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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손가락을 부러트린 장인어른

Ep 05 - 10살 차 이상형과 결혼생활 5년

by 동동몬 Mar 11. 2025

앞선 이야기


나는 장인어른과 사이가 좋다.

장인어른께서 남자 치고는 비교적 일찍 결혼하신 편인 데다 내가 아내와 10살 차이이다 보니 나와 장인어른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10살 이상 20살 이하 차이다) 친구들은 그 정도 나이 차이면 사회에서 친구 아니냐고 할 정도지만 나는 늘 깍듯이 장인어른을 모신다.


장인어른과 나는 매주 금요일이면 둘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둘이서 목욕탕도 간다. 장인어른과 술을 마시는 날은, 장인어른도 나도 합법적으로 각자의 아내에게 허락받고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이다. 장인어른과 나는 주량도 서로 비슷한 데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에 사위와의 술자리를 굉장히 좋아하시는 듯하다. 나 또한 장인어른과 술을 마시면서 아내에 대한 험담도 하고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조언도 구하면서 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 장인어른과 내 사이를 갈라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때는 바야흐로 둘째가 태어나기 딱 한 달 전이었다. 여느 날처럼 미리 각자의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금요일 퇴근 후 룰루랄라 신나게 집으로 와 짐을 두고 아이들에게 잡히지 않게 후다닥 밖을 나가 장인어른을 만나 집에서 멀지 않은 맛집에 가서 맛있는 고기에 술을 곁들여 마셨다. 그날도 평소와 비슷하게 술을 마셨다. 나는 멀쩡했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술을 다 마시고 집을 가려고 하는데 장인어른께서 살짝 휘청하셨다.


어라? 그렇게 많이 안 마셨는데 오늘따라 좀 취하셨나..?

브런치 글 이미지 1


나는 장인어른 앞에서 절대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다.

늘 어른 앞에서 술을 마셔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된다고 생각하기에 알딸딸한 기분이 올라오면 거기서 멈추는 편이다. 그때가 되면 장인어른께서 2차를 가자고 하셔도 "오늘은 여기까지만 먹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린다. 그날도 1차만 먹었고 평소와 비슷하게 술을 마셨는데 장인어른은 평소와 달리 좀 취하신 것 같았다.


장인어른과 나는 집이 가깝다 보니 매번 내가 먼저 택시에서 내려서 집에 가고 장인어른은 댁까지 택시를 타고 가시는데 이 날은 많이 취하신 것 같아 내가 먼저 내리지 않고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 현관문 앞에서 잘 들어가시는 걸 보고 집으로 가서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내가 자는 방으로 문을 휙 열고 들어오더니 노발대발하며


어제 아빠랑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예요?!

비몽사몽해 있던 나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에? 어제요? 평소랑 비슷하게 마셨는데... 왜 그래요?

(우리는 존댓말을 한다.)

그러자 아내가 상기된 목소리로


아빠가 술이 취해서 엄마 손가락을 부러트렸데요!!
도대체 둘이 얼마나 마셨길래 그런 거예요?!

 네???????

어안이 벙벙했다.


어제 평소랑 비슷하게 마셨어요. 2차 간 것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아버님이 조금 취하신 것 같아서 직접 댁에 모셔다 드렸는데..
근데 장모님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엄마가 지금 손가락이 부러져서 정형외과에서 깁스하고 있데요!!

장인어른의 성품은 모두가 알기에 폭력이 있었다거나 다툼이 있었을 리는 절대 없다.

그런데 장모님 손가락이 부러졌다니? 그것도 아버님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그런 걸까? 나도 궁금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날 우리는 처갓집에 갔다.

장모님은 깁스한 손가락을 붙들고 계셨다.


어머님, 어떻게 된 건가요?!

자네 장인이!!!

(움찔)

살짝 버럭 하셨다.


어제 술에 얼마나 취해서 왔는지 내가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소파 앞에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자고 있는데
자네 장인이 집에 와서는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더니
소파에서 자더니 아래로 떨어진 건지 어떤 건지
어쨌든 내가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머리에 별이 튀었는데
자네 장인은 술에 취해서 옆에서 뻗어서 자고 있더라고.

아침이 오면 병원에 가봐야지 했는데
새벽 내내 아파서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이 양반은 옆에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자고 있는데 어찌나 열이 받던지.
술 취해 자는 인간 깨워서 병원 갈 수도 없고
왜 그랬냐고 물을 수도 없고
어휴!!!


장인어른을 슬쩍 보니 미안한 표정으로 허허허 웃고 계시는데 살짝 위축되어 계셨다.(쭈글...)

딸들도 눈을 부릅뜨고 아빠 왜 그랬냐며 버럭버럭 하고 있으니 장모님께


아니... 그... 내가 그런 건지 정확히 모르잖소...

장인어른은 그런 말씀을 안 하시는 게 나았다...

장모님은 더 화가 나셔 버럭버럭 하셨다.


그럼 가만히 있던 손가락이 부러졌겠소??!!
내가 스스로 내 손을 부러트렸겠소??!!

딸들도 옆에서 엄마를 도와 아빠에게 폭포수처럼 쏘아붙였다.(촤촤촤촤)


아빠!!! 이럴 땐 그냥 괜찮냐고, 미안하다고 해야지!!!

후...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식은땀이 났다.

같이 마신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여자 셋에게 공격받은 장인어른은 허허허 하시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셨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 날 이후로 나와 장인어른의 술자리 금지령이 떨어졌다.

각자의 아내로부터 근신처분을 당했다. (유일한 자유 박탈)


그 후로 장인어른과 나는 약 1년 간 밖에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나와 장인어른의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술 마시는 불타는 금요일은 한동안 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조금씩 아버님과 자리를 하곤 있지만 각자의 아내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면서 허락을 받아내야 한다. 장인어른은 지금도 술 한잔 하자고 가끔 전화를 걸어오시는데 그때마다 딸의 눈치를 보신다.


자네 오늘 한잔할래? OO이 허락받고 연락 줘...

여보, 장인어른이 한잔하자고 하시는데 괜찮을까요...?
안 돼요!!!

(쭈글...)

딸은 엄마의 눈치를 본다.

넹....


그래도... 다시 좋은 날은 올 겁니다 장인어른!! ㅠㅠ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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