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III : 그냥 둔다

by DL

​여전히 오가는 차들이 많은 주차장에

잠깐 기다리다 주차한다.


​1년 만에 스튜디오 비밀번호를 변경했다.

​습관적으로 이전 숫자를 누르고 몇 초 고민한다.

바뀐 번호를 인지하고 다시 입력해 들어간다.


​두 명 정도 있나 보다.


​내 연습실에 들어가 아이패드를 켠다.

좋은 음악들이 화면에 떠오르고 자연히

그 앞에 머무르다 눈에 들어온 앨범을 택한다.


​곱슬한 머리에 옆모습으로 앉아있는 사람이

흑백으로 담긴 앨범이다.


​어딘가를 보고 있지만 목적이 있다기보다

지나가는 현상에 시선을 두는 정도의 사진.


​손에 닿는 의자를 당겨 앉는다.


투박한 발음들, 공기를 간지럽히듯 건드리는 투명한 목소리.

낭독되는 텍스트에 붙은 발성이 발견된 문장을 말해준다.


​음악을 좀 듣다 눈에 들어오는 텀블러를 본다.


​통로로 나간다.

한쪽에 마련된 공간을 찾는다.



​캡슐커피가 들어있는 트레이에서

파란색 알맹이 하나를 골라 머신에 넣는다.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는 성악가의 목소리

'윙' 소리를 내며 우는 커피머신과 덮쳐 울린다.


​테이블로 이어지는 진동이 공간을 순간적으로

지배해 텀블러를 들고 있는 손과 귀 주위를 두르고

공기와 공명하며 작은 지진을 이룬다.


​타버린 캡슐에서 흘러나온 커피에 따뜻한 물을

좀 더 담는다.


저조도로 밝히고 있는 통로를 지나 연습실로 돌아간다.

​의자에 앉아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본다.


​지나간 곡 중 마음을 끄는 노래가 있지만

그대로 두고 연가곡을 듣는다.


​피아노 의자 위에 텀블러가 놓이고

손은 잠시 머무르다 팔짱을 낀다.


​온풍기로 덥힌 공기가 시간이 길어져 텁텁하다.

환기가 필요하다.


​가볍게 문을 열어 두었다. 몇 분 후 반쯤 닫는다.


​열린 문에 얼굴이 비치며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들어오라고, 반갑다고. 언제 왔냐고 묻는다.


​미소를 보이는 얼굴에 연가곡이 겹치고

같이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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