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리터러시 연습

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8

by 워커

돌아온, 『이미지 읽기』


“요즘은 주로 뭘 보고 있어?”

“저는 숏폼에 중독된 것 같아요.”

“그래? 프린터 만들고 있는 거 아니었어?”

한참 수제 프린터를 혼자 제작 중인 선재도 숏폼에 빠져 있나 보다.

“저도요, 바로 중독되는 것 같아서 끊으려고요.”

“숏폼의 가장 큰 문제가 뭘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짧은데도 재밌잖아요? 그러다 보니 마구 웃었다가 감동 모드였다가 정서적으로 너무 휘둘리는 것 같아요.”

“맞아요. 심하게 압축해야 해서 그런지 이상한 정보도 많아요. 팩트 오류도 많고요.”

“좋은 포인트네. 숏폼의 특성상 맥락이 다 빠진 채로 납작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지.”

“가장 문제는 중독성이 크다는 거겠죠.”

“그렇지. 중독되었더라도 멀리하고, 다시 읽고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 다시 뇌가 돌아오지. 뇌의 가소성 알지?”

숏폼이 패드(fad)로 지나가는 과도기적 매체일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오히려 숏폼만의 생장기를 지닌 채 시장을 넓혀 오래갈지도 모른다. 이미 숏폼 특성에 맞는 드라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Z세대에게 모니터의 크기나 영화적 미장센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이 몸의 일부가 된 세대에게 번거롭지 않은 스토리텔링 플랫폼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지막 어젠다인 ‘리터러시(literacy)’ 이야기를 할 시점에 와 있다. 리터러시만큼 우리말로 옮기기 어렵고 이해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비교적 가까운 표현은 ‘문해력’일 텐데, 문해력의 의미가 주로 읽고 이해하는 역량, 읽고 쓰는 역량을 일컫지만, 리터러시는 ‘맥락 안에서 정보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역량’에 가깝다 보니 완전히 겹치는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해력은 달리 말하면 리터러시를 갖추는 데 필요한 기초 역량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리터러시’만으로는 직관적으로 의미 전달이 어렵다 보니, 아쉽지만 ‘문해력’이라는 표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리터러시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움직임도 있다.

비슷한 사례로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표현이 있다. ‘성적 정체성’이라는 번역이 가까워 보이지만, 성적 욕망, 행위, 사회·문화적 태도까지 포괄하는 개념이어서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언어의 문화적 특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는 번역하지 않고 ‘리터러시’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쓰도록 한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역사


무엇이든 역사를 찾아보면 달리 보인다. 특정한 개념의 견고한 입체적 프레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문학에서 ‘역사 탐구’는 그 자체로 중요한 분과 학문이면서 다른 모든 영역의 중요한 연구 방법론이기도 하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같이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은 듯한 분야도 알고 보면 제법 역사를 가졌다. 꽤 오랫동안 바보상자로 불렸던 브라운관 TV 시대 이후로 대중문화의 첨병 역할을 한 미디어, 영상 분야의 리터러시는 이미 서구 사회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간단히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개념의 역사를 정리해 보면 이런 정도로 정리될 수 있겠다.


영화 교육 시대(Film Education Era)

-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TV를 중심으로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발전과 제도화가 이루어지면서 영국, 캐나다 등 서구 사회에서는 비판적 미디어 읽기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리터러시 교육에 영화를 포함한 영상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독해 교육이 포함되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의 확산기

- 1980년대~1990년대에는 리터러시 교육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며,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미디어 교육이 권고되었다. 본격적인 글로벌 담론화의 시작점이다. 대중매체의 부정적인 영향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전지구적으로 드러난 결과라 볼 수 있다.


디지털 환경 기반의 리터러시 개념 확산기

- 21세기에 들어서며 디지털 기술 기반의 인터넷, 스마트폰, SNS의 등장은 미디어 환경을 극단적으로 변화시킨다. 기술에 기반한 1인 미디어 시대와 참여, 공유, 집단 지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이 인간 지성을 과잉 제어하는 현상, AI의 부정적인 영향, 변별하기 어려운 가짜 뉴스의 확산 등이 문명적 도전으로 등장했다. 창의적 콘텐츠 생산 역량과 더불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수용, 윤리적 책임이 중요한 교육 어젠다로 등장한다.


2021년 PISA 보고서는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이라는 주제로 ‘학교에서의 디지털 관련 교육 경험’, ‘피싱 매일 인식/사실 확인 능력’ 등 두 개 항목을 측정한 국가별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다소 놀라웠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두 항목 점수가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의 결과를 보인 것이다.

정보 혁신 국가라는 이미지와 달리 정보 신뢰성 확인, 출처 확인, 디지털 위험 인식 등에서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AI 시대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들어야 할 문제다.


영화를 통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미디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영화만큼 좋은 교재는 없을 것이다. 영화야말로 미디어 그 자체인 셈인데, 심지어 미디어를 주제로 한 영화를 교재로 삼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교육 효과를 불러온다. 학생들과 책쓰기 수업을 할 때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 2007)’를 첫 수업에 함께 관람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라고나 할까.

수업에서 미디어 리터러시를 생각해 볼 만한 영화의 예를 들어보자. 시간이 충분하다면, 영화 전체를 보고 수업을 진행해도 좋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 후 함께 토론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찾는 것도 좋다. 중학교 학생 대상이라면 보호자 가이드가 필요한 영화도 있으므로 교사의 적극적인 개입도 중요하다.


시민 케인(1941)

- 언론 재벌의 미디어 왜곡, 이미지 조작을 그린 고전적 작품, 시대를 거의 50년 이상 앞서간 오슨 웰스의 천재성과 더불어 연구할 만한 영화.

- 영화사에 빛나는 미장센의 영화이자, 딥포커스의 교과서로 불리지만, 오래된 영화라 화면/사운드, 예술적 시도들이 이해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


더 트루먼 쇼(1998)

- 미디어가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왜곡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리얼리티쇼의 비인간성, 카메라를 통한 개인 감시 사회의 가능성과 윤리적 문제 등을 논의하기 좋은 영화.

- 쇼의 대단원에 슬퍼하다, 채널을 돌리자마자 표정이 바뀌는 시청자들의 모습은 다양한 각도로 토론할 만한 소재.


스포트라이트(2015)

-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의, 아동 성추행 사건 보도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15세 관람가이므로 교사의 지도가 필요하다.

- 그럼에도 탐사보도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사회정의란 무엇인지, 저널리즘의 역할은 무엇인지, 무궁무진한 토론 주제를 제공하는 영화.


그녀가 말했다(She Said, 2022)

-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영화계의 유력한 제작자가 오랜 기간 벌인 성추행, 성폭력 사건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두 기자와 편집팀의 탐사 보도 과정을 그린 영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에 대항하며 증언을 모으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담겼다.

- 권력 감시, 인권, 젠더, 탐사보도의 의미 등을 다룰 수 있는 좋은 교재. 소재를 선정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구조적 맥락을 다루는 영화이므로 교사의 지도하에 충분히 미디어 리터러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Works Cited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21st-Century Readers: Developing Literacy Skills in a Digital World. OECD Publishing, 2021.

UNESCO. Grünwald Declaration on Media Education. International Symposium on Media Education, 1982.

Citizen Kane. Directed by Orson Welles, RKO Pictures, 1941.

The Truman Show. Directed by Peter Weir, performances by Jim Carrey, Laura Linney, and Ed Harris, Paramount Pictures, 1998.

Spotlight. Directed by Tom McCarthy, performances by Mark Ruffalo, Michael Keaton, and Rachel McAdams, Open Road Films, 2015.

She Said. Directed by Maria Schrader, performances by Carey Mulligan and Zoe Kazan, Universal Pictures, 2022.

Freedom Writers. Directed by Richard LaGravenese, performances by Hilary Swank, Patrick Dempsey, and Scott Glenn, Paramount Picture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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