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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민 Dec 28. 2020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MBC 실화탐사대 <추락 노동자 故 손현승,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 편

2020년 10월 13일, 나의 큰아버지는 춘천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떨어진 건축자재에 맞아 돌아가셨다. 왜 아무도 건축자재가 인부 위에서 작업을 하는데 피하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큰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지지 않았다. 그렇게 큰아버지는 살려고 일하러 갔는데,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사실 이건 우리 큰아버지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매일 5.5명은 그렇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2020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기업은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그걸 어겨도 처벌은 솜방망이고, 그나마도 그 처벌은 말단 관리자에게로만 향하고 있다. 응당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도무지 그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




MBC 실화탐사대 106회에서는 추락 노동자 故 손현승씨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뤘다. 고인은 지난 10월 30일 한 호텔 연회장에서 리프트를 이용해 대형 현수막을 설치하던 중 갑자기 리프트가 쓰러져 6m 높이에서 추락해 뇌사상태에 이르렀다. 사고가 발생한 호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해당 사고는 작업자의 부주의로 발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현승씨는 평소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CCTV를 살펴보면 미리 깔린 테이블 때문에 안전지지대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던 상황이 드러난다. 그리고 작업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진행한 현승씨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승씨가 생을 마감한 이후의 상황은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또 죽은 사람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씨가 참변을 당했을 때도 즉시보고서에는 ‘귀책=본인(김용균)’이었고, 문화예술회관에서 무대 작업을 하던 조연출 박송희씨가 작업물 확인을 위해 뒷걸음치다 7m 아래로 추락했음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법원 복도에서 ‘자기 혼자 실수해서 난 사고다’, ‘무대감독도 피해자다’라고 말을 들었어야 했다.


현승씨의 이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맡긴 호텔 측은 장소 대관만 하였기에 잘못은 없다고 주장했고, 유족들은 호텔 측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계약서에는 ‘업체는 호텔이 요청한 현수막을 성실하게 공급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호텔 측은 이번 사고는 대행사가 진행했기에 본인들(호텔)의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MBC 실화탐사대 106회 호텔 관계자와 제작진의 인터뷰 내용

2년 전, 12월 10일에는 입사 석 달된 스물네 살의 김용균씨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에 머리가 끼어 숨져 죽었다. 그곳은 불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고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4년 전에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열아홉 살 김군이 죽었고, 3년 전에는 제주의 생수공장에서 일하단 열여덟 살 이민호씨가 생일을 나흘 앞두고 죽었다.


실화탐사대에서 추적한 손현승씨의 이야기는 손현승씨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당한 참극은 지독한 반복이었고, 그러기에 더욱 잔혹했다. 우리 모두가 손현승이지만 우리 모두가 손현승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편, 안전조치가 미흡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일하다가 숨지면 회사나 경영자를 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번에도 결국 국회 문 턱 넘지 못했다. 정의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국민의 힘까지 관련 법안을 내며 말은 많았는데, 말만 많았나 보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너무나도 당연한 이 권리를 찾는 게 대한민국에서는 어려운 일인 걸까?


돌아가신 모든 산재 노동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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