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창작 프로젝트, 길 찾기

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5

by 워커

벽돌 깨기


2011년 이후, 학교 교육과정에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것이 생겼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정식 교육과정이다. 교육과정 외 수업에 해당하는 방과 후 수업과는 다르다. 사회가 빠르게 변해 가는데, 기존의 교과 수업만으로는 교육 수요를 채우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의 결과물이다.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4개 영역의 필수 운영 시수를 지키면서 학교 재량으로 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애초 문제 해결 역량, 협업 역량, 자기 주도 역량을 키우고 시민교육, 사회교육, 인성교육을 담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져, 2015년부터는 진로교육을 강화하고 자유학기제와 연계하도록 했다. 2025년부터 시행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지속가능발전교육,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기후변화 대응 교육과 같이 세계가 당면한 새로운 과제들을 담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창의적 체험활동, 소위 ‘창체’의 쓸모를 논할 필요는 없다. 어떤 교육과정이든 운영하는 주체가 취지에 맞게 과정을 기획해 운영한다면 당연히 ‘쓸모’가 생긴다. 달성하고자 하는 교육 목표에 맞게 무형의 과정을 추구하는 만큼, 운영 주체의 역량이 고스란히 반영되기 마련이다.

교육 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면, 사회의 변화와 요구를 조금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점진적인 대응책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덕분에 학생들은 교과 수업의 부담 사이에 쉼표를 찍고, 교실 밖에서 직접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다만, 좀 더 밀도 있는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에너지가 무한대로 필요할 뿐이다.

창체 교육의 초기에 해당하는 2012년부터 한 해 한 해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 가다 보니 7년이 지나자 해마다 7개의 동아리를 운영하는 교사가 되었다. 고문 역할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 교육의 형태로 가다 보니 매일 시간에 쫓기는 처지가 되어, 고3보다 더 경직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융합교육을 추구하는 인간답게 인문, 공학, 수학, 예술을 융합한 STEAM, 연극, 책 쓰기 등 영역도 다양했다.

돌이켜 보면 상당히 미친 짓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주말을 반납하고 열정을 헌납한 수많은 시도의 이유를 정확히 직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어떤 학생은 입시에 도움을 받았고, 다른 학생은 스스로의 재능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단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분절화된 교과 수업으로는 도저히 달성하기 어려운 어떤 교육이, 토요일 3시간짜리 프로그램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꾸준히 경험하다 보면 새로운 시도를 멈추기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양산할지도 모를 학교를 깨부수지 않아도 조용한 혁신이 벌어질 수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엄청난 도전과 응전은 학교를 옮기고 나서야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혁신의 과정 역시 언젠가는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벽돌 깨기도 마찬가지다.


영화 창작 교육과정 만들기


영화 프로젝트는 좀 더 늦은 2023년에 들어서야 시작할 엄두가 생겼다. 기획의 방향성이나 영화광으로서의 전적으로 보면 우선되었을 법도 하지만, 어딘지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쪽에 치워두고 있었다. UCC 같은 형태로 이미 아이들이 직접 영상을 만드는 것이 일상적이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전혀 없어지지 않았지만, 2023년 영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남자 중학교라는 특성이 조금은 반영된 결과다. 스포츠, 특히 축구에 미쳐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문적인 활동을 기대하기 쉽지 않았던 환경. 거기다 유튜브의 시대, 책보다는 그나마 영상이 더 적합해 보이는 매체임은 확실해 보였다. 식상하든 아니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하도록 하려는 전략이 있었다.

2023년, 학교 창의적 체험활동 중 동아리 활동으로 영화 창작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몇 가지 작은 전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최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 활용

한때 『Canon EOS 5D Mark IV』와 같은 고급 사양의 카메라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영화 창작 교육과정에서는 본격적인 카메라는 지양하고 일상화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아이들이 만드는 영화의 작품성은 생활에서 나온다. 매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매체가 콘텐츠”라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때로는 매체에서 자유로울 때 콘텐츠에 더 집중할 수 있다.


2. 액팅 스크립트를 대본으로 활용

학생들, 특히 남학생들은 글쓰기를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창작의 지난한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겨내고, 써낼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프로젝트를 극도로 싫어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는 ‘상황’을 만들고, 상황을 직접 몸으로 재현하며 그 액션의 결과를 대본화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의욕이 부족한 친구들을 깨우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요즘은 소리를 문자로 바꾸는 솔루션이 많아 기록이 쉽다는 장점도 있다.


3. 동기부여 이벤트의 적절한 배치

누구라도 보상을 좋아하지만, 완전히 자기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면 적절한 보상이 더욱 필요하다. 간식, 칭찬 같은 단순한 보상보다는, 예를 들면 공모전 참가 같은 현실적이고 뚜렷한 목표, 작은 중간 목표 달성 시 축하 파티 같은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의미 있는 공모전이나 학생 대상 영화제 참가는 그 자체로 훌륭한 동기부여 이벤트지만,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경우 효능감을 무한대로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매개다.


물론, 이런 전술들을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학생 특성을 반영해 맞춤 방법론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젝트 교육과정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 역시 필요하다. 프레임이 합리적일 때 교육의 효과도 극대화된다.

이전 07화창의성의 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