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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Feb 11. 2016

욕심

덧없음을 알고도 그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담배' 같은 너. 

“어느 계절을  좋아하세요?” 


 가끔 오고 가는 일상적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겨울을  좋아합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을 한다. 그리고 이유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겨울이 다가올 때 차가운 공기가 폐 속을 날카롭게 스치는 기분이 좋아서요.” 이상한 이유일지 모르지만 명확한 이유는 가지고 있다. 그렇게 뚜렷하게 겨울을 좋아한다.

 하지만, 얼마 전 매서운 한파가 왔을 때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카리브해의 햇살이 그리웠다. 분명 따가운 햇살의 여름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때는 넥타이를 매고 무표정한 표정을 간직한 체 사람들로 가득한 테헤란로의 고층빌딩 속으로 흘러 들어갔었다. 그때는 즐겁 지도 자랑스럽지도 않고 반복되는 시계  추처럼 빌딩을 들어갔다 나왔다만 했었다. 의지와 열정, 혹은 사색과 고민은 철저히 배제 한 체 불만과 투정을 가득 얼굴에 머금은 체로 말이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른 아침 진한 커피 생각에 숙소를 나서 빌딩 숲 속으로  흘러들어갔었다. 스타벅스에 앉아 밖을 보고 있자니 많은 사람들이 넥타이를 매고 빌딩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순간 아무 할 일도 없이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보다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예전의 나의 모습이 잠시 그리워졌다. 우습게도 그때는 치가 떨리게 싫었는데도 말이다.


 차를 리스해 유럽을 100일 동안 돌았다.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고 프랑스로 돌아와 마르세유에서 아웃하는 일정이었다. 그 시작을 4월 파리에서 시작했고, 유렵에서 캠핑을 이라는 로맨틱한 명분을 앞세우긴 했지만 실질적으론 살인적인 물가의 유럽에서 예산을 줄이기 위해 캠핑을 선택했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4월의 파리의 캠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혹한과 견줄 수 있을 만큼의 추위를 선사하였다. 그렇게 4월의 캠핑의 날카로운 추억을 않고 동유럽에 갔을 땐 저렴한 물가 덕에 캠핑이 아닌 숙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 동유럽은 캠핑장이 없기도 했다.) 거의 50일 만에 텐트가 아닌 지붕이 있는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있자니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유럽 캠핑장의 버튼 샤워 시설 (많은 캠핑장이 코인 방식의 2~3분 샤워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아닌 마음껏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니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라며 아내와 함께 하루 종일  행복해했던 일이 기억난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깨끗한 침구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쾌적한 집에서 뜨거운 온수가 넘쳐나도록 살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집에 대한 불편함을 아내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여행 도중 그렇게  그리워하던 집이었는데 말이다.


 그 외에도 여행 도중 천상의 맛을 선사하던 라면이 지금은 먹고 싶다는 욕구보다 가끔 배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없이 배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는다. 어릴 적 몇 달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샀던 고가의 시계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며, 어디에 있는지 관심도 없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스스로 문제라고 느껴지고 있으니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일까?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언가를 자꾸 잊고 산다는 것이다.


 아마도, 허영심과 욕구를 자양분으로 하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라는 자조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욕심.

 

소유하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고 소유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는 행위. 지나고 나면 의미 없음을 알지만, 소유하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나면 그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지고 말 것이지만, 모든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매번 어쩔 수 없이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한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만족할 줄 모르고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에 스스로 작아짐을 선택하고 만다.   덧없음을 알고도 그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삶은 언제쯤  끝맺음을 맺을 수 있을까? 이 역시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숙제일 듯하다. 


 그리고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일임에 분명하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가족과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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