 야. 여자 가슴이 막 팔에 닿는데 그게 어떻게 익숙해지냐?"
나는 놀라 팔을 빼고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다시 호주머니에 팔을 넣고 내 팔을 그 사이에 끼운 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야. 친구사이에. 생각해 봐. 나 그때는 한창 피 끓는 사춘기야. "
" 지금은 아니고?"
" 뭐 지금은 열정 가득 청춘이지."
" 그래서 지금도 설레?"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자, 그는 두 볼이 붉어지며,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팔을 빼며,
" 사람 놀리고 그러냐."
이렇게 말하며 종종걸음으로 축제 마켓 사이를 빠르게 걸어 내려갔고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가며,
" 와. 너 진짜 웃긴다. 천연덕스럽게 친구라 그럴 때는 언제고. 거기서, 거기 안 서?"
그렇게 그를 부르며 점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 야 이미소. 이미소"
뒤돌아보자, 영석이었다. 어디서 먹었는지 이미 술이 곤드레 만드레 취해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목례를 하고 다시 경윤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자,
" 어디가. 가지 마. 딸꾹."
영석이 달려와 내 손목을 잡았다. 앞에서 종종 걸음으로 내려가다 곧 내가 뒤따르지 않음을 눈치챈 경윤이 뒤늦게 상황을 목격하고는 달려왔다.
" 선배 이 손 놔요. 술 많이 드셨네요. "
" 전화 왜 안 받아."
단 며칠이었다.
영석의 사랑고백을 듣고 문주의 사랑고백을 듣고 그들 각자의 사랑에서 나는 제삼자로써 빠지기로 마음을 먹고 그리고 담담히 내 갈길을 가자고 마음먹은 지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들이 고통스러워하든 어떤 힘듦을 어떤 아픔을 겪든 더는 내 일처럼 아파하고 공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힘들고 답답했다. 필요할 때 이용당하고 마치 감정의 쓰레기통 마냥 그렇게 취급당하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이 기간은 말이다. 적어도 남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고백하는 이 축제기간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고 온전히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 나 더이상 선배 개인사에 선배의 그 감정놀음에 끼고 싶지 않아요. 그냥. 저 좀 놔두세요."
" 내 개인사에 너 끼운 적 없어. 난 처음부터 네가 하라는대로 학생회원으로써 너를 대할려고 정말 최대한 최대한 노력했었어. 딸꾹. 그냥 곁에 있어 달라는 거잖아. "
" 제가 선배 악세사리에요? 필요할 때 불러다 놓고 무슨 걱정인형도 아니고. 왜 내게 이래요."
" 아니 나도 이야기 들었어. 문주한테.딸꾹."
" 하아. 그럼 들어서 아시겠네요. 각자 감정들은 알아서 하세요. 나이 어린 사춘기도 아닌데."
" 미소야. 이리와봐. 왜 그렇게 정색하는 거야. 도대체 문주에게서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설명을 해야할 거 아냐. "
그는 언제나 처럼 내 손을 당겨 품안에 안으려 들었고 그런 그를 나는 밀쳤다.
그러자 그는 더 강하게 나를 끌어 안았다. 하지만 더 거칠게 뿌리친 나는 그렇게 두 눈에 분노로 이글거리는 마음을 담은 채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렸다. 놀란 선배는 당황하며 내게 손을 뻗었고 나는 다시 한번 거칠게 그 손을 뿌리쳤다.
" 왜... 그래. 미소야. 미안해. "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윤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를 등 뒤로 한 채 내 두 눈을 감싸고 한 손으로 나를 가슴에 품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고, 곧 바닥에 쓰러졌던 선배는 일어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우리를 바라봤다.
" 가자."
경윤은 나를 돌려세워 등을 밀며, 나를 움직였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짝씩 떼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윤이 내 어깨를 감싸며 말한다.
" 아프지 마. 내가 더 아파. "
경윤의 그 말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지금의 내 마음 같아서. 그래서 나는 더 눈물이 났다. 그간의 좌절이 그간의 포기가 그간의 내 꿈들이 차마 놓아지지 못해서 미련스레 꾹꾹 눌러만 담아 오던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휘몰아치듯 왈칵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한참을 걷다 보니 호수였다.
밤조명이 은은하게 내리는 야경은 시원한 밤공기와 함께 두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호수가 벤치에 나를 안혀두고 경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소주두 병과 커피가 들려 있었다. 말없이 커피를 건네 받고는 나는 커피를 조금 남겨 둔 채 바닥에 버리고 소주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경윤은 '풉'하고 웃더니 나처럼 커피를 바닥에 버리고 남은 소주를 잔에 채웠다. 나는 빨대로 음료를 쭉 들이켰다.
알딸딸. 딱 기분이 좋아지려는 느낌.
" 기억나? 그때 권익이랑 정림이랑 우리 2학년 때 여기 와서 막 회의 했잖아. "
아. 기억난다. 나는 잔에 담긴 커핀지 소주인지 모를 쓰디 쓴 그 음료를 연신 빨대로 쭉쭉 들이켰다. 그랬더니 문득 입학식날 기억이 났다. '그 때도 빨대로 먹었는데 빨리 취하라고. 훗.' 문득 그때 생각이 떠오르자, 연신 음료를 쭉쭉 들이켰다. 슬슬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연신 음료를 먹는 내가 신기했는지 빤히 바라보는 경윤을 올려다 보며 나는 웃었다. 그리고
" 응. 기억나."
" 그때 음료수 집은 문을 닫았더라고. 아마 지금 시간이 조금 늦어서 그런가 봐. 잠이 안 올지도 몰라서 다른 거 살려고 했는데 여기 말고는 다 문을 닫아서."
" 고마워. 잘 마실게. "
" 좀 괜찮아졌어?"
" 응. 울고 나니 조금 속이 시원해진 거 같아."
오늘따라 첫모금은 쓰디 쓰고 아프기만 하던 소주맛이 커피향과 잘 어울린다. 빨대를 타고 흘러 들어간 소주는 그렇게 온몸에 퍼져 내 기분을 한껏 산뜻하게 해줬다.
" 선배랑 헤어진 거야?"
" 훗 사귄 적도 없는데 무슨."
" 아 난 너랑 항상 같이 있길래. 괜한 오해 했네. "
" 그냥 학생회 일 때문에 계속 같이 다닌 거야. 신입생이 나밖에 없으니까. 선배가 유독 챙긴 거고. "
" 그 선배 말이야."
" 응? "
" 근데 그 사람은 아닌 거 같던데? 아까 보니 왠지..."
" 아냐. 그 사람 다른 사람 좋아한댔어."
" 풉."
" 가끔 보면 넌 정말 사람 잘 아는 것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남자의 심리는 잘 모르는 것 같아. "
" 야. 내가 남자도 아닌데 남자심리를 어떻게 아냐? 그것도 한 번도 사귀어 본 적도 없는데?"
" 네가?"
" 응"
" 너 주변에 남자 많았잖아. "
" 그야 다 남자 사람들이지. 그들도 여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그냥 사람이니 사람으로서 공감하고 이해하고 느끼고 하는 거지. "
" 아. 그럼 이성적으로는?"
경윤은 그렇게 말하며, 두 팔을 벤치 의자에 대고 내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 왜 안 보여? 오늘도 렌즈 안 썼어? 어디 봐."
내가 경윤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렌즈의 착용유무를 확인하려 들자, 웬일인지 가만히 눈알을 굴리며 얼굴을 대고 있는다. 붉어진 두 볼. 그 위로 얼굴의 열기가 내 손바닥으로 느껴진다.
" 응? 열나네? 아파?"
" 풉"
그런 나를 보더니 주먹으로 입을 가린 채 경윤은 웃으며 몸을 뒤로 젖혔고,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음료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를 바라봤다.
" 야. 정말 너 내가 졌다."
그는 연신 웃어댔고 그런 그에게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숙이고 신발로 바닥을 긁어댔다. 그러자,
" 축제 때 말이야. 그때 "
" 언제?"
" 왜 내가 너한테 오라고 했을 때."
" 아 고2 때?"
" 그때 왜 그냥 갔어?"
" 음. 그냥. 생각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왜?"
문득 그때의 그 혼란스럽던 생각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려 했다.
" 나 그때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
"응? 무슨 말? 지금 해."
" 그럴까? 그래도 돼?"
" 응"
" 음. 아니다. 지금은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 뭔데. 그냥 해."
" 음. 사실 너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
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 응?"
" 나 너 좋아해. 이미소."
내 가슴은 미친 듯 요동치기 시작했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내게 손을 가져와 내 볼을 쓰다듬었고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자, 그가 나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그 넓은 가슴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 좋다."
" 응."
그가 놀라서 나를 밀며 바라봤다. 그리고 재차 물었다.
"응? 뭐라고? 나 방금 잘 못 들은 거 같아. 다시 말해줘. "
정말 순식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 심장고동 소리에 취해 나는 목구멍에 담겨 있던 말을 토해내고 말았다.
" 응"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너무 신나 하며 하늘을 향해 점프하며 '예쓰' 하고 소리쳤고 그리고 다시 내 곁에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 너도 내게 마음이 있었던 거야?"
" 으응."
그는 유달리 깊고 반짝이던 그 두 눈으로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방긋 웃는다.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리고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내게 입을 맞춘다.
그의 뜨거운 콧김이, 입김이 내 얼굴에 전해지고 급기야 전율이 온몸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대고 터질 것만 같았다. 파르르 떨리던 손끝을 들어 그의 볼로 가져다 대자, 그는 볼을 슬슬 문질러 왔다. 그러며 더 깊게 키스해 왔다.
내 몸은 온통 사시나무 떨 듯 두근대는 심장과 같이 함께 떨려왔고 곧이어 기운이 빠진 채 휘청거렸다. 그러자 그는 팔을 올려 내 몸을 바짝 붙였고 내 두근 거리는 심장 소리가 전해진 건지 내 가슴에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댔다.
" 두근댄다."
그는 입을 때고 속삭이듯 말하고는 다시 내게 키스를 했다.
그러며 벤치를 잡고 있던 내 손을 들어 그의 가슴에 올려두었다. 그의 가슴은 미친 듯 요동치고 있었다.
듣는 소리마저 숨이 멎을 만큼. 요란하도록.
그의 가슴에 가져다 두었던 손을 들어 그의 목에 휘감자, 그는 나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리고 내게 속삭였다.
" 이 밤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