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로데오 거리를 지나다 문득 상가 1층의 비어있는 곳을 지나간다. 임대라는 현수막에 곳곳이 많이 보인다. 꽤 여러 달째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점포는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이곳은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금방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리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비어 있는 것을 보면 새로운 점주를 만나는 것이 요원해 보인다. 비단 이곳뿐 아니라 지하철 역전의 상가건물들도 비어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신도시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한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전국의 상가 공실율이 상당하다고 한다. 바야흐로 오프라인 점포의 위기가 목전에 다다른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시대적 조류는 이미 변화무쌍하게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로 이런 현상은 심화되어 비대면 구매가 상상 이상으로 많아지고, 그동안의 가치관은 수정을 요구받고 있다. 회사의 젊은 친구들의 대화에서도 그런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근처의 아웃렛과 백화점이 있지만 그곳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탐방하는 장소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실질적인 구매는 할인율이 마음에 드는 온라인 장터에서 구매할 심산들이다. 음식 또한 배달이 워낙에 성행을 하니 거리, 장소를 불문하고 클릭 한 번으로 주문을 하면 끝이다. 소비자에게는 선택에 있어 천국이겠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무한경쟁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점포 공실율이 올라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거리를 걷고, 맘에 드는 가게를 골라 들어가 보는 모험을 소비자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괜찮다는 음식점은 어김없이 소비자의 조사를 받는다. 다녀온 사람들이 남겨놓은 후기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다. 댓글의 호응도도 중요하고 별의 개수로 식당은 이미 성적이 매겨져 있다. 나름의 실력과 경험이 중요하지, 장소가 즉, 입지에 따른 프리미엄은 점점 없어진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그러니 이른바 '로데오 거리'란 이름이 무색하게 빈가게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은 이전의 생각으로 점포를 얻고 개장을 하는 사업주가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활발하게 도전을 할 젊은 층이 얇아졌다.
인구감소로 인한 각 분야의 지형은 급격히 변해간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의 장사는 20, 30대가 활발히 진출을 해야 상권도 살아나고, 지역의 특색도 인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구절벽의 시대적 배경은 이러한 순환을 막아 놓았다. 무엇보다 그렇게 진출하는 젊은 층들이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도 온라인으로 사업구상을 하는 바람에 정작 오프라인에서의 활발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경기가 안 좋다고 아우성이다. 나보다 일찍 은퇴한 친구들은 궁여지책으로 자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름 선방하는 친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전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은 사람들에게 많은 각성과 새로운 루트의 가능성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굳이 지금과 같은 전통적인 상행위의 영위를 할 필요성은 상실되었다. 무엇보다 발전된 온라인 기술로 사람이 필요 없어졌다. 무인점포의 증가는 어느 영역이든 파고들 기세다. 사람이 배제된 시공간의 운영은 키오스크, 자동결제 시스템이 메워주고 있다. 심지어 자동차 구매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진다. 테슬라의 전기차 구매가 사람들에게 선보인 이후로 국내생산 업체도 온라인 주문으로 자동차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은 무엇이든 빠르게 습득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 최고일 것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증은 IT최강대국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인건비를 아낄 수 있어 식당마다 티이블엔 키오스크가 자리 잡고 있고, 편의점에는 자동결제기가 들어서 24시간 어느 때나 물건을 살 수 있다. 과연 이것이 좋은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이런 시스템에 아직 순응하는 사람이 적었다. 여전히 현금을 선호하고, 신용카드로는 결제가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우리의 경우는 민. 관 할 것 없이 자동화 시스템에 혈안이 된듯하다. 운전면허 갱신의 경우도 관계기관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졌다. 모바일로 뜬 링크를 열면, 최근의 건강검진 결과를 찾아내어 적부여부를 심사하고 일정금액을 이체하니 모월모일 찾으러 오라는 메시지가 뜬다. 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찜찜하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인지능력 검사 등 교통안전을 위해 까다롭게 심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까지 모바일로 처리하는 행정이 한편으론 염려도 된다.
온라인이 대세인 것은 확실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느낌이나 체험을 중요시하는 동물이다.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을 보고 체험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단순한 온라인 쇼핑과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해야 구매욕구를 느낄 것이다. 가전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거나, 패션매장에서 옷을 입어볼 수 있도록 하면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미국의 아마존과 월마트의 사례는 이를 반증한다. 월마트의 오프라인 매장은 물류거점 역할을 하며 온라인으로 주문처리를 하고 있다. 국내의 할인 매장들도 이러한 필요성을 절감하여 온라인 주문을 활성화시켜 배달위주의 영업전략을 심화시키고 있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기반을 확장 빠른 배송으로 고객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미 살아남기 위한 공룡사업체들은 자구책 마련에 혈안이 돼있다.
문제는 영세한 골목 상권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과 다른 독특한 전략이 부재하고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고객의 구매패턴을 분석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거나 재고관리등에서도 물류최적화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도 대규모 사업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들의 천편일률적인 서비스에는 분명히 틈새시장이 있다. 나름의 방법으로 온라인상에서 홍보와 서비스를 하고, 택배 서비스를 상용화하며 비장의 무언가를 첨가한다면 단골이 생길 것이다. 단골은 너튜브상에서 구독자와 같다. 남과는 다른 비법의 맛이라든지, 정성을 다한 물건의 전달에서 단골은 태어난다. 일단 단골이 되면 기왕에 충성도 높은 단골로 키워야 한다. 그것이 소규모 중. 소 상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것이다.
생각을 바꿔야 살아남는다. 고지식하게 전래의 방식만 고수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고사하고 생존의 기로에서 헤맬 뿐이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남과는 다른 나만의 비법, 그것만이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첩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