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8일의 기록
7시 반 기상. 오늘 아침도 시간이 빠듯하다. 맞벌이인 탓에 첫 생일이 갓 지났을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고, 그중 9시부터 6시까지 돌봄이 가능한 직장 어린이집은 우리에게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이 출근길에 태워가야만 하니 우리 가족의 아침은 늘 전쟁이다. 빵과 우유를 좋아하는 딸아이와 남편 취향에 맞춰 오늘 아침메뉴도 빵이다. 나는 아침을 먹지 않는데. 엄마 노릇 쉽지 않다. 그래도 두 사람 취향 덕분에 간단하게 아침을 차리고 딸아이부터 서둘러 먹인다.
“살이 좀 쪘나?”
촉박한 시간 탓에 빵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옷을 갈아입은 남편이 말했다. 새로 빨아 놓은 청바지 탓이라 말해주고 싶지만, 내 눈에도 조금 찐 것 같긴 하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온이가 아빠 배를 통통 두드려본다. 내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다온이가 씨익 웃으며 불쑥 말한다.
“아빠 배가 뚱뚱하네-”
남편과 내가 동시에 웃음이 빵 터졌다. 아빠 배가 어떻다고? 내가 물었다. 아빠는 재차 숨을 들이마시며 배가 홀쭉해 보이도록 힘을 줘 보지만, 이미 늦었다.
“아빠 배가 뚱뚱해~”
이제 3년도 안 산 꼬맹이가 뚱뚱함과 날씬함을 구분하는 건, 아기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곰 세 마리’ 동요 탓이리라 생각해 보지만,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본인의 이상적인 아빠상은 ‘건강 관리를 잘해서 젊고 날씬한 아빠’라고 늘 말하는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 무렵 남편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농구를 너무나 사랑했던 남편은, 이보다 몇 년 전 27살 즈음 다시 농구를 시작했었다. 제2의 농구 전성기를 누리려던 꿈은 갑자기 시작한 운동에 놀란 허리 디스크가 터져 망원시장 한복판 길바닥에 드러누우며 금방 끝이 났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 마음에 드는 운동을 찾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자기에게 잘 맞는 운동을 찾아내었다. 운동을 하는 동안 복잡하게 머리 쓰지 않아 생각을 비워낼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크게 제약이 없고, 몸속에 있는 물 한 방울까지 땀으로 개운하게 짜낼 수 있는 운동. 바로 달리기였다.
장거리 달리기와 잘 맞지 않는 나는, 그가 달리기에 흥미가 붙었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하고 신선했다. 솔직히 속으로 ‘곧 때려치우겠지? 얼마나 달리겠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래 해본 적 없는 운동이라 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나의 패배임을 인정한다. 남편의 달리기는 꾸준히 이어졌고, 그가 육아휴직을 했던 21년도에는 하루 루틴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충분히 키워진 체력으로 22년도에 첫 42킬로 풀 마라톤을 완주했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아빠를 처음 본 날 다온이는 ‘우와 우리 아빠야’라는 우쭐함을 온몸으로 그리고 눈빛으로 쏟아내었고, 아빠는 멈추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몇 차례 마라톤 완주를 거친 후, 올해는 세 가족이 같이 호주 시드니로 원정 마라톤을 다녀왔다. 마라톤을 뛰러 비행기를 타다니, 이왕이면 다음에는 유럽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온이가 아빠 배가 뚱뚱하다며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어 버린 이 날은 하필 어버이날이었다. 이 후로도 다온이는 ‘엄마아빠가 계속 날씬했으면 좋겠어’ 라거나 ‘아빠 배가 말랑해’라며 잊을 만할 때쯤 종종 우리의 운동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덕분에 나와 남편은 오늘까지 건강 관리를 놓을 수가 없었고, 각자의 스타일대로 꾸준히 운동을 이어오고 있으니, 이날 남편이 받은 충격은 어버이날 선물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뒤늦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열심히 운동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기특하다고 혹은 대단하다고 말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사실 그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은 아니야’ ‘우리 집에 매의 눈으로 우리 배를 관찰하는 꼬맹이가 있어’라고 차마 말은 못 했지만, 우리 부부가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좋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건 딸의 촌철살인이 큰 몫을 했음을 밝힌다.
딸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근데 이제 너도 뱃살 신경 쓸 날이 머지않았단다. 엄마아빠랑 같이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