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그와의 대화

by moonrightsea

" 뭐가. 다들 그렇게 연애해. "

그는 마치 무엇인가 단념이라도 한듯 그렇게 말했고 그런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 보며 걷다 나는


" 근데 그러기에는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 같아요."

" 오빠가 나한테 남자에 대해 한번 설명해 준 적 있잖아요. 근데 그걸 말로만 들었을 때는 도통 감이 안 왔는데 어젯밤에 오빠를 겪고 보니 조금은 아주 쪼금은 이해될 거 같아요."


내 말에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돌려세워 내 손을 잡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 음 바로 이 순간 같을 때."


이렇게 말하며 나는 돌아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 응? 뭐가?"

순간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그런 그를 나는 재밌는 걸 발견한 표정으로

" 동시에 다른 생각을 못하잖아요. 풉. 다 보이잖아요. "


" 뭐... 가 보인다는 거지?"

" 좀 전까지만 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이며 걷고 있었는데 어젯밤처럼 야한 이야기나 장면에 대해 말하면 신경이 온통 거기에 집중되는 거 맞죠?"


그러자, 그는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나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채 알지 못했던 부끄러워하는 모습. 언제나 나보다 많이 알고 당당하고 여유 있고 노련해 보였던 그가 처음으로 그의 본능을 들킨 표정이 내 눈에 잡힌 순간.

" 풉. "

" 크하하하하. 이런 솔직한 대화는 사실 여자들과 나누기 힘들거든. 더구나 사귀는 연인사이에는 더더욱. "




" 왜요? 편하게 서로 말할 수 있잖아요. 이것도 서로 알아가는 건데. 예를 들면 어떤 체위가 마음에 든다. 어떻게 만지는 게 더 좋다. 관계 후 오늘의 기분이나..."

" 쉽지 않지. 그건 너무 복잡한 문제야. 흠."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말했다.


" 예를 들면요?"

" 예를 들면 네가 오늘 무지 어떤 일로 기분이 안 좋아서 무지하기 싫어. 근데 나는 정말 정말 힘들게 시간을 냈고 정말 오랜만에 여자 친구를 보자 미친 듯 본능이 꿈틀거려. 근데 여자 친구의 기분은 내가 아무리 달래도 풀어지지를 않아. 근데 난 미치겠어. 어떻게 할래. 네가 여자라면?"


" 음. 저라면 기분이 왜 안 좋은 가에 따라 다르죠. 머 오빠 때문이면..."

" 아니 그런 서두 다 집어 치고 이유불문하고 오늘은 도저히 하기 싫은데 말이야. "


" 음... 저라면... 이거 꽤 고민되네요? 만약에 제가 그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저는 하겠어요. 물론 그냥 기계적으로 예의상. 뭐 썩 하고도 생각해 보니 기분이 안 좋겠네요."


" 근데 보통 여자들은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진짜 완강히 자신의 기분만 강조한 채 거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처럼 선택하기도 하지.

근데 봐봐. 입장을 바꿔서 네가 남자라면 어떨 거 같아? 저렇게 여자 친구가 정말 싫어하는데 너는 미칠 거 같아서 자기 자신이 싫어지고 실망스럽고 그런데도 미칠 듯 몸이 제어가 안 돼서 정말 하고 싶으면?"




불현듯 그 순간 나는 왜 영석이 생각난 것일까. 나는 길을 가다 멈칫. 멈춰 서 버렸다. 아 그때 그는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 음. 이제 생각해 보니 그 기분 알 것만 같네요. 그때는 미처 그 선배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는데... 좌절스럽고 혐오스럽고 그런데도 좋고?"

" 그렇지. 근데 웃긴 건 하고 나면 좋다는 게 더 크다는 거야. 그 만족감이. 남자들에게는."


" 그건 또 무슨 말이죠? 그렇게 마음이 힘든데? "

" 그래서 남자가 어쩌면 여자들에게 단순하다는 소리를 듣는 걸 수도 있는데 그만큼 본능이 강하게 몸을 지배하는 거지. "


" 근데 의외로 안 하는 남자들도 많잖아요. 친구들 보면 회사 입사한 남자 친구가 일이 힘들어서 막 안 하고 정말 만나면 밥 먹고 차 마시고 피곤하다고 바로 집에 가거나 드라마 보면 왜 일에 찌든 남편이 관계를 막피하고 그런 경우도 더러 있던데. "

" 뭐. 본능도 참다 보면 익숙하게 사그라들잖아? 나처럼?"


" 아 남자들은 그렇구나."

" 여자들은? 어떤 데?"

"음 여자들 세계는 음 그거보다 훨씬 복잡해요. "


"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왜 말을 두리뭉실하게 해."

" 음. 뭐랄까. 수박 겉핥는 느낌? "




" 그건 또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 사실 여자들은 관계직전까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도 관계에서는 이야기가 끊겨요. 거의 불문율처럼. "

" 응?"


" 사실 사회적으로나 뭐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나쁘게 안 좋게 보니까. "

" 그래도 친한 사이에는 할 수 있잖아?"


" 할 수야 있죠. 그래도 들어도 그냥 듣기만 하고 못 들은 척하기도 하고 더는 자세히 말도 안 하고. 오히려 오빠랑 이야기하는 게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거 같은데요?"


"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네. 남녀문제는 서로 간의 이야기로 끝내야 하니까."


" 근데 너랑 이런 이야기를 다하고 신기하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 그러게요. 제가 오빠랑 이런 이야기를 다하고. 후훗."


언덕을 바라보자, 레스토랑이 보였고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 발 괜찮아?"

레스토랑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 그는 고개를 숙여 내 발을 들어 신발을 벗긴 뒤 발을 확인했다. 스타킹은 고가 나갔고 발에는 흙투성인데도 그는 아랑곳 않고 물티슈로 연신 내 발을 닦았다.


" 왜 그래요? 이러지 마요. "

" 가만있어봐. 돌이라도 있으면 상처 나."


어느새 그의 곁에 웨이터가 다가와 한참 바라보다 이내

" 으음.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떤 것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 아 잠시만요... "

그는 웨이터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연신 다른 발도마저 닦았고 그리고 일어나 자리에 앉아서는 메뉴판을 보고 이것저것 고르는가 싶더니,

" 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다시 부를게요."


이렇게 말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 보기와 다르게 오빠진상 손님이군요?"




메뉴판을 열심히 보던 그가 무심한 듯


" 어딜 봐서 내가? 신중히 하려는 거지. 어디 보자. 여기는 이거 이거가 대표메뉴고 이건 맛이 특이하게..."

그사이 열심히 메뉴판을 본 그는 열심히 분석을 한 후 마치 브리핑을 하듯 내게 메뉴를 추천하고 있었다.

" 오빠. 오빠아"

" 응?"


" 여기 회사 아니에요. "

" 응? 그냥 편하게 먹고 싶은 거 골라요. 난 이거. 오빠는요?"


" 아. 습관이 돼서. 음. 그럼 난..."


그러고도 그는 메뉴판을 연신 들여다보며 뭘 먹을지 어떤 재료를 쓰는지, 열심히 들여다보고 주변의 테이블이 뭐를 먹는지 확인을 하고서야 메뉴를 골라 주문을 했다.

" 안 힘들어요? "

" 뭐가?"


" 아니 그렇게 깐깐하게 살면."

" 응? 내가? 그랬어?"


" 네. 아주 매우 엄청"

" 아. 크하하하. 미처 몰랐네. 내가 그렇게 사는지. 나는 나름 편하게 사는 편인데? 집에서도 봤잖아. 막 해 놓은 거. "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그의 냉장고에는 몇 안 되는 품목의 물품들이 정확하게 1개씩만 있고 거기에 초코파이 5개, 맥주 6캔, 소주 6병, 생수 6병, 계란 10개, 냉동실도 얼음 1팩, 아이스크림 5개, 모두 각이 잡혀 있었다. 개수가 마치 정해놓은 것처럼.

거기에 책상은 어떠했나.

보통은 옆으로 쌓아둬도 시원찮을 그 많은 책들이 도서관 마냥 주제별로 분류해서 정리해 가지런히 책장에 꽂혀 있었고 모니터 화면에는 일렬횡대로 포스트잇은 요일, 주간, 날짜, 달별로 가지런히 정리해서 색색이 붙어 있었으며, 매번 체크리스트처럼 체크되어 다음 일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 책상에 불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찾아보려면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조차 없을 만큼 간소하고 간결한 짐들. 마치 여기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 맞나 싶을 만큼 옷도 정장 5벌, 와이셔츠 10벌, 운동복 5벌.... 뭐 어제 내가 입을 옷을 뒤지다 본 그의 집은 그저 내가 머무는 그곳과 비교하면 비교도 안될 정리정돈의 신이 사는 공간이었으니.


" 혹시 결벽증 있어요?"

음식을 먹다 그는 크흡하며 뱉어 냈다.

" 그 정도로 내가 완벽해 보였어?"


나는 천연덕스럽게 스테이크를 썰며, 한입 베어 물었다.

" 아뇨. 전혀. 네버. 뭐. 사람이 살고는 있나 싶은 정도? "


" 왜? 나 살고 있잖아? 거의 숙소에서 지내지만."




" 뭐 추억하는 사진이 있기를 해. 신발이 다양하기를 해. 취미로 모으는 물건이 있기를 해. 도대체 옷에 관심이 있기를 해. 있는 거라고는 죄다 경제서적이나 의학서적에 돈은 다 어디 쓴 거예요?"


" 안 쓰지."

" 그럼요? 데이트라도 하잖아요."

" 음. 데이트할 때는 말이야. 그게. 미란이는 항상 자기카드를 썼어. 쪽팔린다고. 그래서 밥 먹을 때는 내 카드 쓰고 나머지는 미란이 카드를 썼지. "


" 헐. 헤어질 만 하구만. 짠돌이."

" 아닌데... 그런 건. 그냥 내가 미란이랑 일 말고는 관심이 없었어."


" 뭐. 술도 사다 놓았더구만. "

" 그거야. 최근에 헤어지면서.. 아 갑자기 왜 그래. 입맛이 없어질려잖아."


그는 갑자기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놨다.

" 인제 좀 인간미 있어 보이네. "

" 어쭈?"


나는 연신 스테이크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는 물을 한 모금 먹고 말했다.

"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사람이.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 보고 필요한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고민해 보고 가져도 보고 그러고 살아야지. 안 그래요?"


그렇게 말하며 연신 스테이크를 썰자, 그가


" 니 눈은 뭐냐?"




이렇게 말하며 손을 뻣어 내 눈꺼풀을 벌렸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보고는 푸하하하 또 그렇게 웃는다. 그러더니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었다.


" 난 말이야. 분명하고 정확한 게 좋아. 그리고 간단해야 해. 답이 보여야지. 너무 많은데 신경을 써버리면 시간이 아깝잖아. 난 그게 제일 싫어.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


그의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묘하게 나와 그들이 다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명확하고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했던 사람.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긴 시간을 그렇게 외롭게 그들 스스로와 사투를 벌이며 수많은 유혹을 견뎌왔는지를. 그리고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버리고 또 지켜왔는지를.


" 그래서 오빠가 그렇게 살아서 원하고자 하는 게 뭐예요?"

" 음. 그건 아직은 비밀인데."


" 음? 있긴 하고요?"

" 음. 방금 생각났다.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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