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ny May 01. 2016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때

앙드레는 독일에 파견된 미군 아버지와 헝가리인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권유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접했던 그는 연습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특단의 조치를 내린 그의 어머니는 아들 앙드레를 격려하고 이끌어줄 새로운 선생님을 찾았다. 임자를 만난 소년 앙드레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였고, 청소년기에 이르자 크고 작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소년은 지금 세계를 호령하는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Andre Watts)이다.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졌던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던 독주자는 자그마치 윤디(Yundi)였다. 그는 2000년 18세의 나이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로 기록된 입지전적 피아니스트이다. 이번 연주에서 공교롭게도 올해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둔 조성진이 결선에서 연주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택했다. 자신이 우승했던 대회를 15년 만에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참석해 조성진의 연주에 후한 평가를 내렸던 그였기에 한국 청중들의 기대는 컸다.


그런 그가 이번에 고생을 했던 것 같다. 음을 놓치는가 깊더니 오케스트라를 두고 다른 부분을 연주하다가 결국 연주를 중단하는 졸연을 했던 것이다. “참사”, “이젠 끝”이라고 그를 비난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1악장 전반부에서 연주 중단 사태가 한 번 있었고, 후반부는 위축된 연주를 펼쳤던 것 같다. 이 소식은 영국의 유명 음악평론가와 그의 고국인 중국 언론에서도 다뤄졌다. 연주도 연주지만 음악회 직후 예정되었던 사인회를 돌연 취소하고 호텔로 돌아 가버려 수려한 외모라도 보고 싶어했던 청중들에게 이중의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다.

Yundi, pianist ©Chen Man / Mercury Classics


소년 앙드레 와츠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계기는 그의 나이 16세에 찾아왔다. 지휘자 번스타인(Berstein)으로부터 일찌감치 눈도장을 받은 앙드레 와츠는 당시 CBS를 통해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한 청소년 음악회가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고, 이후 건강 문제로 무대에 서지 못한 글렌 굴드(Glenn Gould)를 대신한 연주가 화제를 일으켰다. 아버지의 피부색을 물려받은 흑인 소년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감성과 완벽한 기교로 무장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무대를 계속 이어나갔다.


유학시절 학교 메인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안드레 와츠가 찾았던 적이 있다. 그의 명성을 들어왔던터라 같은 무대에 선다는 것만으로 기대가 컸다. 연주 곡목은 브라암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한 곡만 연주해도 이틀을 쉰다는 50분짜리 브라암스 협주곡 두 곡을, 그것도 한 무대에서 연주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1번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초반부터 피아노의 자잘한 실수가 귀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오케스트라와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고대했던 우리의 소원을 뒤로하고 그는 피아노에서 손을 뗐고 연주를 멈춰야 했다.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차가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멋적게 들고 “I’m sorry!”라며 유쾌한 목소리로 청중에게 말했다. 그리고 지휘자에가 다가가 악보에 관해 이야기를 잠시 나눈후 연주를 이어갔다. 그런데 비슷한 지점에서 두 번째 사고가 터졌다. 또 다시 연주 중단. 지휘자의 악보를 확인한 그는 탈출구를 찾아 세 번째 연주를 시작했다. 위태로웠다. ‘이러다 또 멈추는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대가의 이름에 먹칠한 연주로 기억될 사태였다. 천신만고 끝에 버뮤다 삼각지대를 벗어난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80분 이상을 더 연주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곡의 마지막 부분까지 왔다. 무대 위의 그는 마치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사투를 벌인 장수와 같았다. 마침내 마지막 음까지 연주했고 장내에 가득했던 청중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기립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비 오듯 땀으로 젖어 있던 앙드레에게 쏟아졌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완벽한 연주를 뛰어넘는 최선의 연주였다. 돌이킬 수 없을 줄 알았던 실수를 딛고 서서, 그는 영겁과 같았을 그 80분이라는 시간을 차곡차곡 극복했다.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때 어떤 감격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우리에게 가르쳐준 잊지 못할 연주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The Show Must Go O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