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한 첫 기억은 그녀가 아역시절 찍었던 CF이다. 의류 브랜드'언더우드'(맞는지 모르겠다)의 CF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꼬마 여자애를 본 순간, 심쿵한 느낌이 들었던 내 자신에게 놀랬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어렸지만, 그래도 청소년이었던 나이에 초등학생을 보며 심쿵한다는게 조금은 불편했다. 그저 귀엽고 아이처럼 이쁘다는 느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로리타같은 느낌이 싫어서 한동안 그녀를 멀리했다.
그렇게 기억속에 잊혀져 갈때 쯤 그녀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 왔다. 내용이 무엇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바로 표를 끊어 영화를 봤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녀의 연기들은 기억난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그래서 세상에 봤을때는 삐뚤어지고 어두운 여고생의 모습이 화면 가득 느껴졌다. 전형적인 연기이지만, 전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얼굴의 그늘과 연기톤 때문이었다. 한참만에 다시 본 그녀는 더 이상 어린 시절 마냥 밝은 예쁜 어린이가 아닌 찬란하지만, 슬프기도 한 노을 같은 소녀가 되어 있었다. 너무 일찍 커버린 아이같았다. 아마도 그녀가 일찍부터 아역 배우를 했기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녀 자신도 일찍 철이 들어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그늘이 보였다.
이 영화는 김민정배우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당시 보고 싶었던 영화가 매진 되어서 시간 때우려고 봤던 영화이다. 아무 기대없이 보다가 그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헙'하며 소리를 내었다. 태양빛을 측면으로 받은 그녀의 얼굴에 숨이 막히는 느낌을 처음 받아봤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여배우 얼굴을 보고 그런 감정과 반응을 보인 것은 그때가 유일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미모를 온갖 수사여구로 떠들 수는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진부하게 느껴져 생략한다. 다만 아름답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난 그때 느꼈다. 단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을 뿐이다. 그게 이 영화에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만 기억나고 내용, 주변인물, 대사 그 어느 것 하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한석규가 "댓글"농담을 하던게 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는 정돌까?
그리고 한동안은 또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며 그녀를 다시 보게 된건 예능에서 간간히 보이는 그녀의 사랑스러움 이었다. 몰카에서는 자신이 전생에 공주였다고 하자 너무 좋아하며, 어쩐지 자신이 그럴것 같았다고 재잘재잘 이야기 하는 모습은 어렸을적 그 심쿵과는 다른 심쿵이었다. 예능몰카가 어느정도 짜고 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설사 그것이 연기였더라도, 그녀의 사랑스러움은 치사량이었다. 정말로 믿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 자체로 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술이 실룩거렸다. 그리고 해피투게더에서 "사랑의 초인종"을 불렀던 영상이 너무 좋아 저장을 해서 가끔 꺼내 보곤했다. 노래를 시키자 머뭇거리며 부끄러워 하던 그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자 내 심장도 덩달아 벌떡였다. 좋다를 넘어서서 그 순간만큼은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안다 주책인것을 너무 뭐라 하지 마시길...)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무형의 사랑스러움이 유형화되면 김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 모습은 내게 오래 각인이 되었고, 앞에서 언급했듯 다운받아 편집해서 핸드폰에 넣어 놓고 유학시절 외롭고 슬플때마다 꺼내 보곤 했다.
이 영화는 내가 아는 한 김민정의 현재까지 가장 나중에 찍은 영화이다. 뭐랄까... 영화라기 보다는 김민정의 화보집 같았다. 내가 보고 싶었던 김민정의 모든 모습이 담겨있었다.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섹시한 ... 그 모든게 영화 내내 흘러 나오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영화도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난다. 이쯤되면 그녀의 미모가 그녀의 연기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출연한 그 어떤 작품에서도 그녀의 연기를 지적한 기사를 찾기란 쉽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김민정만큼 탁월한 딕션과 변화무쌍한 감정처리가 자연스러운 배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근데 언론, 팬들, 심지어 나조차 그녀의 연기보단 외모가 먼저 들어온다. 그래서 이런 외모 칭찬이 미안해 질 지경이다.
드라마를 잘 안보는 나로서는 드라마를 주로하는 그녀의 작품을 볼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보시던 것 우연히 같이 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악마판사'였다. 정확히 그녀가 극중 자신의 보스(바지사장)인 '서선생'을 조용히 불러내 따귀를 때리며, 머리를 박게 하는 장면이었다. 처음이었다. 그녀의 외모보다 연기가 보인것이... 천박한 사이코패스역를 캐릭터성이 아닌 연기로 만들어 보여줬다. 사실 이런 역할은 뭔가 소위 '연기파 배우'라고 불리는 전도연, 문소리, 염혜란같은 사람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연기파가 했다면 이런 느낌이 나왔을까? 그녀의 만화적인 외모(비현실적)가 그녀의 클래식한 연기와 만나면서 그 묘한 이질감이 그녀가 등장 할때마다 연기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녀 특유의 낮은 톤과 높은 피치도 그 언밸런스함 속에 이 '이상한'(미스터리하다고 하기엔 별로 고급스럽지 않은)여자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마치 김혜수가 영화 타짜의 정마담을 맡았을때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다. 생각해 보면 두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아역부터 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며,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외모만 거론된다는 안타까움까지... 근데 왠지 알것만 같다. 세상에는 이렇게 예쁜 사람들이 흔치 않다. 그래서 대부분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연기가 좀 그럴때면 사람들은 그 배우가 극중 인물이기 보다는 그 여배우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처럼 연기를 잘해버리면 아이러니컬 하게도 현실성이 생기며 이질감을 느낀다. 더 현실적일수록 더 어색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만화처럼 약간의 허구성과 총천연색같은 설정이 들어가면, 오히려 이들의 외모와 연기력이 설득력을 갖는다. 여기서 연기가 부족하면, 그 황당한 설정으로 인해 가뜩이나 전체적으로 붕 뜨는 장면에서 연기의 어색함은 배가 된다. 하지만 그녀들 처럼 연기를 잘하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설정의 설득력은 배가 되고, 장면은 개연성을 갖는다.
누가 내게 김민정의 가장 좋았던 연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난 항상 드라마 아일랜드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는 잘생긴 현빈과 비현실적 느낌의 이나영, 독특했던 김민준에 비해 김민정이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다. 여기서 김민정은 어렸을때 잘 나갔던 아역배우였지만, 인기가 떨어져 성인배우를 하게 된 인물을 맡았다. 그녀는 성인배우마저도 잘 안되서 출연을 위해 감독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거기에 가족 전부가 그녀에게 경제적으로 빌붙어 산다. 나같으면 벌써 안좋은 생각을 몇번이나 했을 상황일텐데 그녀는 항상 씩씩하다.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지 않다. 씩씩해야 되서 씩씩할 뿐이다. 아역배우를 하며 살았던 그녀는 제대로 된 학교 생활도 못했기에 입도 생각도 거칠다. 이러한 것들이 그녀의 자존감을 낮출대로 낮추고 그런 그녀를 주변은 이용해 먹기 바쁘다. 그러나 그녀는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 그들이 이용해 먹는 것을 알면서도 당한다. 버려지는 것보단 이용 당하는 것이 나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현빈이 나타난다. 호감이 아닌 일생 처음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위로를 받았을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자러 갈래요?" 드라마 아일랜드에서 나는 왠지 그녀가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김민정은 사실 그때 최고로 잘나가는, 아역출신중에 보기 드물게 성공한 케이스라서 어쩌면 이 캐릭터가 이해가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난 여기서 그녀가 왠지 그녀 자신을 연기 하는 것 같았다. 비록 말투나 마인드는 설정일지 몰라도 그녀가 일찍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부침이, 언제던지 잊혀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이 캐릭터를 통해 느껴졌다. 그녀가 "자러 갈래요?"하는 대사를 뱉는데 순수하게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캐릭터가 가진 그 모든 설정이 연기로 구현 되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반한 남자에게 배우지 못하고 인기도 없어진 아역출신 성인배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이었다. 그 절절함이 느껴져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겐 이 순간이 그녀의 최고의 연기이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그녀가 인스타에 자신의 블로그를 소개 하고 그 글을 읽었을때 문득 그녀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화보에 쓰인 글들은 전문적이고 시적이다. 하지만 아마추어인 내게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보았던 추억이 있기에 그 기억을 꺼내보며 이야기 하고 싶었다. 만약 그녀가 혹시 이 글을 본다면(그럴리 없겠지만)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장하다고... 열심히, 그러나 그녀다움을 잃지 않고 지금껏 우리들 앞에 있어줘서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 무엇을 하던지, 잘 되던지, 잘 안되던지, 그녀는 언제나 우리에게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