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4일의 기록
엘리베이터도 없는 망원동의 어느 빌라 4층 꼭대기 방의 네 뼘 만한 야외 테라스. 감성을 한 조각 추가해 보려 깔아 놓은 인조잔디에 캠핑 의자를 펴놓고 여름의 마지막 뜨끈한 햇살을 즐겨보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은 여름 끝 무렵.
“오빠, 난 어렸을 때부터 엄마만 고생하는 명절이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결혼 생활에 명절은 없었으면 좋겠어. 그게 이 결혼의 유일한 조건이야“
그 말이 마법의 주문이 되었던 것 일까.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유독 해외 출장을 자주 보냈고, 일 년 중 가장 긴 두 번의 출장이 공교롭게 매년 구정과 추석을 끼고 있었다. 임신과 출산과 갓난아기 프리패스로 세 번의 명절을 뛰어넘고, 출산 후 3개월 만에 복직했을 때 ‘옛날에는 애 낳고 다음날 밭도 매었는데 너는 왜 출장을 못 가냐(다시 생각해도 노동청 신고 감이다)’는 상사의 성화에 그렇게 또 몇 번의 명절을 뛰어넘었다. 내 말처럼 명절이 사라져버려 내심 좋기는 한데, 아이가 가장 엄마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1년에 12번쯤 집에 없는 엄마가 되어버린 나는 우리 가족에게 과연 좋은 엄마일까 하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이번 구정도 어김없이 출장이다. 이제 남편이 홀로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내려가는 것이 딱히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기저귀, 먹거리, 장난감에 상비약들까지 엄마의 근심과 걱정만큼이나 가득 채운 커다란 캐리어를 손에 들려 남편과 아이를 어제 기차 태워 보냈고, 오늘은 내 열흘 치 짐을 설렁설렁 싸기 시작해 본다. 거실의 고요함에 자연스레 밀려오는 허전한 마음에 남편에게 화상 전화를 걸었다. 제철을 맞은 탐스러운 딸기를 입에 한가득 물고 있는 딸의 모습에 마음이 녹는다. “다온아 엄마 안 보고 싶어?”라는 나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다온이가 힘차게 대답한다.
“다서빰 자고 엄마가 온대”
푸하하. 하고 모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말 한마디 못하는 아가 시절부터 떠나던 출장길마다 혹여나 아이가 불안해할까 걱정이 되어 “이번엔 열 밤 자면 엄마가 올 거야”, “이제 두 밤만 자면 엄마 집에 가 “라고 헤어지기 전에도 떨어져 있는 사이사이에도 몇 번이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요 조그만 놈이 고새 쏙 말투를 배웠나 보다. “아니야, 두 밤 자면 다온이가 먼저 집으로 올 거야. 그럼 엄마는 어디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가만-히 기다려”
단호한 말투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언제 이렇게 큰 거니 우리 딸. 집에서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과 정 반대로 2주는 더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아이가 태어나고 서로 떨어져 있던 날들을 헤아려보니 서너 달은 족히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을 떨어져 있게 될까.
지금의 이별 경험이 다온이가 나를 ‘집에 자주 없는 엄마’ 말고, ‘늘 집으로 돌아와 기쁘게 다시 만나는 엄마’로 기억하게 해 주길 바라본다. 집에는 늘 다시 만나는 엄마가 있다는 안도감, 혹여나 떨어져 있어도 따뜻한 품이 그대로 있다는 확신에 찬 믿음을 씨앗처럼 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그 시간이 차곡히 쌓여 마침내 아이가 스스로 기꺼이 집을 떠나 홀로 서는 그날에도, ‘엄마가 기꺼이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 줄게’라고 되뇌어 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