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7
기술이 우연히 예술을 만났을 때
“영화를 모션 픽처라고 부른 이유가 궁금해요.”
수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맞아, 모션이 앞에 나와 있기는 한데 결국 픽처라는 말이잖아.”
선재가 그럴싸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군. 새로 생긴 말이란 역사의 발자국 같은 것이니까, 말의 의미를 쫓아가다 보면 역사적 맥락이 바로 드러나겠지.”
영화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 정도는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 의제들 중 일곱 번째는 바로 <예술과 기술>이다. 예술의 수요가 기술의 진보를 불러왔는지, 기술의 형태가 예술에게 말을 건 것인지 모를 알싸한 복합체가 바로 ’ 영화‘이므로.
1878년, 미국. 움직임을 기록하고자 하는 작은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애초 모션 픽처(Motion Picture)”를 찍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정지된 장면을 찍는 카메라는 이미 등장했지만, 모션 픽처라는 개념은 아직 인류 역사에 나타나지 않은 시기였다.
말이 달리는 모습을 여러 장의 연속 사진으로 찍는다는 아이디어는 “동영상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달리는 말의 네 발이 모두 공중에 뜨는 순간이 존재할까?”라는 당대로서는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공중에 뜨는 순간이 틀림없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스탠퍼드 대학의 창립자 릴랜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였다. 이 주장을 입증할 방법을 찾다 나온 것이 연속 촬영 아이디어다. 스탠퍼드는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에게 누구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촬영을 의뢰했다.
마이브리지는 경마장에 24대의 카메라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뒤 각 카메라 셔터에 실을 연결해, 말이 달리면서 차례로 실을 끊게 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찍힌 사진을 연속으로 배열해 보니 네 발이 모두 공중에 뜨는 순간이 존재함이 드러났다. ‘움직임을 기록한 최초의 사건’ 《말의 움직임 연구(The Horse in Motion)》는 그렇게 많은 이들에게 모션 픽처의 영감을 던져주며 역사가 되었다.
마이브리지가 ‘말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시각화한, 글자 그대로의 ‘모션 픽처’는 움직임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거꾸로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움직임’을 재생해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1882년, 에티엔 쥘 마레(Étienne-Jules Marey)는 여러 대의 카메라를 쓰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 대의 카메라로 연속 노출을 가능하게 하는 기법,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를 창안했다. 그는 회전 드럼과 셔터가 달린 ‘크로노포토그래픽 총(chronophotographic gun)’을 발명해 초당 12 프레임을 연속 촬영하여 하나의 플레이트에 기록했다. 마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속된 이미지를 기록하는 최초의 카메라 ‘크로노포토그래프(chronophotographe)’를 완성한다.
이 사건은 이후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의 발명에 영향을 미쳤으며, 예술과 기술의 복합체로서 세상에 등장하게 될 영화의 운명을 결정한 분기점이 되었다.
드디어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선보이고, 토머스 에디슨 역시 1890년대에 키네토스코프를 만들며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위대한 영화의 역사, 그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영화를 움직인 기술의 진화
바로 그 1895년, 뤼미에르 형제는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이라는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열차가 역내로 가까이 다가오는 움직임을 거대한 화면에 영사하는 방식으로 재현했다.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었던 무성 영화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이어 1927년, 최초의 유성 장편영화 《재즈 싱어(The Jazz Singer)》가 개봉하며, 영화는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스토리텔링 매체로 재탄생했다. 기술이 결정적인 도약의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컬러 영화의 보급(1939년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와이드스크린 시대(1950년대)를 거쳐, 1993년에는 공룡 화석을 3D CG로 생생하게 구현한 《쥐라기 공원(Jurassic Park)》이 제작되었다. 이제 기술은 전면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2000년대 들어 영화는 디지털 촬영의 시대로 돌입했다. 2002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II: 클론의 습격》은 최초로 전체 영화를 디지털 촬영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한동안 유행했던 3D 영화와 모션 캡처 기술의 혁신 또한 영화 기술의 중요한 진보였다.
하지만, 인터넷 기술의 혁신이 불러온 ‘OTT’ 플랫폼은 영화를 극장이라는 몰입의 공간에서 분리시켰다. 2시간 러닝타임의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이 더 이상 의례적인 즐거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이미 도래했다. 톰 크루즈는 2023년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오프닝에 직접 등장해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는 극장 관람 문화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극장을 떠난 영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 미디어로서의 마술을 잃은 공룡으로 남을 것인가? 우리는 그 답을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1890년대의 사람들 역시 ‘모션 픽처’가 기술의 혁신과 더불어 변모하며 인간과 삶을 질문하는 예술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여전히 ‘아직 가지 않은 길’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