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델루나 Mar 09. 2016

관계

기대하는 자만 섭섭해진다

몇일 전 페북을 잠깐 휴면계정화 시켰다. 내 사소한 정말 어이없는 실수 하나에 내가 1년간 목표로 했던 계획이 모두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화기를 붙잡고 한시간동안 애원하고 부탁했어도 사회는 냉정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나서 내 마음은 놀랄정도로 차분해졌다. 어제밤 혹시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끙끙 알았던 마음이 마치 충치가 제거된것 같이 말이다. 그러나 밤을 샜던 내게는 홀연히 털어버리고 뭔가를 계획하기에는 너무나 심신적으로 피곤한 상태라서 그대로 쓸어지듯 잠이 들어버렸다


자고 일어나서도 오히려 자기 전보다 더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그냥 멍하게 있을때 페북에서 메세지가 왔다(이때는 아직 페북 계정이 살아있을 때다.) 몇주전부터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일이 생겨 만날 수 없게 됬다는 메세지였다. 나도 사실 이런 상황에서 누굴 만날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그 사람의 말에 대꾸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정말 겨우 겨우 '네'라는 한자를 써서 보냈다.


여기까지는 별 다를게 없다. 나는 일주일정도 내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연락을 하면 될것이고, 그 동안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가 고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까. 그러나 내 머리는 이해했지만, 내 몸은 이해가 안되었나 보다. 아니 어쩌면 내 몸은 스트레스를 이해했지만, 내 머리는 애써 부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날부터 말도 안되게 몸이 아파왔다. 처음에는 만사가 귀찮고 그저 잠들어 이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는데 그 다음날 부터는 오한에 기침에 열이 오르는등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말을 그렇게 끙끙거리면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짓고, 수액을 맞으면서 조금 호전이 되었지만, 그래도 결국 집으로 다시 기어 들어와 끙끙대었다.


그 아픈 와중에도 난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근원지가 저번주 금요일에사람 만나기로 했다 취소한 사람에게서 기인했다는게 새삼 놀라웠다. 미국 유학시절 잠깐 페북으로 알게되었던 사람인데 당시에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페북을 정지하고 관계를 모두 끊어버렸다. 귀국하고 나서 메일과 전화번호를 통해 서서히 내 주변사람들과 연결은 됐지만 페북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다시는 만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기대를 안했는데 우연히 그 사람이 3년만에 내 페북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고, 다행이 그 사람은 기억을 했기에 다시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한 2주동안 난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 왔고 그사람 역시 단순히 대답의 수준이 아닌 서로의 어느정도의 교감이 느껴졌었다.


그 사람이 약속을 취소해서 섭섭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취소해서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 순간엔 하지만 몸이 아퍼 몇일째 물도 한모금 못마시고, 페북에서 그 사람과 떠들 시간중 5분만 정신을 차렸더라면 이렇게 1년을 날려버리는 어의없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텐데라는 자격지심에 더 이상 연락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니 페북을 안하고 정말 공부만 했어도 그 걸 까먹지는 않았을텐데... 그저 내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그래도 평소와는 다른 나의 태도와 말투 그리고 페북 계정의 정지를 봤다면, 적어도 한마디쯤 먼저 걸어줄 법도 한데... 그런게 전혀 없는 그 사람에 대해서 난 섭섭해하고 있다. 머리로는 그건 '너의 숙제다'라는 아들러식의 논조로 나를 달래보아도,  그냥 그 사람에게는 "난 이정도로구나"라고 생각하면 섭섭함과 외로움이 찾아온다.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요 나를 자책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다만 관계란것이 좋든 싫든 이렇게 칼자루를 잡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 칼자루를 내가 잡지 못하는 현상의 반복에 난 어느새 진절머리가 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글을 보고 말 한마디라도 건네달라고 때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서운하다는 감정의 배출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난 어느 순간에 또 말을 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은 좀 아닐 듯 싶다. 아직 나에게는 '사람에게 기대 하는'나쁜 습관이 남아있어 보여서 말이다. 내 안에서 완결성을 지녀야 한다. 내가 행복하고 평온해야 비로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건강할'수 있다. 다 아는 말이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받아들일 준비가 된것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리고 인연이 닿으면 또 이야기 할 날이 올것이다.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내가 살아야 남과의 '관계'도 생긴다. 지금의 난 반쯤 죽어있다. 이런 상태로 누굴 만난듯 난 좀비처럼 빈 껍데기 같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약기운에 몽롱해 하며 글을 쓰다보니 또 몸이 아파온다. 그래 오늘까지만 아프자 몸도 마음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