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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란비

비 오는 날의 회상

by 포레스임

장마


오랜 기다림, 오란비가 내린다

가슴속 회한을 씻어내는 장대비가 온다

더운 흙을 식혀

아지랑이 열기가 오른다

창가에 희부연 추억이 떠오른다

끈적임도 지난날 인연이니

씻는다고 다 잊힐까

시간의 여울 속을 나는 헤맨다


가을에서 봄까지

방울방울 기억의 열매가 맺혔다

머릿속 지난 시간의 반추는 나를 울리고

저만치 웃으며 물러나 있다

장대비가 오면 맞아보리라

미친 듯이 맞으며 웃어보리라

씻어서 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습기 찬 편린의 기억은 또 부옇게 올라오리라


※오란비-장마의 옛말


제대로 된 여름날씨는 장마뿐일까?

와도 너무 오랫동안 오는 것 같다. 벌써 두 주째 제대로 된 햇볕구경을 못한 것 같다.


유난을 떠는 방송은 인위적인 자연재해를 들먹이더니, 지구 이상현상이라고 떠드는 중이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대 중, 단 한순간이라도 종말(終末) 아닌 때가 있었던가? 늘 종말론자들이 설쳐댄다. 하긴 지구도 피곤하긴 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대자연을 앞에 무력한 존재라는 것에 항시 열등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 열등을 극복하려 근세기 이후 인류문명은 과학기술이라는 미명하에 잔혹한 자연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지구라는 대자연은 나약하지 않다. 문제는 우리 자신 인간들 일 것이다.


늘 그렇듯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외부환경으로 변명하기에 바쁜 존재들이다. 인간이 살기에 안 좋은 환경의 문제를 지구의 문제로 돌리면 조금은 위안이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볼 수 없던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그중 마디설이 내 생각을 잡아끈다.


무엇이든지 마디가 있다. 사람의 인생도 나무의 마디처럼 굴곡이 있듯이, 지구라는 대자연이 기나긴 영겹의 시간 속에 왜 마디가 없겠는가? 비교적 한낱 미물인 인간이 무엇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열등의 산물일 것이다.


빗속을 걸으며 너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걸음을 재촉한다.


휴일이니 책도 좀 훑고, 글도 쓰고파 도서관을 찾아간다. 여전히 하늘은 흐리고 언제라도 쏟아질 준비를 하는 듯, 검은 구름이 떼를 짓는 게 언듯 보인다. 비가 계속 오니 어디서든 우산을 든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냅색가방에 찔러둔 우산을 꺼내어 편다.


도서관이 좀 높은 지대에 있으니, 두 갈래 길에서 잠시 망설인다. 백팔번뇌를 일으키는 가파른 계단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조금 돌아 포장된 숲길로 갈 것인가? 여우비로 바뀐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다, 숲길로 간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다.

잠시동안의 햇살은 지열을 더 끓게 만들었다. 차라리 계속 오는 게 좋겠다 생각한다. 더운 훈풍과 겨우 식혀진 찐득한 바람, 그래도 줄지은 나무 아랫녘은 흙내음이 올라와 조금은 상쇄하는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폭우와 산사태 등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비가 좀 심하게 오는 여름철이면 인재니, 자연재해니 하는 푸념들이 늘 시끄럽게 한다. 초복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인사사고가 줄을 이으니 한동안 책임공방론이 한참 동안 일 것이다.


도서관을 올라와 자료실로 간다. 휴일이라 빈자리가 안 보인다. 하긴 벌써 시간이 오후 한 시나 되니 있을 리가 없다. 1층의 열람실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크고 작은 사고는 늘 여름에 난다. 겨울의 화재사고는 인재가 많다. 그에 비해 여름사고는 거의 자연재해다. 물이 불보다 무서운 이유다. 적당히 내리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으련만, 그런 기대는 언제나 하염없는 빗물에 잠식당하기 일쑤다. 매년 겪는 홍수는 적응도 할 만큼 오래된 자연재해지만.....,

사람들은 늘 허둥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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