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기억 속 언니들
요즘 나는 멋지고 잘난 사람을 보면 무조건 '언니'라고 부른다.
심지어는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적어도 상관이 없다. 내가 닮고 싶은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기꺼이 높임말을 쓸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사실 지난 2n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몰래 '언니'라고 부르며 내적 친밀감을 쌓았었다지. 그 사람들은 나의 이런 모습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정말 지독히도 사랑하고 존경했다. 혹여나 스토커 같지는 않을까, 내 존재가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던 적도 있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아서 그들과 가까워진 적도 있다.
나는 찌질하고 우울했다. 의견을 좀처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당당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내 감정인 것 마냥 여기며 이리저리 많이 휘둘렸다. 나는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쓰이도록 방치해 두었다.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는 것. 그게 내가 내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게 얼마나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할 때, 혹은 자신의 불행한 현재가 바뀌지 않고 미래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믿을 때 우울해진다고 한다. 나 또한 내 운명을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겨버렸으니 우울함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써주는 내 이야기는 예상할 수 없었고 그래서 불안했고, 불안의 연속은 불행이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운이 좋게도 바로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술을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즐기시는 여자 사장님, 내가 자신의 조카 혹은 딸 같다며 예뻐해주시는 과장님과 대리님, 내가 어떤 업무를 해야 할지 정확히 지시해주시는 주임님까지. 내 회사 생활은 나름 괜찮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멋진 언니들이 내 인생에 들어오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만난 언니들은 스스로가 각자의 멋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들이 쓰고 있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신이 났고, 그렇게 그 언니들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까 나도 내 이야기를 직접 쓰고 싶어졌다. 그동안은 내 자신을 믿지 못해, 직접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언니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눈앞에 조금씩 내가 알지 못했던, 하지만 내가 정말 원했던 미래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프리즘을 놓기 전에는 백색광이 무지개색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 수 없었듯이, 그들의 인생이 내 인생과 겹치기 전에 나는 내 미래가 이렇게나 다양한 가능성의 색깔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그런 인생은 나에게 마냥 멀기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실존했고 사실 나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멋있게 실존하고 싶었다. 그렇게 실존하여 '과거의 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너의 미래는 무지개처럼 예쁘게 펼쳐져 있다고.
목차
ㄱ 기억속의 언니들
ㄴ 노란색 머리칼을 가진 언니
ㄷ 대학교에서 만난 언니
ㄹ 라오스에서 만난 언니
ㅁ 마라톤하는 언니들
ㅂ 비디오 만드는 언니들
ㅅ 사장님이 된 언니들
ㅇ 요가하는 언니들
ㅈ 점봐주는 언니
ㅊ 친해지고 싶은 언니들 (빅토리아, 안나)
ㅋ 코끼리 돌봐주는 언니
ㅌ 토론하는 언니들
ㅍ 파도 타는 언니들
ㅎ 할말 하는 언니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