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7일의 기록
다온이가 태어나고 주말 아침 늦잠은 다른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여행도 갈 수 없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올 법한 그 어느 나라의 이야기 말이다. 늦잠은 물론이고, 걷기 시작한 뒤로는 집에서 얌전히 쉬는 일은 없다. 아이가 집에서 놀 때는 좋은 놀이거리만 많이 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제일 필요한 건 쉴 새 없이 호응해 주는 엄마아빠의 말과 에너지였다. 또 내 집 안에 아이에게 위험한 물건은 왜 이렇게 많은지, 식사 중에 실수로 떨어뜨린 김치 조각 하나마저 조심스럽다. 물론 남편과 나의 성향 탓도 있겠지만, 아프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치지 않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가 맑다.
오늘의 여의도 공원도 어린아이들과 같이 나온 가족들로 가득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몰랐었는데, 주말의 공원은 아이 있는 가족들에게는 생츄어리 같은 곳이다. 하루 온종일 아이와 갇혀있는 상태로는 집은 치워도 치워도 정글이고, 엄마의 마음은 매우 위태롭다. ‘위급하거나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 있던 동물이나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역’으로의 피신만이 살 길이다. 어차피 어질러질 거, 내 집이 아닌 곳에서 편하게 어지를 수 있는 곳으로는 공원이 제격이다. 맨질맨질한 돌멩이 하나부터 적당한 길이로 부러진 나뭇가지, 색색의 나뭇잎, 그냥 평범한 개미 한 마리마저 아이에겐 굉장히 흥미로운 놀이거리가 되어준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공놀이도 하고 자전거나 킥보드라도 태우겠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바깥 활동은 걷다가 숨다가 무언가를 관찰하다가 뛰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오늘도 하염없이 걷는데, 다온이가 조금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큰일이었다. 나는 아직 야생으로 돌아갈 준비가 안되었고, 해는 아직 중천이다. 얼른 주위를 살펴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날카로운 부분들을 잽싸게 다듬은 뒤, 다온이에게 건네었다.
“다온아 이것 봐, 엄마가 마법봉을 찾았어!”
“우와~”
다행히 새로운 놀이의 시작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 눈치다. 만화영화에서 한 번쯤 본 마법사 흉내를 내며 짧은 다리로 나와 남편 앞에 앞장을 선다. 마침 나무가 우거진 구불구불한 산책로에 접어들었다. 우리 이제 모험을 떠나 보자며 내가 한층 흥을 돋워 본다. 다온이가 앞으로 우다다 뛰어가다가 뒤로 휙 돌며 외쳤다.
“엄마 여기서 기다려”
아직 나에게는 아이를 혼자 걷게 할 용기가 생기기 전이다. 같이 가야지 혼자 가면 무서운 괴물이 나올 수도 있다며 괜히 겁을 줘봤다. 뭐든 혼자 해보고 싶어 하는 시기의 아이에게 이 말이 먹힐 리가 없다. 오히려 다시 우리에게 뛰어와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까지 꽉 쥐어가며 외쳤다.
“다온이가 콱 잡혀올 게”
나는 터져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잡히는 게 아니라 잡아오는 거겠지. 알았어 콱 잡아와”라고 말했다. 3등신밖에 안 되는 주제에 괴물을 콱 잡아오겠다는 용기가 가상하다. 뒤 따라오는 엄마와 아빠가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에서 솟아 나온 굉장한 용기이다. 정작 엄마는 아이 혼자 보내기가 그저 무서운 겁쟁이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 날의 다온이는 어쩌면 삶에서 가장 용감한 시기에 있었던 것 같다. 8살이 된 아이는 무서운 것 투성이다. 새로 1학년이 되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걱정되는 마음, 여러 명 앞에 서서 발표할 때의 긴장감, 새로 배우는 스케이트를 타다 꽈당 넘어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 괜히 한 번씩 무서워지는 불 꺼진 방의 어두움, 모르는 사람이 말 걸어올 때의 두려움. 이런 사소한 무서움들로부터 엄마와 아빠가 항상 지켜주지는 못하겠지만, 현명하게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줘야 할지 매일이 선택이고 고민이다.
고민이 많은 밤에는 한 번씩 이 날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다. 앞으로 아이의 앞에 닥쳐올 수많은 무서운 것들과 꼭 통과해야만 하는 시험 들로 인해 겪을 좌절감에 ‘콱 잡혀’ 오지 않고, ‘콱 잡아’와 내가 이겨냈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기까지, 아직 같이 걸을 길이 구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