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고 해 줄게요

2020년 11월 25일의 기록

by 루시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이 말에 천 번이고 공감했다. 진짜 그러하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는 시간과 노력과 수많은 고민들과 공부와 염려와 그리고 사랑까지. 퍼부어야 하는 것이 많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속담은 일상 육아 속에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내가 육아를 잘 해나고 있는 건지 홀로 의심하게 될 때, 그리고 한 생명을 키워내는 것에 대한 책임이 갑자기 숨 막히는 중압감으로 다가올 때마다 ‘그래 맞아,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데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충분히 잘해 나가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구원하는 수단이 되었다.


마을 전체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워내는 방법에는 집집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가족의 경우는 감사하게도 친정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편하게 노년을 보내려 귀농하셨는데, 도와달라 외치는 딸 덕분에 8시간 왕복거리를 일 년에 몇 번이고 오가신다. 부탁하지 않아도 텃밭에서 수확한 싱싱한 상추, 가지, 오이부터 시작해 언제든 든든한 밑반찬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급히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그 먼 거리를 흔쾌히 달려와 주신다. 이 귀한 엄마의 마음과 시간이 없었으면 맞벌이인 우리는 아이를 키우는 길에 몇 번이고 절망에 빠졌겠지.


쌀쌀 해진 날씨 탓인지 열과 감기 기운이 있어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한 오늘도, 할머니가 서울로 출동했다. 다온이가 좋아하는 물김치와 함께 오신 덕분에 아파서 입맛 없던 아이도 신이 났다. 점심 메뉴로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국수를 삶아 설탕과 참기름을 살짝 두른 물김치에 넣어주니 호로록 기운이 솟아나나 보다. 열심히 먹는 와중에도 조잘조잘 입이 쉬지 않는다.


“함머니~ 함머니 많이 늙으면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고- 해 줄게요”


물김치가 많이 맛있었나 보다. 애교 없는 딸은 남사스러워 못하는 예쁜 말들을 쏟아내는 손녀딸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까탈스러운 딸에게 자주 ‘나중에 꼭 너 닮은 딸 낳아봐라~’하던 우리 엄마에게 이렇게 귀여운 손녀를 낳아 내가 효도라는 걸 한다. 이렇게 할머니에게 숨 쉬듯 재롱을 쏟아내는 귀여운 딸을 볼 때면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이 엄마가 되고 나니, 나에게 나의 엄마는 이제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한 명의 친구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엄마 눈에는 아직 철없는 아이 같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내 생각의 끝은 삶을 너무 일찍 놓아버린 나의 친구에게 가 닿는다.


사랑스럽던 내 친구는 다온이가 만 2살이 될 무렵 갑자기 홀연히 떠나버렸다. 누구에게도 미운 소리, 싫은 소리 없이 다정한 말을 담담하게 건네던 내 친구.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좋은 직업을 갖고, 나와는 다르게 항상 착한 딸이었던 내 친구. 조금만 더 살아갈 용기를 내어 주었다면 나보다도 더 훌륭한 엄마로, 그리고 엄마와 같이 친구처럼 나이 들어가는 딸로 함께 의지하며 살아볼 수 있었을 텐데. 엄마의 마음으로 친구의 죽음을 생각하다가, 속으로 왈칵 울다가, 다온이의 웃음으로 이내 마음속에 턱 내려앉은 돌덩이가 먼지처럼 흩어진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을 자주 받는다. 나의 답은 한결같다. ‘즐거운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나의 즐거운 아이는 봄꽃의 향기로움을 즐기고, 여름의 뜨거운 땡볕도 시원한 그늘의 바람으로 이겨내고, 가을은 온 사방의 황홀한 알록달록함에 감탄하다가, 이내 다가온 겨울에는 차가운 눈이 포근하게 밟히는 길에 따끈한 붕어빵을 호호 불어 먹으며 돌아올 봄을 즐겁게 기다릴 것이기에. 그렇게 일상이 즐거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그리하여 자라난 아이가 마침내,

기쁨은 더 큰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슬픔을 맞닥뜨리는 날에는

실컷 울고 좌절하고 절망한 뒤

툭툭 털어내었다는 만족감에 춤추며

다시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함머니~ 함머니 많이 늙으면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고 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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