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으~음 마시떠

2019년 11월 15일의 기록

by 루시

40도의 미지근한 분유만 쪽쪽 먹던 아가 시기를 지나, 소금기 하나 없는 재료들로 만든 단계별 이유식-입자 크기나 재료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도 지나, 다온이는 이제 제법 ‘식사’라 불러줄 만한 모습을 갖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열풍에 건강하게 튀겨냈다는 아가용 튀밥이나 과일들을 간식으로 주던 것에서, 나름의 감미료가 들어간 어른이 먹는 뻥튀기 같은 과자도 이제 가끔 손에 쥐어 준다. 어찌나 알뜰살뜰하게 손가락까지 쪽 빨아가며 맛있게 먹는지,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온다.


‘으~음 마시떠’

새로운 재료와 요리를 많이 접해서인지 요즘은 부쩍 맛에 대한 표현이 늘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하지만, 내가 엄마로서 하는 노력의 가장 많은 부분을 쏟아붓는 것은 항상 아이를 먹일 음식이었다.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의 빠른 복직과 더불어 끊임없이 이어진 출장으로 집을 꽤 오래 비워야 할 때도 발달 시기에 맞춘 재료 선정, 아이를 먹일 음식에 들어갈 신선한 재료 구비와 ‘완밥’을 놓치지 않게 해 줄 메뉴 구성은 물론 요리 실력 업그레이드까지 어느 하나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유난스러운 엄마 라서가 아니다.


‘저는 먹기 위해 살아요.’


누군가 나에게 왜 사냐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나는 사실 그 누구보다 먹는 것에 진심이다. 먹기 위해 산다니 누군가는 너무 원초적인 것이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잘 갖춰진 맛있는 한 끼가 주는 효과는 정말이지 굉장하다. 그 막강함은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다.


왠지 모르게 몸이 지치는 날에는 매운 떡볶이, 궂은 날씨에 마음까지 처지는 날에는 따뜻한 라테 한 잔에 바삭한 크로와상, 마음이 허한 날에는 속을 든든하게 채워줄 새빨간 닭볶음탕, 기쁜 날에는 기꺼이 같이 행복을 즐겨 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풍성한 집 밥. 맛있는 음식이 내 삶의 모든 감정에 얼마나 깊이 깃들어 있는지, 이 행복감을 끊임없이 고양시키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나라는 인간의 일상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관통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일단,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게으를 수 없다. 모든 맛있는 음식은 좋은 재료를 준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굳게 믿는다. 신선한 제철 재료를 얻으려면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인터넷 검색과 주문을 위한 손가락의 움직임도 부지런함으로 쳐야 한다-. 만약 직접 요리하는 대신에 맛집을 찾기로 결정했다면, 누군가에게 열심히 묻거나 여기저기 검색해 후보들을 찾아내고 끝임 없는 탐색 끝에 마침내 한 곳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부터도 꽤나 많은 품이 든다. 이동하고 줄을 서고 주문할 메뉴를 결정하고 맛있게 먹어 치우는 모든 것에 기꺼이 쓰이는 나의 에너지와 시간은 쉬이 계산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체질인 나는, 먹는 것과 움직이는 것을 세트로 묶는 것이 필수다. 제대로 먹으려면 움직이는 것을 절대 게을리할 수 없다. 음식을 먹는 것은 하루에 한 번으로 끝낼 수 없으니, 결국 나는 누구보다 많이 움직여야만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내 위는 느리게 움직일 것이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 끼를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라니 참을 수 없다.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더 양껏 먹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맛을 제대로 느끼고 즐기기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몸의 컨디션도 자연스레 지킬 수 있다.


이 모든 노력들은 곧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자, 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우리 엄마의 음식이 나에게 그러했듯, 다온이가 자라나 홀로 맞이할 어떠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아끼며 의연하게 버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은 사랑이라는 말은 곧 맛있는 음식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는 엄마의 마음, 스스로 나를 위해 나를 기쁘게 해 줄 음식을 함께 하는 것이 곧 최고의 사랑이니까. 나는 내일도 기꺼이 맛있는 밥상을 차려낼 거다.


육아 까짓 거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러니까 내일은 눈물 쏙 빠지게 매운 떡볶이를 먹어야지!



맛있는 음식은 사랑이다. ‘돼지고기 많이 줘’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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