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다시 만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에 대하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내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 영화는 처음으로 내게 뉴욕을 가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준 영화였다. 유학을 결정했을 때,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들은 모두 닿지 않았다. 그럼 적어도 가고 싶은 도시라도 가보자고 생각했다. 마침 뉴욕에 있는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다른 곳에서는 더 많은 장학금을 준다고 했지만, 나는 주저 없이 뉴욕을 택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내 삶의 어느 선택지에 실제로 개입한 영화였다. 그래서 20년 만에 속편을 보러 가는 마음은 조금 이상했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는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반갑고, 익숙하고, 추억이 조금 묻어 있는 정도.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건 옛 친구가 아니라 2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에 가까웠다.
처음엔 그저 반가웠다.
미란다는 여전히 미란다였다. 그 냉랭한 표정, 짧은 말투, 상대를 한 문장으로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방식.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독설을 하려 할 때마다 옆의 비서가 눈치를 주고, 예전처럼 코트를 던지면 비서가 받아 걸던 시대도 지나 이제는 미란다가 자기 옷을 직접 걸어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앤디가 그걸 보고 말한다.
“변한 것도 있군요.”
그 장면이 너무 웃겼다.
그리고 이상하게 좋았다.
세상은 변했다.
사람들도 변했다.
하지만 미란다는 여전히 미란다였다.
속편이 반가움을 주는 가장 좋은 방식은 아마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 이 영화는 그걸 아주 영리하게 해낸다.
앤디도 그대로인 듯 다르다. 1편의 앤디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런웨이라는 세계 앞에서 우왕좌왕했고,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누구를 알아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도 몰랐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앤디는 다르다. 그는 저널리스트로 자기 커리어를 쌓았고, 수상 경력까지 있는 베테랑이 되어 있다.
그러다 수상 소감을 말해야 하는 자리에서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분노한 앤디는 그 자리에서 고용제도에 대해 일침을 날리고, 그 영상은 순식간에 퍼진다. 그 장면을 본 런웨이 그룹의 회장 쪽에서 앤디를 미란다에게 꽂아 넣는다. 그렇게 앤디는 20년 만에 다시 런웨이로 돌아온다.
처음에는 기대하게 된다.
이제는 앤디도 제 몫을 하겠지.
이제는 예전처럼 흔들리지 않겠지.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게 가지 않는다.
앤디는 돌아오자마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다. 예전만큼 서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런웨이의 사람이 되지도 못한다. 저널리스트로서 쌓아온 경험은 분명 있지만, 런웨이가 원하는 감각과는 어긋난다. 성과는 애매하고, 입지는 흔들린다.
회의실에서도 그렇다. 여러 사람이 자기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앤디는 계속 끼어들고 싶어 한다. 자신이 쓴 글이 런웨이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미란다는 바로 묻는다. 그걸 누가 얼마나 봤는지. 트래픽은 얼마나 나왔는지. 앤디는 잠깐 막힌다. 좋은 글을 썼다는 감각과, 그 글이 실제로 얼마나 작동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그래서 묻는다. 그럼 나는 언제 말할 수 있느냐고. 미란다는 특유의 표정으로 고개를 아주 살짝 젓는다.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낮은 “으음” 하나로 이미 답을 끝낸 사람처럼. 유효한 결과를 내기 전까지는, 아직 아니라고.
정확히 미란다다운 장면이었다. 잔인하지만 정확했다. 앤디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20년을 버텨온 커리어도, 수상 경력도, 런웨이 안에서는 아직 발언권이 아니었다. 그 세계에서 말할 수 있으려면, 먼저 통하는 결과를 내야 했다. 그 장면은 지금의 시대와도 묘하게 닿아 있었다. 좋은 글을 썼다는 감각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그 글이 얼마나 읽혔는지, 얼마나 퍼졌는지, 실제로 어떤 반응을 만들었는지까지 증명해야 하는 시대. 앤디는 그 현실 앞에 다시 선다.
그러다 앤디는 사샤라는 독보적인 인물의 인터뷰를 따내겠다고 한다. 사실 아무런 확정도 없으면서, 이미 조율 중인 것처럼 말한다. 말하자면 블러핑이다. 하지만 앤디는 그 거짓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그 장면을 보면서 1편의 해리 포터 원고 장면이 떠올랐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그 앤디. 그때와 다르게 지금의 앤디는 더 능숙하다.
사람을 어르고, 달래고, 밀고, 당긴다.
하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길이 없어 보이면, 길을 만든다.
아직 손에 쥔 것이 없어도 일단 저지르고,
그다음 어떻게든 사실로 만든다.
그 야생마 같은 기질이 반가웠다.
나는 그 장면에서 내 모습을 조금 봤다. 예전의 내가 인턴이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많이 서툴렀고, 자주 눈치를 봤다. 그런데 지금은 부장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팀장이라는 자리로, 누군가에게 일을 지시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그냥 지나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20년이란 시간은 사람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지만, 분명 어떤 자리까지는 데려다 놓는다.
이 영화가 정말 좋았던 건, 그 반가움에만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앤디가 사샤의 인터뷰를 따내고, 런웨이의 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이제 미란다가 글로벌 총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 영화는 갑자기 회장을 죽인다. 회장의 생일파티에서 회장이 쓰러지고, 그대로 사망한다. 그리고 패션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아들이 그룹을 물려받는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다. 새로운 회장은 런웨이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 런웨이는 아이코닉한 패션 매거진이라기보다 오래된 사업부에 가깝다. 예산을 줄이고, 인원을 감축하고,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그 장면들이 이상하게 현실적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세계는 언제까지나 그대로 남아 있지 않는다. 한때 당연해 보였던 브랜드, 잡지, 직업, 공간, 방식도 어느 순간 “이제는 없어져야 할 것”처럼 취급된다. 앤디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 하고, 대책을 세우려 한다. 그때 나이젤을 찾아가 묻는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런데 나이젤은 사진을 고르며 말한다.
“나는 가방을 크로스로 메는 게 좋은 것 같아.”
그 장면이 참 좋았다.
세상은 무너질 수 있다.
회사는 흔들릴 수 있다.
윗사람들은 엉뚱한 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그 태도가 너무 멋있었다.
현실의 비바람 앞에서 거창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
하지만 자기 일을 놓지 않는 사람.
그게 나이젤이었다.
이후 영화는 밀라노로 간다. 1편이 파리였다면, 2편은 밀라노다. 뉴욕, 파리, 밀라노. 패션이라는 세계 안에서 그 장소의 이동은 단순한 배경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축처럼 느껴진다. 1편의 파리와 2편의 밀라노가 겹치면서, 영화는 전편을 반복하는 대신 그 위에 다른 나이테를 얹는다. 밀라노에서 앤디는 에밀리와 다시 만난다. 그리고 런웨이를 지키기 위해 한 가지 계획을 세운다. 에밀리의 부자 남자친구를 통해 런웨이를 인수하게 만들자는 계획이다. 겉으로는 런웨이를 살리기 위한 작전처럼 보인다.
앤디와 에밀리가 미란다에게
그 계획을 말하는 장면에서,
미란다는 갑자기 말한다.
“내가 이렇게 심각하게 배신당할 줄은 몰랐군.”
앤디는 당황한다.
자신은 런웨이를 살리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미란다는 말한다.
“너 말고. 에밀리.”
그때 에밀리의 표정이 바뀐다.
그리고 진짜 의도가 드러난다.
에밀리는 런웨이를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미란다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으려 했다. 미란다에게 버려졌다고 느꼈던 과거의 감정, 디올로 밀려났다는 상처, 인정받지 못했다는 분노가 그 안에 남아 있었다. 그 반전은 충격이었다. 단지 누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은 전혀 다른 욕망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여도, 누군가는 복수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미란다는 그걸 본다. 에밀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그리고 왜 아직 그 자리에 설 수 없는지도 본다. 미란다는 잔인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정확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은 그 뒤였다. 만찬 자리에서 에밀리의 부자 남자친구는 미란다에게 말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고. 이 찬란했던 도시도 이제는 흔적만 남았다고. 패션도, 런웨이도, 모델도, 결국 AI와 새로운 미디어에 대체될 것이라고. 그 말을 듣는 미란다의 표정이 오래 남았다. 메릴 스트립은 정말 대단한 배우다. 그 장면에서 미란다는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자기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들킨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사실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 후 미란다는 불 꺼진 밀라노의 회랑을 걷는다. 유리 돔 아래, 닫힌 명품 매장들 사이를 지나간다. 그때 그녀가 입은 옷은 검은색 바탕에 빨강, 파랑, 노랑 같은 보석 같은 장식이 박힌 옷이었다. 처음엔 그 옷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영화의 의상이 전편보다 과하다, 세련되지 않다는 말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는 그 과함이 이상하게 맞아떨어졌다.
불 꺼진 명품 거리.
이제는 예전만큼 빛나지 않는 패션의 성지.
그 사이를 지나가는 미란다.
그 순간 나는 자기 쓰임을 다한 광대가
무대 뒤로 걸어가는 모습 같은 걸 봤다.
너무 화려해서 더 초라해 보이는 사람.
자신이 지켜온 세계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사람.
그 장면에서 울컥했다.
미란다는 호텔로 돌아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남자친구가 와 있다. 1편에서 미란다의 전남편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만 바쁘냐, 나도 바쁘다. 왜 너의 일이 늘 우선이냐. 그런 식으로 그녀를 몰아세웠고, 결국 떠났다. 그런데 이번의 남자는 다르다.
미란다가 묻는다.
“내가 이걸 그만두면 나한테 뭐가 남죠?”
그는 말한다.
쌍둥이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그리고 나도 있지.
그 장면이 좋았다. 더 좋았던 건, 그가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미란다에게 당장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조건 공감만 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지금 감정이 격할 때 결정하지 말라고. 일단 자고, 내일 아침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밀라노를 바라보라고. 그리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그 말이 참 현명했다. 상대의 답을 대신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답을 찾을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도와주는 것.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내 태도도 돌아보게 됐다. 나는 종종 누군가의 고민 앞에서 너무 빨리 솔루션을 제시하려 했다. 말로는 도와주고 싶어서였지만, 어쩌면 상대가 스스로 자기 답을 찾을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좋은 조언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답을 찾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일 수 있다.
그 다음날, 미란다는 다시 움직인다. 다 끝난 줄 알고 늦잠을 자던 앤디의 방에 들이닥쳐 말한다. 우리는 할 일이 많다고. 정확히는 네가 할 일이 많다고. 그리고 미란다는 자기 일정을 소화한다. 그 사이 앤디는 방에서 미친 듯이 전화를 돌린다. 그 장면의 앤디는 1편의 앤디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던 인턴이 아니다. 사람을 설득하고, 압박하고, 달래고, 거래하는 사람이다. 20년 동안 앤디는 성장했다. 그리고 그 성장에는 묘한 현실감이 있었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 버티고, 부딪히고, 실패하고, 다시 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전화를 돌리는 방식이 달라진다. 말하는 톤이 달라진다. 위기를 다루는 손놀림이 달라진다.
영화 후반, 미란다가 밀라노 패션쇼에서 연설을 해야 하는 순간 앤디가 달려온다. 해결책이 생겼고,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란다는 망설인다. 연설을 해야 하고, 사람들을 챙겨야 하고, 이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한다. 그때 앤디가 말한다. 대신할 사람이 있다고. 카메라는 뒤쪽에 있던 나이젤을 비춘다. 그 순간이 좋았다. 아니, 좋았다는 말로는 조금 부족하다.
1편에서 나이젤은 미란다에게 크게 상처받았다. 편집장 자리를 받을 것처럼 보였지만, 미란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나이젤은 그렇게 밀려났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미란다는 처음으로 나이젤을 본다.
정확히 본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한다.
나이젤은 그런 마음이 없었을 거라고.
그가 그랬다면 내가 알았을 거라고.
하지만 곧 깨닫는다.
그동안 나이젤이 얼마나 그 자리를 원했는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끝까지 자기 곁에 있었는지.
미란다는 나이젤에게 간다.
네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연설도 네가 썼지 않느냐고.
네가 할 수 있다고.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누군가의 오랜 기다림이 마침내 보이는 순간. 곁에 있었던 사람이 드디어 자기 자리를 받는 순간. 그리고 그것을 허락하는 사람이, 뒤늦게나마 그 마음을 알아보는 순간.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오래 버틴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이 있다.
네가 할 수 있다.
네가 해라.
나는 너를 안다.
나이젤에게 그 말이 도착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깊게 남았다.
이후 해결은 비교적 빠르게 이루어진다. 사샤가 런웨이뿐 아니라 그룹 전체를 인수하기로 하면서, 런웨이는 살아남는다. 미란다는 더 큰 권한을 갖게 되고, 에밀리의 계획은 무산된다.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미란다와 앤디가 이야기한다. 미란다는 앤디가 자신에 대한 책을 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심지어 35만 달러 제안을 받은 것도 알고 있다.
앤디는 이제 쓰지 않겠다고 한다.
미란다를 생각해서 그런 듯 말한다.
그런데 미란다는 말한다.
쓰려면 제대로 쓰라고.
내가 얼마나 못됐고,
얼마나 악마 같은 여자였는지 다 쓰라고.
그 책이 화제가 되면 자신은 오히려 몇 년 더 이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그 말이 정말 미란다 다웠다. 미란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자기를 미화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자기 악명까지 계산한다. 앤디는 미란다를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미란다는 그 말의 이면도 본다. 사실 너는 너 자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끝까지 몇 수 앞을 본다. 끝까지 자기 세계를 냉정하게 읽는다.
그런데 영화는 마지막에 또 한 번 사람을 울린다. 앤디가 미란다에게 보고하러 가기 전, 나이젤과 만난다. 앤디는 말한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정말 큰 행운이라고.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러자 나이젤이 말한다. 네가 해고를 당한 것도, 그때 미란다가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도, 그리고 내가 회장 아들의 SNS에 네 기사를 올린 것도 전부 이어진 일이라고. 설마 이 일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졌다고 생각했느냐고.
그리고 앤디에게 말한다.
너는 여전히 나의 착한 앤디라고.
그 장면에서 또 무너졌다. 우연처럼 보였던 일들 뒤에는 누군가의 선택이 있었다. 내가 몰랐던 추천이 있었고, 내가 보지 못한 배려가 있었고, 내 길을 열어준 사람이 있었다. 앤디가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녀가 다시 올 수 있도록 길을 놓고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영화는 결국 앤디가 런웨이에 남는 것으로 끝난다. 1편에서는 떠나는 것이 앤디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2편에서는 남는 것이 앤디의 선택이 된다. 이게 이 영화가 속편으로서 영리한 지점이다.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는다. 전편의 결론을 배신하지도 않는다. 다만 20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같은 장소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떠나는 것이 맞았던 시절이 있고, 다시 돌아와 남는 것이 맞는 시절이 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무겁게 말하지 않는다. 처음엔 가볍게 웃긴다. 반갑게 만들고, 익숙한 대사를 들려주고, 우리가 알던 인물들을 다시 데려온다. 미란다의 독설에 웃고, 앤디의 고군분투에 웃고, 나이젤의 무심한 한마디에 또 웃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열고 나면, 어느 순간 다른 질문들이 들어온다. 세상은 정말 이렇게 바뀐 걸까. 내가 사랑했던 세계는 이제 오래된 것이 된 걸까. 사람들은 깊이를 잃은 걸까, 아니면 너무 많은 것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게 된 걸까. 예전에는 사람들이 잡지 한 권을 넘기며 하나의 세계를 만났다. 한 장의 화보, 한 편의 인터뷰, 한 권의 매거진이 어떤 취향과 권위를 만들었다. 지금은 수많은 정보가 동시에 밀려온다. 사람들은 한 권을 오래 넘기기보다, 수십 개의 화면을 빠르게 지난다. 누군가는 그것을 얄팍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깊이를 견디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얄팍해진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소비 방식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깊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깊이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그들을 지나쳐 가기 때문에.
이 영화는 그 변화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던 매거진이 어떻게 흔들리는지.
그 세계를 지켜온 사람들이 어떻게 늙고, 버티고, 다시 선택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보는 우리도 어떻게 달라졌는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계속 내 시간을 생각했다. 20년 전의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뉴욕을 꿈꿨다. 뉴욕에 갔고, 유학을 했고, 많은 것을 겪었다. 그 도시는 내게 애증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영화가 내 인생의 어떤 방향을 실제로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20년 뒤, 속편을 본 나는 다른 것을 본다.
뉴욕의 설렘만 보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오래 버틴 사람의 뒷모습을 본다.
자기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을 본다.
내가 누군가에게
너무 빨리 답을 주려 했던 태도도 본다.
내가 인턴에서 팀을 이끄는 사람이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도 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단순한 추억 소환이 아니었다. 나는 늘 현재를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과거를 복기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살고 싶다. 과거에 붙잡히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지도 않다. 과거는 가끔 이렇게 돌아온다. 20년 만에 속편의 얼굴을 하고. 한때 나를 설레게 했던 도시의 기억을 데리고. 그리고 묻는다.
너는 그동안 어떻게 변했느냐고.
무엇은 잃었고, 무엇은 아직 남아 있느냐고.
이제 너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그 질문을 아주 세련되게, 그리고 조금 짓궂게 던지는 영화였다. 처음엔 웃겼다. 반가웠다. 설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울컥했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는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좋은 속편은 과거를 그대로 다시 꺼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빌려 지금의 나를 보게 만든다. 아마도 내가 본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의 20년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를 지나온 내 20년도 함께 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은
예전 그대로가 아니었다.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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