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탄생(5)
낙조(落潮)에 물든 바다 (최종편)
부대 의무실은 단출해 보였다. 군의관은 빈약한 의료기구로 나를 이리저리 검사를 해보더니 퇴소증을 끊어 준다고 했다. 뭔가 짐작은 했으리라고 생각하여 물었다.
"제 병명이 뭐죠?"
"심장빈맥이 잡혀요......, 정확한 건....,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더 해봐야 해요!"
더 물을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퇴소하자마자 바로 집인근의 병원에 입원을 했다. '늑막염'이라고 했다. 폐를 둘러싼 횡격막에 염증이 생겨 물이 찼다고 한다. 놀라서 달려온 어머니는 나이 든 의사에게 꾸중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장가가기 전까지 어머님이 살펴서 영양상태를 봐주셔야지..., 이건...., 불규칙한 식사와 영양이 부족해서 오는 겁니다!"
병실의 침대에 누워 갖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만히 생각하니 아무리 젊다고 하지만, 나를 너무 혹사시켰단 생각이 들었다. 점심 한 끼와 저녁식사를 제대로 편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가망고객이나 기존 고객들과 불편한 식사자리였다. 나는 을이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식사보다는 의중을 파악하는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원인은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정확했다. 병실로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한다고 한다.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웃옷을 모두 벗으라 한다. 모두 벗고 돌아앉아 침대에 나를 엎드리게 했다. 대바늘의 주사기 바늘이 옆구리에 묵직하게 들어왔다. 의사는 주사기에 달린 회전식 펌핑기를 돌렸다. 큰 링거병으로 샛노란 체액이 두병을 채울 만큼,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마지막 끝물을 뺄 때는 오장육부가 빠져나가 듯 통증이 심했다.
수술이 끝나고 누우니 병실의 실내등이 노랗게 보였다. 빠져나간 체액만큼 내 안의 뭔가도 빠져나간 것 같았다.
입원 일주일째 회사 사람들이 문병을 왔다. 김 과장님은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하나는 지점장님과 과장님들이 갹출한 것이었고, 다른 하난 동기들이 모은 성금이라고 했다. 고마움에 뭉클했다.
"몸조리 잘해야 할 거야! 한동안 무리하지 말고!"
김 과장님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울리는 신호음에 바삐 밖으로 나갔다.
퇴원을 하고 며칠은 집에서 쉬었다. 보름동안이나 회사를 빠지고 출근을 했다. 그동안 계약분의 출고를 오대리님이 대신해 줬었다. 마음이 급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건넸다. 오전이 지나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주차장에 들어서니 정신이 아득했다. 아직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의 사우나로 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곤, 취침실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체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의사가 경고한 그대로였다.
오전만 업무를 보고 오후는 사우나에서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실적은 당연히 하향곡선을 그었다. 두어 달이 지날 때쯤, 수석과장님이 나가는 나를 붙잡고 1층의 커피숖으로 들어갔다.
"아직 젊은데 딴 일은 생각 안 해봤어?"
"제가....., 실적이..... 많이 쳐져서..."
"잘 생각해 봐! 임오구 씨 생각해서 하는 소리니까!"
이 바닥은 명확했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오로지 실적, 그것만이 존재의 이유였다. 강대리님이 생각났다. 한 때는 잘 나갔던....., 문득 그분이 잘 가는 근처의 증권사 객장이 생각났다. 가보니 역시 거기 있었다.
"히야! 임오구 씨가 여길 다오네! 어쩐 일이야?"
"선배님과 차나 한 잔 하려고요!"
"여기 객장에 원두커피 주는 데 있어! 거기로 가!"
자동차 영업도 하지만 강대리님은 주식투자에 더 열중하는 것 같았다. 오후는 거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고 했다. 교통사고 후, 모든 손해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얘기를 하며 영업은 하는 둥 마는 둥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국 대기업 소모품이야! 쓰고 버리는 거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아!"
어떻게든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기존 거래가 있는 고객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돌렸다. 대리님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인사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오랜 시간 격조하니 어떤 경로로든 나의 상태를 들었을 것이다. 일일이 찾아가 재방을 하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정오만 지나면 몸이 까부라졌다. 이런 식의 영업으로는 자동차는커녕 아무것도 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 대수도 못 채우고 넘어가는 날이 몇 개월이 지나자, 몸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미 입사동기들도 절반 이상이 그만둔 상태였다. 나는 사정상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다. 지점장실에서 나를 불렀다.
"지난번 수석과장님 얘기를 생각해 봤어요?" 상당히 예의 바른 사무적인 말투였다.
"전 같지는 않겠지만, 실적을 회복하려 노력 중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팔아야 내가 살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다시 복구를 해야 한다. 이른 퇴근길에 서해의 지는 해를 보고 싶었다. 월미도 어느 곳에 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벌써 아베크족들이 쌍쌍이 많이 보인다. 바로 뒤에는 놀이기구에 탄 남녀들이 즐거움에 비명이 들린다. 마침 지는 해가 장관이었다.
내가 서있는 곳에서 해가 지면, 어디선가는 해가 뜨는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나도 잠시 수그러들 뿐이었다. 다시 뜨는 해처럼 벌써 포기하기엔 너무 젊었다. 다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구상가부터 다시 돌았다. 전자상가도 다시 신규방문을 했다. 상호신용금고 담당직원에게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슬슬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나름의 철칙도 생겼다. 절대 많은 판매를 위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는 나에게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 영업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평상적인 판매 대수가 유지되었다. 직원들은 나에게 옛날의 임오구는 어디로 갔느냐고 하지만, 나도 살아야 했다. 그리고 다른 직업도 틈틈이 알아보았다. 가까운 노량진을 짬이 날 때마다 들렀다. 군 전역 후 모색했던 시험준비를 다시 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 년 여의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좋은 봄날,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흩날릴 때 나는 사표를 냈다. 내 젊은 날의 단막극 한편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