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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ny Jan 26. 2017

올림픽 정신

전화벨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한국에서 오는 전화였다. 전화의 주인공은 연주 일정 때문에 서울에 머물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B였다. 오는 4월에 뉴욕에서 함께 연주를 계획했는데 갑작스럽게 잡힌 중요한 연주 때문에 그 시기에 서울에 있게 될 것 같은데 상의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미리 계획되었던 뉴욕에서의 연주에 비해 서울에서 섭외되었다는 연주는 훨씬 더 크고 비중 있는 음악회였다. 필자가 B의 입장이라고 해도 별 고민 없이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서울에서의 연주를 택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오케스트라 연맹(League of American Orchestras)에서 주최하는 젊은 지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행사 전에 공지되었던 초청 지휘자들의 명단을 보고 큰  기대감을 가지고 애틀란타로 향했다. 첫날 전체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4명의 교수진이 돌아가며 본인 소개를 마치고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들어 이야기를 덧붙였다. 참석 예정이었던 초청 지휘자 J가 갑작스러운 연주 스케줄로 인해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J는 미국 내 모든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초청을 받은 경험이 있는 노련한 지휘자였는데 딱 한 곳의 지휘대에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오케스트라로부터 초청을 받게 되어 연맹 측에 급하게 연락을 취해왔다는 스토리였다. 세미나 참석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J를 만날 좋은 기회를 놓쳤으니 아쉬움이 컸지만 J의 선택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주 세계에서 다양한 이유로 예정된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고 연기되는 일도 생긴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출신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가 유명 오페라 극장의 연주자로 활동할 당시, 브라질에서 열린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공연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연주를 이끌었던 지휘자가 공연 도중 연주장을 떠나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오케스트라 단원 중 유일하게 ‘아이다’를 외우고 있었던 첼리스트 토스카니니는 엉겁결에 지휘를 이어받았고 무사히 공연을 마치게 되었다. 결국 지휘자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토스카니니라는 명 지휘자를 탄생시킨 셈이다.


그러나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도 벌어진다. 지난 1월 23일 뉴욕타임스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중국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지상파 뉴스 보도를 포함한 대다수의 한국 언론 역시 이 사태를 비중 있게 알렸다. 이튿날 한 유력 정치인은 한국 내 사드 배치와 관련해 경제 보복을 뛰어넘어 순수 문화예술인들의 공연마저 취소시키는 대국답지 않은 처사에 대해 중국 정부의 조치를 기다린다고 했다. 연합뉴스는 사설을 통해 중국의 한한령이 K-Pop이나 방송 콘텐츠와 같은 대중문화를 넘어서 순수예술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어떻게 문화 대국이 될 수 있겠느냐며 후안무치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중국 책임론은 분명히 했다. 오는 3월 18일 구이양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초청으로 중국 공연이 예정되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중국 정부의 비협조로 결국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고 연주도 취소됐다. 일련의 사태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것이다. 


냉전시대로 일컬어지던 1980년대 미소간의 갈등은 80년 모스크바, 84년 LA 올림픽이라는 반쪽짜리 대회 만들어냈다. 양측은 서로의 대회에 자국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고 당시 두 대국과 관련된 우방들 역시 보조를 함께하며 대회를 보이콧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한 선수들은 이데올로기의 오물을 그대로 뒤집어썼고, 인류의 평화와 친선을 도모한다는 올림픽 정신은 극심하게 훼손되었다. 



최고 수준의 아티스트들을 원하는 시기에 초청하기 위해서는 이미 수년 전에 섭외를 시작해야 한다. 그들은 관객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무대를 만들어 내는 틀림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연주를 손꼽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음악으로 교감하는 순간 청중들은 인간 존엄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종, 종교, 이념의 차별 없이 우정과 우애를 다지는 올림픽 정신은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과 맞닿아 있다. 분명 공들여 준비한 음악회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산되었다는 뉴스는 아티스트와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큰 피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더 큰 손해를 입는 쪽은 누구일지 그들은 왜 알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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