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험마 좋아서 햄복해

2020년 2월 20일의 기록

by 루시

불이 꺼진 컴컴한 방. 비염 가족에게 치명적인 건조함을 조금이라도 피해보고자 난방을 세게 틀지 않은 탓에 방 안은 적당히 서늘했다. 혹시나 추울까 딸아이 배 위로 이불을 살며시 덮어주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발로 뻥 차였다. 책을 서너 권 읽고 한참을 조잘조잘 얘기하고 나서도 딸아이는 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인내심의 싸움이다. 누가 누가 먼저 잠이 들려나.


17년 12월생인 나의 딸 다온이는, 이제 만 2세가 갓 되었다. 모든 단어를 한 글자로 말하던 때가 아직 선명한데, 이제 나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도 제법 나누는 수준이 되었다. 배 속의 콩알에서 2년 만에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들어 내다니. 새삼 새롭고 놀라고도 경이로운 요즘이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니 자연스레 어두운 침대에 누워 나누는 대화가 점점 길어진다. 동화책을 조용히 읽어만 주면 잠이 들던 밤 들에서 발전해, 오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엄마는 회사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느끼던 찰나였다.


“다온이 햄복해”


“다온이 왜 행복해~?”


“다온이 험마 좋아서 햄복해”


갑자기 지난 2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안 힘든 임산부가 어디에 있겠냐마는 나는 유독 힘든 열 달을 보냈다. “자연임신은 어려운 몸이니, 아이를 갖고 싶으면 꼭 병원으로 찾아 오셔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던 의사선생님의 확신이 무색하게도 갑자기 찾아온 선물 같은 아이였다. 갑작스러웠기에, 몸도 마음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때였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찾아온 입덧은 아기를 낳은 후까지 한참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탄산수와 크래커가 없이는 하루를 이겨낼 수 없었고, 한밤 중에 컴컴한 부엌으로 가서 밥 솥에 있는 하얀 쌀밥을 우걱우걱 먹기도 했다. 한 생명을 배 속에서 키워내는 건 정말이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출산도 굉장히 스펙터클 했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검진 차 방문한 병원인데, 의사 선생님은 귀가 금지를 통보하셨고, 나는 그대로 수술방으로 떠밀려 들어갔었다. 오죽하면 남편이 오늘 출산해야 된다는 내 전화를 믿지 않았을까. 병원 예약시간을 깜빡하는 바람에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한입밖에 못 먹고 식탁 위에 남겨놓은 따끈한 고구마가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도 어찌나 생각이 나던지.


그렇게 너를 낳고 키워낸 나의 힘듦이 하나도 아깝지 않게, 내 아가는 이렇게도 예쁘게 자라나고 있다. 내 삶의 기적. 내 딸.


내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엄마, 다온이 지켜줘”


“엄마가 꼭 지켜 줄게, 코 잘 자”


아이의 말랑한 배 위에 살그머니 손을 올린다. 배 속에 있는 동안 매분 매초 들었을 내 심장의 두근거림과 같은 속도로 일정하게 끊임없이 토닥토닥 두드려 준다. 오늘따라 유독 내 손길이 더 단단하고 다정하다. 이 토닥임이 너에게 얼마나 큰 안정감이 되어줄 지 책임감이 커진다. 정수리와 손발에서 따끈한 열기가 올라온다. 곧 잠이 들 것이라고 네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곧 들려오는 새근새근 숨소리.


야호. 오늘도 내 삶은 네 덕분에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