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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Apr 13. 2024

남편에게 생긴 비밀

남편이 나로 살게 해달라고 한다!

문 소리에 놀라 깼는데 시계를 보니 6시였다.

남편이 나갔다.

'어딜 갔을까? 편의점? 이 새벽에 못 참고?'

이런 생각이 막 몰려왔다.

그런데 한편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다.

'아닐지도 몰라'


조용히 나가 거실로 가니 핸드폰이 그대로다!

현관으로 가 신발을 보니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운동을 간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들어오는데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남편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편의점에 갔다면 와야 할 시간은 지났다. 그렇다면 편의점은 아니다. 그럼 이 새벽에 누굴 만나러 간 걸까?

별의별 생각과 상상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또 이런 음성이 들렸다.

"남편을 믿어주자"

이 정도의 시간이면 둘 중 하나다! 누굴 만났거나 집 앞 산책길로 운동을 나갔거나!

난 좋은 쪽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운동을 갔을 거야!'


두 시간이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들어왔다.

"여보 어디 갔다 와요?"

"청계천에"

"운동 다녀오는 거예요? 갑자기 나가서 깜짝 놀랐어요. 기다렸어요"

"나를 찾고 왔어! 해가 뜨는 걸 보고 왔어"


놀라운 일이다. 남편이 스스로 일어나 산책을 하고 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책에서나 볼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를 찾고 왔다니... 이제부터 나를 찾을 거라니...

어제 남편과 작은 말다툼을 했다.

남편의 병을 알기 전부터 돈이 생기면 술을 사서 마실 것만 같아 남편 몰래 남편의 모든 돈을 내 통장으로 입금했다. 바지 주머니에 있는 돈도 동전 하나까지 모두 내 지갑으로 넣었다.

어제도 그랬다. 그걸 알게 된 남편이 나로 살게 해달라고 화를 냈다.

'나로 사는 것이 술을 마시는 것인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이 말을 꾹 삼켰다.  


남편이 꼭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닐 텐데 내 상상 속 남편은 내가 없을 때 술을 마실 것만 같아 불안했다.

퇴근하고 거실에서 마주친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술기운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겠는데 증거가 없다.

내가 그렇게 보려고 애쓰는 것은 아닌가? 하며 술을 마셨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다스렸다.

저녁을 차려 밥을 먹는데 남편이 밥도 잘 먹고 평소와 같았다. 나에게 나로 살 수 있게 내버려 두라고 말한 것 외에는! 목소리가 조금 커지고 평소보다 말 수가 많아진 것 외에는!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을 물리치고 있는데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밥 먹을 때 술을 찾는 건 아니잖아!"

"혼자 몰래 술을 마신다고 해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마시고 안 마신 척하잖아"


습관이 무서운 거라 기도했었다. 남편의 습관을 바꿔주시라고! 식사와 연관된 습관을 끊어내어 주시라고!

며칠 전 남편은 밥 먹을 땐 찾지 않더니 자기 전 맥주를 찾았다. 그래서 사다 줬다.

'그래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거야'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울며 바랬었다. 평범하게 남편 손 잡고 동네를 걷고, 산책을 하고, 마트에 장 보러 가고... 그렇게 살 수 있기를.. 그게 가장 큰 소원이었다.

평범을 찾았는데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기 전 맥주 한 잔 정도는 가볍게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남편의 건강은 그걸 받쳐주지 못하게 되었다. 이젠 평범함 이상의 것을 구해야 한다.

남편이 마시는 맥주는 무알콜 맥주다. 아빠의 건강이 걱정되어 딸이 아빠에게 알려주어 어쩌다 생각이 나면 마시고 있다. 그것까지 못하게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함께 아침을 먹을 때에도 남편은 내 인생은 내가 살게 놔두라는 말을 여러 차례 내게 말했다.

'이 사람 정말 살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사람 안에 있는 옛 것이 쫓아내지 말라고 내게 하소연하는 것일까?

'살고 싶다면 알아서 잘하겠지?'

분명 남편 안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걸 테다.

살고 싶은 두 인격체가!

하나는 "너 이렇게 살면 얼마 못 산다자나!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남편을 조용하게 만들 테지만

하나는 "남은 시간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며 살아! 뭐가 무서워 죽기밖에 더하겠어? 하던 대로 해"라고 하며 남편을 움직일 테다. 움직이지만 움직일수록 죽음 가까이로 데리고 갈 터이다.

둘 다 살고 싶어 아우성을 한다.

그게 보여 나는 괴롭다.


그런데! 어제부터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다.

"알아서 하게 이제 그만해! 잘할 거니까 믿어주고! 이젠 하나님께서 하실 거야!"

아까 생각했던 것들이 또 줄줄이 뒤 이어 나온다.

"밥 먹을 때 찾지 않는 게 어디야"

"습관처럼 먹지 않잖아"

"자신도 노력하고 있는 걸 거야"


믿어주고 싶다. 믿어주고 싶다. 믿어주고 싶다. 믿어주고 싶다. 믿어주고 싶다.

백번을 되뇌고 되뇌어...  내 눈을, 귀를 바꾼다.

이젠 남편이 돈이 있어도 술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할 계획을 세우는 말이 들린다.

안 하고 있는 것을 본다.


하나님 저 잘하고 있는 것 맞죠?

우리 남편 꼭 살려주세요!

내 눈에 진실이 보이게 해 주세요. 내 귀가 열리게 해 주세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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