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9일의 기록
나는 사실 음악 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흥을 즐기는 법을 꽤나 잘 안다고 자부하고, 춤추는 것도 이렇 게나 좋아하는 인간이 음악 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꽤나 어이없어할 테 지만, 정말 별로 안 좋아한다.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음악을 많이 들었던 시기는 공부하면 귀에 무어라도 꽂아야 하는 습관이 있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는데, 그마저도 취향이 참 괴이했다. 일단 전교생 중에서 CD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던 사람은 나 한 명이였다. 친구들은 대부분 신상 MP3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언제든 새로운 노래를 몇십, 몇 백개씩 바꿔 담아 듣고는 했는데, 나는 고작해야 스무 곡 남짓 들어가는 CD라니, 게다가 유행이나 신곡에도 관심이 없어서 내가 듣는 음반은 한정된 몇 장이었다. 그중 3년간 제일 닳도록 들었던 건 -몇 번째 음반인지도 몰랐던-메탈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의 앨범,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 OST, 그리고 사계가 담겨있는 바이올린 명곡집이다. 이 얼마나 괴이한 조합인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도 좀 어이가 없으나, 이상하게 3년 내내 수백 번을 듣고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마도 나 스스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일종의 의식으로 택했던 것 아닐까)
그렇게 수능을 끝낸 후 다시 음악을 지겹도록 듣는 시기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십여 년이 지난 최근에 와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장르는 동요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동요를 자주 틀어놓는 것에는 아이와 조금이라도 즐겁게 놀이하기 위해서, 아이의 언어 습득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엄마의 흥을 위해서 등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는 사실 ‘조금이라도 말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서’ 임을 고백한다(똑같은 놀이와 대사를 500번 하 느니 동요를 따라 부르는 게 차라리 낫다). 다온이를 낳은 뒤, 그렇게 우리 집에서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신나고, 나는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 보니 프로그래밍된 동요가 자동 재생되는 베이비 오디오를 들여놓으며 선곡은 끝이었다. 이 손바닥만 한 기계 안에는 200곡 정도가 들어 있지만 한 곡당 재생시간이 길지 않다 보니, 하루 종일 틀어 놓으면 같은 노래를 몇 번씩은 듣게 되었다. 그리고 깨 닫고 말았다. 나는 사실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노래가 사람을 미치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요처럼 신곡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니 이 신문물 속의 동요들도 대부분 내가 아는 것들이었고, 비슷한 주파수의 동요들을 계속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점점 고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이어 익숙해진 가사를 중간중간 흥얼거리다가, 이내 내용을 곱씹기 시작한다. ‘떴다 떴다 비행기~’처럼 무의미한 가사 가지고 이렇게 유명해져도 되는 건지 탄식 하다가,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갔더니 하늘빛 물이 들었다니..!’ 감탄도 한다. 그렇게 몇 번을 거듭하다 보면 무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이 무렵이 도대체 이 고문의 끝이 어디인지 가장 괴로웠다). 그러다 마침내 200여 곡의 멜로디는 물론, 가사집 없이도 모든 가사를 줄줄 따라 부르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는 내 맘대로 개사를 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사한 노래마저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지막 방책으로 내 멋대로 율동을 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율동 중 몇 가지를 다온이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까르르 즐거워하는지, 이대로 라면 동요를 끊기는 그르친 것 같다.
매일 잠들기 전 10분, 뜨끈한 샤워를 끝내고 난 나른한 시간이 우리의 율동시간으로 정해졌다(물론 피곤하게 만들어 빨리 자게 하려는 엉큼한 속내도 있다). 율동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곡이 제일 중요한데, 멜로디보다는 가사가 더 중요하다. 너무 흔하지 않은 단어가 등장한다면 아이의 율동에 흥이 더해질 가능성이 크니 더욱 좋다. 그렇게 선택한 오늘의 동요는 ‘루돌프 사슴코’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으니 타이밍도 알맞고, 가사를 잘 들어보면 율동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르니 다시 생각해도 아주 훌륭한 선곡이다.
그렇게 즐거운 잠자리 시간을 꿈꾸며 율동을 가르치던 첫날, 기대의 루돌프 사슴코는 오히려 다온이를 울리고 말았다. 문제의 부분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였다. 가사를 먼저 알려준 뒤 율동을 보여주려는 데 대뜸 “엄마, 놀리는 건 나쁜 거잖아. 사슴들 왜 루돌프 놀려? 나빠” 라며 울먹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 딸 확실히 F 구나…?) 열심히 달래 보지만 아이의 울음이 길어진 탓에 율동시간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겨우 어르고 달래 재운 뒤 아이 옆에 누워 가사를 곰곰이 곱씹어 보는데, 동요 한 곡 안에 기승전결,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 제일 멋진 가사는 ‘안개 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 주렴’인데, 내내 외톨이었던 반짝이 코 루돌프에게 산타의 한마디가 얼마나 황홀했을지. 놀려대던 사슴들 사이에서 모두의 사랑받는 멋쟁이 루돌프로 데뷔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괜스레 코끝이 시큰했다. 생각할수록 굉장한 명곡이다. 빌보드 차트 1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며칠 동안 밤마다 연습했더니, 다온이는 이제 혼자서도 제법 잘 추게 되었다. 자신감이 붙었는지 오늘은 공연을 해주겠다며 침대 위에 섰다.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인데 이렇게 나서다니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광대뼈까지 솟아오른다. 아이 아빠도 얼른 불러다 옆에 세우자 다온이가 수줍게 공연을 시작했다. 나는 침대 아래에 서서 립싱크를 해가며 동작을 깜빡한 부분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안무를 알려주었다. 마치 학예회 날의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내가 있으니 안심해’라는 듯한 과장된 몸짓으로 말이다. 어느새 우리만의 작은 공연의 클라이맥스다.
“누돌프 사슴코는 기리기리 기엽대리~”
모든 율동을 가사 한 소절, 단어 하나하나에 맞춰 놓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사를 열심히 곱씹는 바람에 ‘혹시라도 우리 딸이 외톨이가 되는 날이 오면 어쩌지’부터 울렁거림이 시작되었고, ‘그럼 꼭 산타 같은 사람이 나타나 줘야 하는데’까지 이어져 어찌나 목이 메고 눈물이 나는지. 노오란 수면등 하나만 켜 놓은 밤이라, 귀여운 재롱에 웃다가 어느새 줄줄 흘러버린 눈물을 다온이에게 들키지 않아 다행이었다.
명곡 중의 명곡 루돌프 사슴코도, 다온이의 귀여운 재롱도, 아주 오래도록 길이길이 기억해야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의 무엇이 되게 해 줄 산타가 우리 아가 옆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보는 밤이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네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길이길이 기억되리
<루돌프 사슴코> 조니 마크스 작사/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