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_학교폭력 피해와 그 흔적의 나날들
"지금의 인터뷰로 끝내지 말고 10년, 20년, 3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꼭 취재해 주세요."
'대구에서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한 중학생 권승민군의 엄마'로 자신을 소개한 임지영씨는 더는 학폭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언론에 아들의 유서를 공개한다. <여섯 개의 폭력>의 제3장이 바로 임지영씨가 죽은 아들 승민군을 대신하여 그날의 기억을 토해내듯 이야기를 한다. 유서의 전문과 함께, 아들이 홀로 겪어야 했던 폭력의 시간들을 따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든다. 하물며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떠했을까.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 갈 거 같지만 우리 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권승민군이 남긴 유서 전문 중에서>
아들이 죽었다. 아들이 사망한 2011년 12월 20일 이후부터 나에게는 "대구에서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한 중학생 권승민군의 엄마"라는 단어가 늘 따라붙는다.
나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울지 않았고, 가슴속으로만 절규하며 지내왔다.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그 학교는 아이를 주검으로 만들어 돌려보냈다.
나는 학교 선생이다. 내 일을 좋아하고 이 일에 자부심도 있지만, 학교는 한편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다. 모욕과 욕설과 폭행과 괴롭힘이 일어날 수 있으며, 마침내 한 사람의 삶을 앗아갈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냐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답답하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직장을 다니는 거다. 그리고 난 아직 교직이 좋다. 학생들이 좋고 이쁘다. 학교에서 더 이상 승민이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아야 하니까 내가 지켜봐야 한다.
학교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어디선가 숨어서 울고 있을 많은 승민이들이 세상에 나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난 그런 세상을 원한다. 그래서 욕을 먹어도 계속 나아가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 3장 <아들이 죽었다,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중에서
가족을 사랑했던 승민군은 가족 때문에 자살을 몇 번이나 참았다고 썼다. 무서운 가운데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한 건 아마도 가족을 위해서, 자신 때문에 혹여 피해를 받을까 봐, 자기를 괴롭혔던 아이들이 가족까지 괴롭힐까 봐, 그는 끝까지 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달라고 부탁을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다. 아들의 주검 앞에 울지도 못하는 엄마는 심지어 학교 선생님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아이들과 학생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정작 자신의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건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왜 일을 그만두지 않냐고 묻는다. 엄마는 끝까지 싸울 결심을 한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아들 대신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학교폭력은 사라져야 할 끔찍한 폭력이다.
이 책은 승민군의 엄마를 비롯하여 5명이 함께 과거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험을 책으로 묶어냈다. 우리는 쉽게 학폭을 뉴스로 접하지만,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는 듣기가 어렵다. 학교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일부로 자리한다. 학교에서의 폭력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인생 전반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아픔이자 트라우마이다. 또한, 말 못 할 폭력의 그림자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고통이다. 그 기억은 지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6명의 저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가난해서, 공부를 잘해서, 뚱뚱해서, 수줍음을 타서... 이유도 제각각이고 뚜렷한 원인도 없다. 폭력은 극심한 언어폭력과 물리적인 폭력으로 나아가고 가해자는 재밌어서, 장난으로, 이유 없이 괴롭힌다.
은유 작가는 이 책을 여섯 개의 자책, 여섯 개의 외면, 여섯 개의 용기로 읽었다. "왜 하필 나인가"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자책한다. 그리고 방관자의 외면은 암묵적인 폭력을 조장한다. 지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용기 있는 자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