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양평

by moonrightsea

" 어디 가요?"

" 양평"

" 양평이 어디지?"

" 있어. 네가 말한 서울을 벗어난 한적한 곳"


자취방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가 어디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문득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강하게 들었다. 지하철 역이 가까워질수록 부딪히는 어깨가 많아질수록 주말임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 재촉되는 걸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서울은 낯설기만 하고 너무 머리가 아프기만 했다. 가는 길마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 걸어갔고 1분 1초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지하철을 타면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그 콩나물시루 같은 그곳에 빼곡히 끼여 역에서 내릴 때면 번번이 내가 내리고자 하는 곳에서 못 내리거나 휩쓸려 더 가서 내리기도 일쑤였다. 그런 서울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에는 어느새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이 달리는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하늘의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여유조차 없이 그렇게 변해 있었다.


그런 서울을 조금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나는 문득 그에게 서울만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사람이 좀 없는 곳이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터미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평으로 향하는 표를 끊고는 그렇게 양평행 버스에 올랐다. 아침 일찍부터. 마치 출근하듯.




차가 막힌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자 비로소 보이는 풍경. 낮은 산세들이 연이어 이어지며 몇 번의 고갯길처럼 보이는 길을 굽이 굽이 지나 그렇게 도착한 터미널에서 그는 택시를 타고는

" 양평언니해장국요."

" 풉"


" 왜?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

" 아뇨. 쓰린 속에는 딱인 거 같아서요. "


가게에 도착해 입구로 들어서자 약간은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안에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다들 알고 왔는지 아니면 원래 이곳은 이렇게 바쁜지 쉼 없이 몰려드는 주문에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귀퉁이 구석진 자리로 자리를 잡은 우리는 시원하게 한 그릇을 말없이 깍두기 국물까지 얹어 가며 먹고서야 그렇게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 여기 오면 보통 어디 가요?"

" 호수?"

" 아... "

나는 발을 한번 내려다봤다. 오래 걷기는 조금 불편하겠지? 그래도 뭐 가봐야지.




그의 손에 이끌려 양평호수에 도착하자, 호수인지 바다인지 끝이 안 보이는 그곳이 눈에 들어왔다.

" 이렇게 큰 호수가 있었어요?"


나는 이렇게 말하며 자연스레 힐을 벗어 들어 손을 뒤로 한채 앞을 바라보고 섰다.

그러자 그가 내게 손을 내밀어 힐을 가져가며,

" 정말 맨발로 걸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 난 안돼. 신발 들 손이 없거든. "

그렇게 말하며 한 손에는 내 힐을 한 손에는 내 손을 덥석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오빠 보통 남녀가 관계를 하면 관계를 한 후에 뭐라고 그래요?"

" 응?"

" 관계 후에. 뭐라고 그래요?"

" 음 사귀자?"


" 아니 그런 거 말고 내 말은 자고 나서 말이에요. "

" 뭐 사랑한다?"


" 아니 그런 거 말고 음 그니까 직접적인 행위 뒤에 어떤 대화를 나누냐고요."

" 음. 말이 필요해?"

" 필요할 수 있죠. 서로의 기분이나 느낌이나 감정이나 이런 걸 물어볼 수 있잖아요. "

" 음... "


그는 내 질문에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 걸로 봐서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했던 거 같은데?"

" 예를 들면?"




" 뭐 나 같은 경우 입을 맞춘다든지 아까 말한 것처럼 눈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한다던지 아니면 바로 씻고 급하게 준비해서 나가고 그랬던 거 같은데?"


" 흠. 그래서 남자들이 그런가?"

" 뭐야. 꼭 남자 여럿이랑 자 본적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 칫. 알면서. 그냥. 어제 오빠랑 그렇게 자고 나니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그렇게 아프게 했던 선배가 뒤돌아 섰을 때 나는 정말 모진 말만 왕창 쏟아냈었거든요. "


" 모진 말? 왜 그랬어?"

" 그때는 그게 뭔지 모를 동정심도 연민도 아닌 감정이었는데 막상 관계를 하고 보니 별거 없더라고요. 그렇게 겁을 먹을 것도 아니었는데 아프기만 하고 두근대지도 않고... 근데 오히려 사귀자고 한 남자친구랑 했던 키스, 그의 스킨십은 더 설레고 더 달콤하고 더 좋았거든요. "


" 음 그건 상대가 너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

" 그럴지도 모르죠. 그 선배는 끊임없이 저돌적으로 저를 밀어붙였고 남자친구는 정말 천천히 다가왔었는데..."


" 난?"

" 음... 오빠는 뭐랄까?"




한참을 걷다 고개를 들어 이마를 찌푸리며 고민을 하다 그를 올려다봤다.

" 우와 오빠 진짜 키 크네요? 내가 힐을 벗어서 그런가?"


"야. 말 돌리지 말고. 궁금하잖아."

" 풉. 음. 오빠는 좀 더 노련하고 부드럽고 더 천천히 때로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다가온 거 같은데요?"

" 한마디로 내가 스킬이 좋다?"


" 뭐야. 칫. "

" 음. 이런 얘기가 나랑 잔사이에 불편할 수도 있는데 첫 경험은..."


" 하나도 안 불편한데? 우리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요?"


" 풋. 그래. 그럼 네가 원하는 부분만 말해줄게. "

" 나랑 첫 관계를 가졌던 그녀는 처음에 너무 힘들어했어. 아파서. 내가 넣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온통 불편해하고 힘들어했거든. 그래서 몇 번을 실패했어.

그래서 둘이 술을 진탕 먹고 정말 큰마음먹고 시도를 했는데 몇 번을 시도를 하다 보니 나도 조심하게 되더라고. 너무 아파하니까.

내가 나쁜 놈 같고 나는 그렇게 좋은데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하니까 왠지 죄짓는 기분이랄까? 그런데도 그녀는 내게 더 하기를 원했어. 그래서 희한했지. 그래서 최대한 조심조심 다루고 최대한 그녀의 기분이나 그녀가 반응하는 것에 맞춰서 그렇게 진도를 나갔어. "


" 근데 왜 헤어졌어요?"

" 야. 에이씨. 나 말 안 해."


" 에이 삐진 거예요?"

" 삐진 거 아냐. "


" 맞죠? 그 대학 때 사귀고 오빠 방황하게 만든 언니?"




" 이야. 너 어떻게 알았냐?"

" 후훗. 그쯤이야. 그러니 그렇게 이 잘난 오라버니 열심히 달리던 열공인생을 정차시켰겠죠. "

" 뭐 사랑이 그런 거니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고."


그는 마치 옛일이 떠오른 듯 하늘을 한번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런 그를 보며,

" 근데도 묘한 건 사람과 만나면 어떤 사람은 만날 때부터 막 심장이 두근 대고 손깃만 스쳐도 좋은데 우리는 그런 것도 아닌데 전 어제 좋았거든요. 지금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고. "


" 뭐야. 내가 인상을 그렇게 강하게 안 심어 준거야? 실망인데."

" 아니 내 말은 영화나 이런데 보면 막 강렬하게 막 벽에 붙이고 막 격렬하게 끌어안고 하잖아요. "

" 음 그거야 어떤 분위기에서 만나느냐 얼마나 강렬히 서로를 원하느냐 차이도 있지. "


" 어제는 우리도 꽤나 강렬했는데?"

" 야 그 정도는 무슨 푸풉. 무슨 우리가 불륜커플도 아니고 헤어졌다 다시 만난 사이도 아닌데. "

" 아 그 정도 되면 그런 관계가 돼요?"


" 뭐 그럴 수 있지. 불가항력적으로 애절한 관계에서 만난다면 더 애가 타지 않겠어?"

" 아닌 거 같은데... 오빠 숨소리 장난 아니었는데.. 오빠 꾹꾹 참는 거 내가 다 봤거든요?"

" 그거야 나도 오랜만에 했으니까. 훕."


" 응?"

" 에헴. 나 나름 바쁜 몸이야. 눈코 뜰 새 없이 수술에 회진준비에 얼마나 바쁜데 몸이 녹초가 돼서 다니는데 겨우 틈틈이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기분 풀어주고 그러고 영화 보고 싸우다 삐지고 기분 풀어주고 아휴. 연애 힘들다. "


" 오빠 알고 보니 참 힘들게 사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