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거들뿐

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3

by 워커

시간의 지도


“이 정도 결과물이면, 머지않아 소설가도 사라질 것 같아요.”

선재의 외침은 과장된 것일까. 아이디어 스케치를 AI에게 평서형 소설체 문장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니, 제법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다.

소설가 한강의 문체로 인공지능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250쪽 분량의 르포르타주 소설로 써 달라는 주문이, 꽤 설득력 있는 결과물로 돌아온다면, 이제 소설은, 소설가는, 그들의 창조물은 어떤 정체성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될까를 곱씹어보게 되는 시점이다.

적어도, GPT40, Claude, Gemini 등은 이미 어느 정도 작가 스타일 모사가 가능하다. 아직은 모사라는 관점에서도 초보적인 수준이라는 점에서 안심해야 할까? 지브리의 작가주의가 한바탕 ‘지브리 스타일 프로파일 만들기’ 소동으로 시험대에 올라온 것을 기억한다면, ‘창작’의 신비는 더 이상 영원한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을 수 없을지 모른다.


불과 6개월 전,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어 ‘AI는 거들뿐’이라며 열렬히 주장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만 해도 AI는 빠르지만 거짓말을 잘하는, ‘대용량 데이터 압축 접근 로직’ 같은 존재라는 인상이 강했다. ‘환각 현상(Hallucination)’은 자주 목격되었고, 데이터 집적 없이 만들어진 결과물은 자주 부실했다.

그 와중에도, 사진·영상 영역에서 AI가 불러일으키는 급격한 변화를 걱정했다. 이미 우리나라의 광고·미디어 업계에서도 사진, 영상 분야 고급 전문 인력이 AI에 자리를 내주는 현실을 언급하며, 인간이 주체가 되는 프로젝트에서 AI의 도움이 ‘왼손처럼’ 거들 때 가장 효과적인 결과물이 나온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미 과거형이다. 단지 6개월이 지난 뒤다.

전국의 강사들이 참여형 프로젝트 방법론을 배우기 위해 모인 자리. 많운 이들이 작은 과제에도 손쉽게 챗GPT를 찾는다. 결과물에 대한 찬탄이 이어지고, 인간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인문학적 지식체에 대한 경외심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자취를 감춘 느낌이다.

인문학적 접근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다. 생각의 모색도, 궁리도 없다. 조금이라도 난도가 있는 과제를 던져 놓으면, 조바심 어린 손가락이 어느새 AI를 향하고 있다.

며칠 전, 미국 매체의 한 칼럼에서 누군가의 솔직한 속내를 읽었다.

“나는 AI가 빨래나 청소를 대신해 주기를 원했다. 그동안 나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AI가 내 대신 시를 쓰고 영상을 만들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이보다 더 지금의 현실적 충격을 잘 설명한 말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 바람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AI는 여전히 인격체가 아니다. 연구자 대부분은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전망한다. ‘인조인간’의 뉘앙스가 ‘AI’라는 말에 담겨 있기에 생기는 착각이라고들 말한다.

AI는 거대한 규모의 데이터 없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판단하지도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윤리적 판단, 가치 지향적 판단을 할 수 없다.

지금도 AI가 뱉어낸 산출물은 인간의 손으로 다듬고 정제해야 한다.

AI는 단지 로직 안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재조합하는 기술적 능력을 발휘할 뿐이다.

두려워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 파도를 올라타 미친 생산성을 즐기면 그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속도가 두렵다.

그 편리함과 속도에 밀려, 궁리와 상상, 열정 어린 사고의 도전을 너무 빨리 놓아버리는 인간의 관성이 두렵다.

우리가 영위하는 오늘의 삶이, 내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 안에 놓이게 될 것임이 분명해 보여서 두렵다.

시간의 지도가 존재한다면, 그 지도 안에서 2045년에 벌어진 일들을 먼저 들여다본 누군가가 있다면, 인간 문명에 닥친 이 엄청난 윤리적 도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결론을 따른다면, 우리는 시간의 지도를 가질 수 없다.


전환의 문법, 그럼에도


“수고스럽겠지만, 우리는 AI와 관계 맺기의 새로운 기준을 찾아야 할 거야. 그동안의 인류는 알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관계 맺기니까. 그러려면 우선 그 바닷물에 발을 담가야 하겠지.”

AI의 파괴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힘을 고려한다면, 비관적인 디스토피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난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속도를 앞질러 흐름을 제어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일 것이다. 관계의 규칙을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AI에 대한 창작권과 노동권을 새로 쓰기 위한 2023년 할리우드 WGA(Writers Guild of America) 소속 작가들과 SAG-AFTRA 배우들의 파업, 그리고 2025년 게임업계 음성 및 모션캡처 배우 파업은 매우 중요하고 전향적인 움직임이다.

AI가 인간 작가들을 대체하는 현상이 이미 미국 영화 산업계에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예상보다 손쉽게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촉발제다. 촬영 현장에서 즉시 자동 스크립트를 만들 수 있다면 투자자는 더 이상 느리고 비싸며 변수 많은 인간 작가들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AI는 인간 작가들의 열정과 고뇌,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서 쌓아 올린 언어의 탑을 그 누구에게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재구성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가들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보호 장치를 제도화하는 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당연한 수순이다.

배우들의 경우도 심각한 권리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AI는 배우의 신체적 특징과 음성을 디지털화하여 재구성할 수 있다. 위협적인 현실이다. 디지털 복제의 시대, 배우가 영화 한 편을 촬영하면서 거기에 투자한 시간과 노동에 대해 대가를 받는 시스템만으로는 그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 임금 구조의 개편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창작의 권리, 배우의 노동권과 관련해 최소한도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작가 파업 시 AI 작업 중지와 같은 신설 조항들은 AI의 작가 대체 가능성이 이제 더 이상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불러일으킨다.


예상과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예술 분야는 오히려 AI의 진입이 가장 쉬운 분야처럼 보인다. 멀리 미국의 영화산업으로 갈 필요조차 없다. 이미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의 영역에 와 있다.

AI의 바다에 발을 담그는 차원에서, 영화 창작 프로젝트 안에 기획 단계부터 AI를 활용하는 방안들을 고려했다. 그 생산성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변화의 거센 속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 작업에서 실험적으로 일부 장면에 애니메이션을 편집해 넣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실사 영상을 먼저 촬영하고 편집한 후, GPT 엔진이 적용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활용해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해서 적용할 수도 있다. 전환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수 분 정도에 불과했다. 결과물은 영화에 삽입해도 충분히 좋을 만큼의 수준이었다.

불과 4년 전, 평범한 캠페인용 15분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 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예산을 투입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충격적인 생산성이 아닐 수 없다. 할리우드의 영화투자자들과 스튜디오들을 탓하기 힘들 정도의 흡인력이다.

이 거대한 질적 변화의 속도를 몸으로 체감한 후에야 비로소, ‘인간과 AI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AI는 거들뿐’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무엇보다, 윤리적 의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AI 활용의 프로토콜을 만들고, 노동권을 포함한 법적 권리의 제도화라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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