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이름은> , <날씨의 아이> -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물론 한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감독의 스타일이 묻어날 수 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괴상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가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등에서 계속해서 가족을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 우리는 이처럼 일관된 세계관과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감독을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두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 두 영화 모두 10대 남녀가 주인공인 점, 재해가 주요 배경인 점, 내레이션과 OST가 삽입되어 인물의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 두 주인공이 이어진다는 점, 일본의 신화적 요소가 사용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 중에서 10대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내레이션을 사용하는 것은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혜성이 떨어지고, 도쿄에 이상기후 현상이 벌어지는 재해가 배경이며, 가사가 들어간 OST의 사용과 ‘신사’,‘무스비’,‘무녀’ 등 일본 신화적 요소의 사용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두 영화만의 요소다. 무엇보다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에서 이어지지 않던 주인공들은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는 어른이 되어 재회하는 결말을 맞는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선 ‘재후’, ‘포스트 3.11’이라는 말이 등장하며, 진재문학, 원전 문학이 비평 용어로 사용되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인터뷰에서 “지금이 아니면 만들 수 없었던 작품이고 2010년대의 일본에 살지 않았다면 전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라고 밝혔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내가 사는 마을이 내일 당장이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을 2011년 이후 일본인 모두가 무의식 중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환경이 바뀌고, 그 바뀐 환경 속에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내용도 예전과는 달라졌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즉,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공통의 경험은 사회를 변화시켰고, 감독은 그 변화된 사회에 영향을 받았다. 이후 만들어진 두 영화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빛을 통해 공간과 사물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민규 교수는 “신카이 감독의 작품들이 영화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에는 이러한 빛을 활용한 묘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이와 함께 그의 작품에는 실제 장소들이 등장한다. <언어의 정원> 속 주인공이 만나는 오두막은 신주쿠교엔에 있으며, <초속 5센티미터>에서 주인공이 어른이 된 후 스쳐가는 건널목은 산구바시 역 건널목을 배경으로 한다.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가 사는 이토모리 마을은 기후현 히다 후루카와와 나가노현의 스와 호수를 실베 배경지로 삼았다. <날씨의 아이>에서도 호다카가 고양이를 만나는 가부키초와 히나와 호다카가 처음 만나는 맥도널드 등을 실제와 똑같이 영화에 담아내었다.
"실제 세상이 이 애니메이션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쿄조차 지금 모습으로 있지는 못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너의 이름은.’ 에필로그에서 주인공 타키가 구직 활동을 할 때 ‘도쿄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 대사는 작품 만들 때 내가 절감한 것이었다. 도쿄가 바뀌어 버리기 전에 영화에 기억을 담아두고 싶은 마음, 언젠가 닥칠 재해에 준비한다는 기분으로 ‘내 영화에서 먼저 바꿔버리자’라는 마음이 동시에 있었다. 그런 마음이 도쿄의 비주얼을 치밀하게 묘사한다든지, ‘날씨의 아이’ 라스트 신처럼 눈 딱 감고 도쿄가 제대로 물에 잠기게 해버린다든지 하는, 그런 묘사로 이어진 것 같다.”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반면 <너의 이름은>은 남녀의 몸이 바뀌고, 혜성 충돌로 죽은 500여 명의 마을 주민을 살린다는 판타지 요소가 접목되어 있다. <날씨의 아이>도 마찬가지로, 도쿄에 이상기후로 인해 계속 비가 온다.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은 빛과 공기감을 통한 실사 이상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이는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가 사라져 버릴지 모를 공간에 대한 기록이 사실적인 묘사의 이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혜성 충돌로 인한 호수의 변화, 침수된 도쿄의 모습과 같이 익숙한 지형의 변화는 사실적이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 몰입하게 만든다.
재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10대 주인공이다. <너의 이름은>에서 사당으로 가서 미츠하가 만든 술을 먹는다. 이로 인해 혜성이 떨어지는 날 미츠하로 변한 타키는 사람들을 살릴 계획을 세운다. 텟시와 사야카는 미츠하에 계획에 동참해 발전소를 폭파하고 학교 방송실에서 대피방송을 한다. <날씨의 아이>에서 히나는 ‘맑음 소녀’로 비가 오는 도쿄 하늘을 맑게 한다. 그리고 히나는 나츠미로부터 ‘날씨의 무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를 희생한다. 여기서 주인공들은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간다.
특히 젊은이들이 다가올 미래의 가능성을 굳게 믿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동경하는 대상을 보더라도 불가능할 것이라 여기고 많은 걸 포기하며 살고 있다. 힘든 일상에서 노력하는 인물들을 그리고 싶었다.
자기 스스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의 소중함과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재난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 애초에 혜성이 떨어지지 않게 하거나, 비가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가뭄과 홍수는 예측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이처럼 막막한 일에 우리는 포기하거나 체념해버린다. 이런 재난을 속에서 주인공들은 살기 위한 길을 만든다. 이를 통해 감독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운명마저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혜성에 의해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죽는다는 미래를 타키와 미츠하, 텟시, 사요카의 노력으로 바꾼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미츠하, 텟시, 사요카는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 날씨의 무녀로 희생될 운명이지만 그런 히나를 구하기 위한 호다카 달린다. 그리고 나기, 나츠미, 스가의 도움으로 히나는 호다카와 함께 돌아온다. 졸업한 호다카가 히나를 재회하러 가는 장면에서 물이 잠긴 도시에 적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춘다. “스스로를 위해서 기도해”라는 호다카의 대사처럼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기를 감독은 희망한다.
주인공들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었던 원천은 기억에 있다. 어느 순간 타키는 미츠하와 몸이 더 이상 바뀌지 않는다. 이때 타키는 미츠하에 관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미츠하가 살던 마을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미츠하가 3년 전 혜성 충돌로 인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미츠하를 망각하고 꿈으로 치부했다면 미래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신카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멋대로 ‘이렇지 않았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중요한 일인데 뭐였더라?’라고 느끼는 순간도 있죠.
카미키: 거기서 포기하느냐 마느냐…… 인 거네요.
우리는 기억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만다. 이토모리 마을의 호수는 1200년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의 충돌로 생겼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미야미즈 신사가 존재하지만, 기록의 손실로 무엇을 기리는지 잊어버렸다. 또한 타키는 3년 전 뉴스에서 혜성 충돌로 마을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지만, 미츠하의 마을 찾아가기 전까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도쿄의 하늘이 다시 맑아지고 사람들은 기뻐하지만 정작 히나의 희생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언가 잊어버린 순간 그게 무엇인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점차 잊힌다. 그래서 우리는 재난을 재난의 피해자들을, 재난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감독은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타키와 미츠하는 황혼을 지나 헤어진 후 서로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부르던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말하며 그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찾는다. 그리고 도쿄의 지하철에서 만나 둘은 재회한다. 후다카와 히노도 잠시 떨어지지만 후다카와 히노가 다시 만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앞서 말했듯이 이전 작품들과 달리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서 두 주인공이 이어지는 이유는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함은 아닐까?
<너의 이름은>에서 서로를 잊어버릴지 모르는 순간에 타키는 왜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좋아해’라고 썼을까? 그건 아마도 반드시 기억해서 당신을 찾아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츠하가 타키를 찾아가 매듭 끈을 건네주고, 타키가 미츠하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찾아온 것처럼 그들은 서로 반드시 잊지 않고 찾아가겠다는 약속이다. <날씨의 아이>에서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희나를 구하는 후다카는 그동안 우리가 묵인해왔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고 보여준다. 두 영화 모두 재난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함께 나아간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는 이전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10대 남녀가 주인공이고, 빛을 활용한 세밀한 작화 연출은 그의 초창기 작품부터 계속되는 감독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양상과 이유는 달라졌다. 남녀 주인공은 더 이상 헤어지지 않고 재회한다. 일상의 세계와 환상적인 세계가 만나 재난 속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재난이라는 현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 이러한 타키와 미츠하, 후다카와 히노를 통해 감독은 현실에서 재난을 기억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를 관객들에게 말한다.
참고도서
신카이 마코토 Walker, 신카이 마코토, 대원씨아이, 2017
논문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에 나타난 재해」, 윤혜영, 일본문화학보, 한국일본문화학회, 2018, 177-192
「재난서사 속 신화적 상상력과 무녀의 역할 - 신카이 마코토 영화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를 중심으로」, 김여진, 『신학과 학문』 제23권 제1호, 삼육대학교 신학연구소, 36-64, 2021
「신카이 마코토의 이야기 세계」, 김삼력, 아시아영화연구, 부산대학교 영화연구소, 2019, 67-86
「아니메의 애니메이팅에서 나타나는 리얼리즘과 상상력의 표현 연구 -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중심으로-」, 최민규, 『조형미디어학』 제24권 제1호, 한국일러스트아트학회, 2021, 95-103
「신카이 마코토의 '세카이계' 연구 너의 이름은 을 중심으로」, 양원석, 권희주, 『일본연구』 28권 0호,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2017, 235-258
기사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인터뷰"'기생충'과 '날씨의 아이'의 반지하방은 서로 닮았죠", 최원석, 조선일보, 2020.04.11.
[취재파일]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인터뷰, 곽상은, SBS 뉴스, 2017.01.17.
[최원석의 글로벌 인사이트 6]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듣는 ‘격차사회 생존법’
“세상이 미쳐버려도, 내가 있으니까 너는 괜찮아”, 최원석, 『이코노미 조선』 344호, 2020.04.20.
영원한 소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계, 홍성윤, 매일경제, 2019.11.08.
[만화로 본 세상]<너의 이름은.>-세카이를 알게 하는 방법으로 연애를 택하다, 조익상(만화평론가), 『주간경향』 1212호, 2017.02.07.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 배경이 된 도쿄를 탐험하다, 김현수, 씨네21, 2019.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