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개의 의제

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1

by 워커

제1장 영화교육 어젠더 #1

의제는 발굴하는 것


“학교폭력, 주제로는 좀 뻔하지 않아요?”

선재는 웃음 띤 얼굴로 묻는다.

“음, 큰 테두리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영상으로 보여주기에 편리한 주제긴 하죠.”

선재의 절반쯤은 비판적인 어조에 수영이 답한다.

“보여주기 편리해서 선택한다면 안 되지 않나요? 예방하자면서 폭력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점심시간 20분의 뜨거운 회의가 무르익고 있었다. 비록 세 명이 모인 작은 회의에 2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은 애매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것도 매일 거듭되며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 학생도 바쁘다. 때로는 어른들보다 바빠 보이기도 한다. 빠르건 느리건, 기초가 있건 없건, 방과 후에는 학원이 기다린다. 영어와 수학, 때로는 주요 과목 모두를 학원에서 배운다. 학원은 학교보다 강력하게 아이들을 규제한다. 대체로 양육자들이 그런 규제를 원한다고 들었다. 양육자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해이해져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까.

학교를 공적인 사회생활의 연습장으로, 성적을 평가받는 기관으로 받아들인다면, 학원은 학교라는 평가의 전쟁터에서 잘 해낼 수 있는 비법을 절차탁마하는 곳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양육자가 학교 교사들, 특히 중학교 교사들에게 쏟아내는 민원의 주요 원인은 교사의 생활지도와 관련되어 있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진짜 사회와 연결될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내 아이가 혹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향후 콤플렉스로 남을 만한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양육자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걱정은 이제 법적·사회적 분쟁으로 구체화된다.

바쁜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해 점심시간 20분이라는 틈을 마련했다. 이 시간만큼은 교사도 학생도 아닌 팀의 일원으로서 협의한다. 브레인스토밍 형식의 회의는 일종의 기획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제작하고자 하는 영화를 사전 기획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영화 제작의 창작자로서 회의에 참석한다. 가급적이면 전체 동아리원이 모두 참여하면 좋겠지만, 열 명 안팎의 아이들이 거의 매일 모이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프로젝트 교육과정을 교실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다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산출될 콘텐츠의 방향성과 메시지, 구체적인 형태를 협의하는 일은 큰 도움이 된다. 이런 회의의 형식조차도 교육과정의 일부분으로 형태화할 수 있다. 즉, 영화 제작 단계의 일부로서, 교육과정을 탄탄하게 다지는 과정으로서 양쪽에 모두 유용한 전략이다.

한 달이 넘는 릴레이 회의 끝에, 결국 여덟 개의 어젠다를 발굴해 냈다.

중학생의 눈높이에서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영화를 창작하려는 수업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의제는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다. 오늘의 교실에서 창작 콘텐츠 제작의 면모를 다층적으로 다루기 위해 반드시 논의해야 할 주제이자, 배움의 기초가 될 의제들이다.


“그러면 보드에 지금까지 얘기 나눈 의제를 정리해 볼게요.”

정리하기 좋아하는 수영이가 냉큼 나선다.

“그래, 같이 써보자.”

선재도 마카를 들고 나란히 보드 앞에 서서, 하나하나 의제가 될 말들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프로젝트의 흐름을 즐기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순항하고 있다는 증거다. 제법 균형이 잡힌 의제들이다. 이제 이것들을 프로젝트 교육과정 안에 담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발굴된 8대 의제>

의제 1: 사회적 가치

의제 2: 학교 폭력 예방

의제 3: AI의 활용

의제 4: 창의성의 이해

의제 5: 영화 만들기 과정 탐구

의제 6: 캠페이너 되기

의제 7: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관계

의제 8: 미디어 리터러시



의제 다듬기


“폭력을 예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나도 그런 생각해봤어.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가해자가 되지 말자는 뜻인가? 가해자가 되지 않게 예방할 수가 있나? 말이 좀 이상하지 않아?”

수영의 질문 세례에 선재도 질문으로 응답한다.


설명이 필요한 문제다. 손쉽게 ‘예방교육’으로 불리는 교육들이 학교 안팎에서 넘쳐난다. 예를 들면, 학생들도 아동학대예방교육을 해마다 필수적으로 받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의무 교육이다.

이 교육의 실효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양육자나 아이를 지도하는 교사, 교직원, 관련 기관 종사자들에게 아동학대예방교육을 시행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진다. 신생아를 포함해 영유아가 죽임을 당하거나, 신체적인 폭력이나 방임을 당하는 뉴스를 보며 공분을 느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육자 교육의 일환으로 이 교육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아동·청소년 당사자에게 교육이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아동학대를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어른들의 정당한 훈육조차 112에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아이들이 늘어날까 봐 우려하는 인식도 존재한다. 때로는 훈육과 학대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아동학대예방교육은 아동·청소년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자기 보호 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어떤 행동이 학대에 해당하는지를 알고,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주변 친구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그 정황을 알아채고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익히며, 이를 실행할 힘을 기를 수 있다.

아동학대예방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인권 의식을 갖추고, 사회 전반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공동체 전체의 아동학대 발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방교육에 대한 메타적 인식은 교육 수요자에게도 필요하다.


“좋은 질문인데?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이야기한 대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치유와 일상 회복 중심의 교육과,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 중심의 교육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생각해. 학교폭력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지. 그게 바로 인권 의식이고.”

“폭력을 예방한다는 말은, 공동체 안에서의 폭력 발생을 줄이자는 뜻이군요.”

“맞아. 그런데 요즘은 ‘예방’이라는 말로는 약하다는 의견이 많아. ‘대항’은 어때? 폭력 대항.”

“좋은데요? 그러면 의제 2도 ‘학교폭력 대항’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대항’이라는 표현은 방관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수영이가 흡족해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의제 하나하나마다, 과연 무엇을 어디까지 다룰지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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