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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Nov 14. 2020

마크 헌트 이야기


1.
무하마드 알리를 좋아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화려한 스텝. 빠르면서도 무거운 펀치.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날선 반골정신이 좋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 가운데 내가 싫어하는 장면도 있었다. 1964년 2월 세계 챔피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하여 케이오승을 거둔 순간이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리스턴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소리쳤다.

“내가 가장 위대해!(I am the Greatest!)".

20대의 객기요 프로선수 특유의 쇼맨쉽이었으리라. 그렇게 애써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씁쓸했다. 자신과 싸우다 쓰러진 상대에게 침을 뱉는 인간을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기 때문이다.

2.
작년 가을의 일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퇴임한 날 저녁 페친 한 명을 차단했다. 이른바 진보적 스탠스 아래 오랫동안 조국의 도덕성을 비판하던 인물이었다.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니 어찌하겠는가. 노동문제, 정치문제 등에서 판단의 지점이 상이한 것을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우연히 들른 그의 담벼락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그렇게 미워하던 조국이 사퇴했으니 밤길을 조심하라는 말을 들을 것 같다.‘ 운운의. "야비"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페친 한 분은 그의 표현이 비아냥이 아니라 “푸념”이라 했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러하다 치자. 하지만 그날이 어떤 날인가? 아무리 입장이 달랐다 해도, 자신의 온 몸을 던져 거대한 구조악에 부딪혔던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는 순간 아닌가?

스스로가 대의를 위한 마음으로 열심히 싸웠다 믿는다면, 최소한 상대에 대해서도 그러한 예의를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찬사를 보내지는 않아도 좋다. 지난 두 달동안 검찰과 언론의 끝없는 마녀사냥에 만신창이가 되어 퇴장하는 상대다. 그런 사람을 향해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리도 입이 간질거리는가?  

3.
그 며칠 후 아침에 경향신문을 펼치니 서민이라는 자가 <SNS 함정에 빠진 조국의 아름답지 못한 퇴장>이란 칼럼을 썼다. 모든 문장이 치졸한 조롱과 비아냥으로 가득하다.

서민은 이렇게 썼다. “한때 우리가 믿고 따른 지식인이었던 분이 이렇게 몰락한 이유는 그가 SNS 중독자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조국의 “퇴임”이 SNS 때문이라는 것은 팩트 자체가 아니다. 그저 스스로 악의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악질적 마타도어에 불과하다. 비유법이었다 말하고 싶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선천성 비아냥 중독자"의 변명일 뿐이다.

아무리 비꼬아 글을 잘 쓰면 뭣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오뉴월 동태의 그것처럼 썩어있는데.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 자체가 증발해있는데.

초등학생 꼬마조차도 그렇다. 싸울 때는 코피가 터지도록 싸우지만, 승부가 끝나면 잘 싸웠다고 상대를 인정해준다. 때로는 친구가 된다.

그러하니 인간에 대한 예의에 있어 항차 초등학생보다 못한 자들이 자칭타칭 논객으로 언론지상을 누비고 다닌다. 참으로 비루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4.
권투로 시작했으니 격투기 이야기로 끝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격투기 선수는 마오리 핏줄의 뉴질랜드인 강펀처 마크 헌트다. 이 남자는 펀치가 들어가서 상대가 그로기 상태에 빠지면 후속타를 안 때리고 쿨하게 돌아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장과정에서 자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 한다. 그렇게 기절을 했는데도 형에게 구타를 멈추지 않는 모습이 뼈에 사무쳤다 한다. 이후 무슨 일이 있어도 쓰러진 상대에게 펀치를 날리는 짓을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것이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소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자신과 가족의 온 생을 난도질당한 남자.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가족을 지키러 돌아서는 그의 등 뒤에 칼질을 하는(인간에 대한 존중심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조선일보나 자한당 류야 접어두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지 마라고.

마크 헌트는 되지 못해도 최소한 초등학생정도만큼은 사람이 되라고.   

시절이 아무리 하수상해도, 고결한 인간은 늘 고결하고 비루한 인간은 늘 비루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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