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청 중 광고가 나오면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는 것을 재핑(zapping)이라 부릅니다. 미국의 경우 재핑을 통해 광고를 꺼리는 비율이 60%를 훌쩍 넘습니다.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지만, 우리나라도 못잖을 걸로 예상됩니다. 광고에 대한 이러한 기피, 거부 현상은 홍수라 불릴 만큼 광고물의 절대 숫자가 많은 것이 일차적 원인입니다. 하지만 근대광고의 탄생 시점부터 지금까지 쌓은 역사적 업보 때문에 사람들이 광고에 대해 품게 된 안 좋은 이미지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바로 허위과장 광고 때문이지요.
제품 효능이나 가치를 속이고 부풀리는 이 광고유형은 18세기 초반 영국에서 본격화했습니다. 광고사학자 핸리 샘슨은 대표적 사례로 1707년 영국 '데일리 커런트' 신문에 실린 현미경 광고를 제시합니다. 이 광고를 읽어보면, 과학자 두 명이 사물을 200만 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을 개발했다고 떠벌리고 있습니다.
"많은 신사분들이 그런 물건이 있을 수 없다 비판하시지만, 우리 현미경은 한 치의 거짓도 없이 광고에 쓴 그대로의 성능을 발휘합니다"라는 카피를 내세우고 있네요.
200배가 아니라 200만 배임을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21세기 과학기술의 결정체라 불리는 투과전자현미경(透過電子顯微鏡:TEM)의 최고 배율이 고작 30만 배에 불과합니다. 당시 기술력에 비춰볼 때,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짐작 가시지요?
이 같은 뻔뻔스러운 행위가 난무함에 따라 광고에 대한 인식이 급속히 악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광고는 건강한 소비의 동반자라기보다는 '사회적 필요악'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8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의 신문 발행인들은 책자나 약품 광고를 자기 신문에 싣는 것을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부끄러운 행위로 생각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한층 심각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허위과장 광고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부터였습니다. 유럽보다 한발 뒤늦게 산업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때였습니다. 이 시기의 미국 기업들은 자본집중을 통한 대형화, 노동절감형 생산설비 및 기술의 확대에 힘입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게 됩니다.
문제는 고정된 직업을 통해 봉급을 벌고, 공장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노동자 계층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주부들은 생활용품 대부분을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 쓰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주들은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을 팔아치우기 위해, 비난과 조소를 무릅쓸지언정 허위과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신문발행 부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1850년대 초, 미국에서는 기업이 신문에 광고할 경우 거래 은행에서 해당 기업에 재정적 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신용등급을 추락시킬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같은 부정적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당대의 최대 광고주였던 이른바 특허약품(partent medicines)들의 행태였습니다.
1630년경 영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특허약품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은 남북전쟁이 종료된 19세기 중후반의 미국에서였습니다. 특허(patent)란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특허받은 약효가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행정당국으로부터 사업 허가를 받았다는 관례적 의미에 불과했지요.
그럼에도 이 시기의 특허약품 대부분은 자신을 스스로 만병통치약이라 주장했습니다. 사실은 알코올이나 아편 혹은 미량의 코카인을 함유한 정체불명의 통증완화제에 불과했는데 말입니다. 예를 들어 1860년 해리슨이란 회사에서 만든 '아이슬랜드 발삼(Iceland Balsam) 향유' 광고를 보면 기침 감기, 기관지염, 인후염, 백일해, 천식, 코와 입속 점막 염증에 이르기까지 인체의 모든 호흡기 질환을 치료해준다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가관인 것은 이 향유가 폐결핵까지 고친다는 주장입니다. 독일의 세균학자 코흐가 결핵 원인균을 처음 발견하고 학회에 발표한 해가 23년 후인 1883년이니 이게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 알 수 있겠지요?
심지어 어떤 특허약품 제조업자는 "광고할 지면만 내게 주어진다면, 설거지하고 난 개숫물도 약으로 팔아치울 수 있다"고 떠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약효 신뢰성이 바닥인 이런 제품을 판매하려다 보니 건강에 대한 공포를 억지로 자극하는 광고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알지도 못했던 '새로운 병(病)'에 스스로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강염려증이 현대인들에게 많이 퍼져있지요? 이러한 심리적 병증의 출범에 당대의 허위 특허약품광고들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겁니다. 19세기 후반의 특허약품 과장광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여성에 관련된 모든 병을 완치시킨다고 주장했던 리디아 핑크햄의 식물성 액제(液劑) 광고였습니다.
아래 광고에 일러스트로 나와있는 인물이 핑크햄입니다. 퀘이커교도였던 그녀가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부엌에서 만든 이 액제는 19% 도수의 알코올에 4가지 식물 뿌리, 파의 씨앗을 혼합한 그저 평범한 민간요법제였습니다. 하지만 1875년 '보스톤헤럴드 신문'에 광고를 시작한 이 제품은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압니다"라는 신뢰감 넘치는 카피를 내세워 고된 노동과 잔병치레에 시달리는 미국 농촌 여성들의 얼을 빼앗았습니다.
단순한 위약효과(僞藥效果·placebo effect) 외에 아무런 약효가 없었지만 생리불순, 자궁궤양, 산후출혈, 신장병 심지어 불임증까지 치료해주는 기적의 약으로 포장했고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핑크햄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은밀한 건강문제를 상담하려는 여성들의 편지가 그녀의 집으로 쏟아져 들어왔을 정도였습니다.
어디 핑크햄뿐이겠습니까. 광고사를 살펴보면 그에 필적할 만한 수많은 허위 과장광고가 나타나고 또 사라져갔습니다. 광고가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는 핵심적 마케팅 수단으로 존재하는 한 제품 가치를 속이고 부풀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창의적 발상과 정직한 설득을 포기한 허위 과장 광고는 도덕적, 법적으로 소비자에 대한 일종의 범죄행위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