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하다가 어느 웹사이트에서 오래 전 쓴 제 글이 올라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 시기가 제 나이 30대 중반, 한국 자본주의가 아직 IMF라는 괴물을 맞닥뜨리기 전입니다. 이십 수 년이 흐른 지금 우리네 세상은 그 때와 비교해서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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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unvisible hand)이란 개념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의 모든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이기심에 따라 무한경쟁을 펼치게 되면, 시장기구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 전체에 부와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견해였지요.
케인즈에 의해 '자유방임의 종언'이 발표되기 전까지 자본주의 세계를 풍미했던 이 이론은, 1929년의 대공황으로 결정적 괴멸을 맞이하게 되고 그 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민간경제활동에 관여하는 이른바 후기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위와 같이 딱딱한 내용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함의에 있어서 전혀 반대의 위치에 있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이야깁니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존재이건만 좀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을 말하는 것이지요.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날씨가 풀렸다는 기상대 발표였습니다. 그래도 코끝이 쨍한 날씨는 여전해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기온은 영하 6.4도. 회사에 출근하려면 주차장에서 나와 육교를 하나 건너야 합니다. 겨울 아침 7시께의 거리는 비껴드는 가로등 불빛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어둑합니다. 골목에서 나와 육교의 오르막 계단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코트 깃을 올리고 종종걸음치는 제 눈에 계단에 엎드린 한 사람의 등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겹겹이 걸친 겉옷 아래 '몸빼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가 어제 내린 눈이 녹아 계단에 얼어붙은 얼음을 긁어내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귀가 얼얼한 정도로 차가운 바람 속이었습니다. 계단 중간에 멈춰서서 아주머니의 구부린 등을 내려보았습니다. 그 순간 길쭉하고 넙적한 쇠긁개로 얼음을 깍아내고 있는, 때묻은 면장갑에 덮힌 아주머니의 손이 내 눈에 와서 꽃혔습니다. 해뜨기전 미명인데다가 칼날같은 바람을 이기려고 머리를 거의 덥다 시피한 수건 때문에 아주머니의 얼굴은 잘 안 보였습니다. 그저 수그린 얼굴에서 후후- 쏟아져나오는 하얀 입김만이 눈에 띌 뿐.
그이의 직업이 무엇인지, 왜 이렇게 이른 아침에 난간의 얼음을 청소하고 계시는지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공공기물인 육교이므로 근처 빌딩에 근무하시는 분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환경미화원 복장도 아니었으니 말이지요. 내려가는 계단 중간참에 멈춰서서 저는 건너편을 한참동안 건너다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아하, 환경미화원인 남편 일 도와주러 나오신 분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일을 도우는 미화원부부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듯 해서 말입니다.
계단을 내려와 회사건물에 들어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자리에 앉았습니다. 일찌감치 난방이 들어와 훈훈해진 사무실. 하지만 의자에 앉은 머리 속에 자꾸만 아까 육교에서 마주쳤던, 칼바람 속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면장갑에 싸여 얼음긁개를 잡은 손이 생각났습니다.
인적도 없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 아침의 육교. 어둑어둑한 계단 한 모퉁이에 엎드려 혹시라도 사람들이 미끄러질까봐 열심히 얼음을 깎아내던 아주머니의 '보이지 않는 손'.
문득 제 머리에 이런 생각이 뛰어들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이렇게 자판 두들기는 나의 따스한 자리조차도 저처럼 추위에 곱아든 보이지 않는 勞動의 손이 있어 비로소 가능한 것은 아닌가?
관념으로만 따지자면, 세상에 가진 것이라곤 하나 뿐인 육체와 지식을 팔아 살아가는 노동의 하루하루에 있어 저와 아주머니의 그것이 무슨 본질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새벽에 나와서 밤중에 들어가는 곤고한 봉급장이 생활을 언필칭 '누리는 자'의 그것으로 표현할 수는 없겠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내 월급 노동자 생활을 선택받은 자의 그것으로 참칭하는 위선을 부리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내가 누리는 이같은 편안함과 따스함은, 눈에 일일이 보이지는 않으나 틀림없이 나보다 훨씬 가혹한 누군가 노동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겁니다. 나의 상대적으로 따스한 일자리를 종국에 가능케 해주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 제 머리 속에 아까 본 아주머니 손에 겹쳐서 자꾸만 그러한 손들이 떠올라왔던것입니다.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지난 일년동안 개인과 사회가 겪은 많은 일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오가는 때입니다. 국민을 절망의 나락에 빠트린 이 썩어빠진 정치경제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변화를 향한 市民으로서의 소박한 각오가 필요하겠지요.
한해동안 나의 삶을 온전하게 지탱해준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아침 또 다른 한가지를 마음 속에 추가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똑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삶을 위해 나보다 더 땀 흘리는 우리 이웃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내가 훈훈한 실내에서 送年의 술잔을 들고 있던 순간에도, 그러한 훈기를 위해 꽁꽁 언 채 얼음긁개질을 멈추지 않는, 아니 멈출 수 없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감사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는 세상의 불평등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조금이라도 정직하게 바라보고자 하는 이에게 "모두에게 따스한 세밑을"이라는 기원은 낯간지러운 수사가 될것입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나의 마음은 조금은 다른 기원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를 위해 더 고생하는 손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들의 곤고한 노동을 명증히 인식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종내 이 땅이 힘든 노동의 가치를 으뜸으로 인정하고 노동하는 이의 존재를 진정 존경하는 '사람의 세상' 되게 하소서...
다시 창 밖을 내다보니 거리에는 사람들이 훨씬 늘어나 있고, 멀리 육교 계단에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부디 제가 마주친, 얼굴도 보지 못한 아주머니 댁의 지붕 밑에도 세밑의 따스한 희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