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6
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학생들과 ‘학교 폭력’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다 보면, 눈앞에서 학교 폭력이 벌어지는 모습을 직면하고 경악하게 될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반응이 없는 클래스가 있기 마련인데, 어찌 보면 시끄러운 욕설 그룹보다 발동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원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뱉어내는 말들 사이로 험한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분노에 치를 떨다 근육 경련 같은 신체 반응까지 보이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주먹싸움으로 가는 일도 있지만, 주먹을 휘두르면 소위 ‘학교폭력자치기구’로 불려가게 될 것임을 아는 아이들이다. 지독하게 억눌린 악다구니 사이에서 제때 경고 휘슬을 불어주지 않으면 상황은 순식간에 악화된다. 혼란의 한가운데서 ‘말로 때리는 것도 폭력’임을 주장해 보지만, 들리지 않는 아이도 있다.
동아리건 반이건, 그룹 역동(dynamics)은 존재한다. 같은 풀(pool)의 『아는 아이』가 아니면 배타적인 요즘 아이들의 교제 범위가 그만큼 협소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같은 반이 아니어서, 초등학교가 달라서, 이상한 애랑 놀아서, 말이 어눌해서, 그룹과 자아를 동일시한 채 별 이유도 없이 무조건 공격을 외치는 아이들도 있다.
팀내 공격성이 높아진 상황을 냉정히 분석해 보면, 상황을 몰고 가는 교묘한 미드필더가 한두 명쯤 존재하곤 한다. 이렇게 암약하는 미드필더는 두 종류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우선은, 습관적으로 교묘한 통제를 시도하는 친구들이다. 이런 친구들은 조용히 관찰하면 머지않아 패턴이 드러난다. 넘치는 참을성과 방향성 있는 지도가 제공된다면 팀에 조금은 도움이 될 날이 온다.
두 번째 그룹은 소수이기는 하지만, 접근하기 쉽지 않다. 울퉁불퉁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어 행동 예측이 어렵다. 인간관계의 기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갑자기 학교에 안 나오거나, 수업하다 말고 사라진다. 어느 날인가는 소통이 된다 싶다가도, 갑자기 공격성이 튀어나온다.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겉돌다 끝난다. 조롱이 가미된 ‘톤 앤드 매너’만으로도 분노를 유발하는 강력한 힘을 지녔다. 보통은 ‘예의가 없다.’는 평판을 듣는지라, 교사들 중에도 고개를 젓는 이들이 생겨난다.
아이들도 이런 친구들의 존재를 잘 안다. 상자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입체적일 수는 없을지라도, 긴밀하고 뜨겁게 주변을 휩쓸어 버리는 토네이도를 못 본 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일까? 왜일까? 대체 왜 그런 걸까? 왜 변화가 보이지 않을까? 수십 번, 수백 번 되뇌다 보면 어느새 한 학기가, 학년이 끝나는 시점이 되어 있다. 영화 동아리의 캘린더 감각으로는, 촬영과 편집까지 다 마친 후 이제 공모전에 도전해서 뭔가 결과를 얻어, 학교 안팎에서 캠페인 활동을 벌일 시점 정도가 된다. 정확히 그 시점, 이제 졸업을 앞두고 뭔가 허심탄회해지는 그 시점에 드디어 문이 열린다. 마법의 시간.
마이크 드롭
우리는 학생 공모전 전시장에 앉아 있었다. 과제 결과물을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이 목적인 자리. 나를, 내가 구축한 나의 세계를 설명할 마이크를 공식적으로 부여받는 시간이다. 마이크를 쥘 수 있느냐 없느냐야말로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지표임을 온몸으로 공감하는 세대. 마이크가 정의나 진실과 같은 가치와 시소게임을 벌이게 될 줄이야.
“들리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들리지 않는다고 무의미한 것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마이크를 빼앗기는 것을 하나의 거대한 패배로 인식하는 경향이 지금 우리 안에 있음을 발견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공모전의 시상과 전시, 상영이 이루어지는 자리 언저리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사회적 자아가 각성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짐짓, 우리가 관객들에게 꺼내 보인 가치들이 한없이 중요한 무엇이라도 되는 듯 열성적으로 캠페인 활동을 벌여본다. 미소를 짓고, 말을 걸고, 스토리를 전달하고, 동의를 구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때로는 스스로 감탄한다.
캠페인의 힘은 그런 것이다. 나 자신을 가장 깊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팬서비스 차원에서 멋진 캘리그래피를 선물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오래간만에 평화로운 대화를 나눈다. 만남과 일탈의 시간을 채운 즐거운 기억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 관한 대화.
그제야, 겨우 그제야, ‘아 그랬구나, 그런 이유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내적 탄식이 저절로, 천천히 흘러나온다. 왜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왜 이전에는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관계가 숙성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을까. 마지막의 마지막이 펼쳐지는 순간에 간신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우리는 잠시 바라보며 웃었다. 설사 미리 알았더라도 과연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었을까를 의심하면서, 그래도 조바심 없이 함께 앉아 그림을 그려갔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각이 우리의 지평을 더욱 넓혀주었을지도 모른다. 존재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우리들을 일으켜 세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마이크를 바닥에 던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아마도 그 순간만큼은 그 애도 그랬을 것이다.
캠페인을 위한 제언
캠페인은 영화 편집본의 완성 후 세상에 결과물을 제출하는 과정이다. 폭력에 반대하고 폭력을 거부한다는 대항의 몸짓이기도 하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두 ’bystander(방관자)‘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세상의 폭력을 감시하고 결단코 용인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간.
이상하게도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마법적인 소통의 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우리가 '못된 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떤 아이에게 드러나지 않은 너무도 중요한 이슈가 있었음을 문득 알게 되는 순간.
성공적인 캠페인을 위한 제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 작은 교실부터 전국적인 행사장까지, 캠페인의 장은 어느 것이나 될 수 있지만, 적어도 한 개는 ’계기 학습‘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정도의 규모를 갖춘 전국적인 이벤트를 추천한다. 가능하다면 국제행사 등 다국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문화제 등의 행사 참여도 의미 있다. 외부 행사가 다른 차원의 사회적 각성을 안겨준다면, 학교 안에서의 마이크는 여전히 아이들의 그룹 역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캠페인의 형태는 피케팅, 전단 돌리기, 공연, 상영 등 다양한 방식을 복합적으로 진행한다. 마이크는 다양할수록 의미를 더한다. 마이크 드롭의 그 순간까지, 하고 싶은 말을 ’미디어 믹스‘ 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 캠페인을 시행하고 난 뒤에는, 참가자가 함께 원형으로 모여 앉아 진실의 순간을 갖는다. 활동 결과에 대한 자기평가의 시간이다. 4-5줄 짜리 소감 에세이를 쓰고, 발표하게 한다. 모든 참여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기회를 준다. 객관적인 자기평가의 기억은 자긍심과 공감력을 동시에 올려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