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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 Apr 18. 2020

이마무라 나쓰코의『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22_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아니 "왜?"

이마무라 나쓰코의 첫 소설집 『여기는 아미코』를 기억한다. 다 읽고 나서도 서늘하고 얼얼했던 감각이 잊히지 않는다. 묘하게 슬프면서 아릿하고 잡히지 않은 그 감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서평을 쓰려다 멈췄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있을 곳'이 아니라 '없을 곳' '있음'이 아니라 '결핍'이었다. 관계가 없는 사회. 무연고의 사회. 없는 관계는 있는 듯한 관계의 외양"이라는 후기에 밑줄을 그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 그녀의 신간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러다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이 가장 따끈한 신간이자 화제작이다. 2019년, 161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녀의 작품이 번역되지 못했음을 알았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번 후보에 올랐고 장단편 소설을 냈으며 영화화 소식도 있었다. 첫 소설집 이후로 무엇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 인터뷰가 기억났다. "뭘 써야 할까요"라고 되묻는 듯한 이 답변에 나 역시 궁금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 무엇을 쓸까.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를 읽으며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작가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인물에게 끌린다는 것을.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그건 어쩌면 나란 사람이 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과연 나를 누구라고 생각할까. 나와 그들의 정답은 알 수 없다. 이 소설의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히노'와 노란색 카디건을 입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주인공이지만 단편적인 정보만 나온다. 그 대신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에 대한 정보는 나를 통해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나'는 매일 '그녀'를 관찰한다. 그녀는 우리 주변에도 흔히 있을 법한, 아무렇지 않게 마주치고도 남을 법한 사람이다. 



(5) 우리 동네에 '보라색 치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언제나 보라색 치마를 입고 다녀서 그렇게 불린다. 처음에는 보라색 치마가 청소년인 줄 알았다. 아담한 체형과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멀리 서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이서 잘 보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뺨에 드문드문 기미가 나 있고, 어깨 길이의 검은 머리는 탄력이 없고 푸석푸석하다. 보라색 치마는 대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상점가 빵집에 크림빵을 사러 간다. 나는 늘 빵을 고르는 척하면서 보라색 치마를 관찰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누굴까.

(14) 요컨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하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15)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보라색 치마와 친구가 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라는 구절 옆에 연필로 "왜?"라고 적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와 닮았을까 골똘히 생각한다. 언니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친구 메이와 닮은 것 같지만 결국 두 사람 모두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의 외모가 호감형은 아닌 듯하다. 아이들은 그녀의 어깨를 치고 도망가는 놀이를 정해놓는다. 간신히 호텔 청소직으로 취직한 여자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아무도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그녀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지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유령 같은 존재다. 그런 그녀가 연습을 통해 본인도 잊고 살던 목소리를 키우면서 인생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나'가 전해준 프레시플로럴향 샴푸 샘플은 그녀의 푸석한 머리카락을 찰랑거리게 해 준다. 외모가 변하자 사람들은 친절하게 대해주며 작은 일 하나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조차 그녀가 말을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무례하게 군 것을 사과하고 함께 웃고 떠들며 논다. 


(48) 몇 분 후, 인적 없는 공원에 오렌지가 하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전용석 밑에 떨어진 그것을 주워 그 자리에서 껍질째 베어 물었다. 덥석, 덥석. 아까 그 사과처럼. 첫 입은 과육까지 닿지 않았지만, 점차 새큼달큼한 과즙이 입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먹었다. 구경만 했을 뿐인데 몹시 갈증이 났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 자기소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관찰하고 관찰한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는 점점 달라진다. 일손도 빨라지고, 남들보다 시급도 높아지고, 무엇보다 소장과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소문에 휩싸인다. 둘은 휴무에도 함께 다니며 같이 그녀 집에 들어가는 모습도 목격된다. 이상한 소문은 점차 빠르게 퍼져나간다. 심지어 그녀가 비품에 손을 대 팔았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나돈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며 칭찬했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존재감 없이 다니던 때가 속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줘 놓고서는 이제와서는 솔직해지라며 악의적인 말을 쏟아낸다. 급기야 소장조차 그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보라색 치마와 노란색 카디건은 보색이다. 가장 좋아하는 색 조합 중 하나인데, 보라색과 노란색은 잘 어울리면서도 대비되는 효과를 주어 눈에 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이 썩 잘 어울리지만, 사람들은 쉽게 선택하지 않는 색이다. 무난하지 않아서 혹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아서, 튀기 때문에, 숨으래야 숨을 수 없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보라색과 노란색은 섞이려야 섞이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보라색 치마를 입고, 나는 노란색 카디건을 입는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가 늘 앉던 벤치 구석의 전용석에 내가 앉는다. 아이들은 어느새 내 어깨를 치고 도망간다. 나는 누구일까. 혹시 '내'가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는 아니었을까. 나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더 빨리 친해질 기회와 시간은 있었을 텐데 멀리서 지켜만 보며 위기의 순간에 딱 한 번 다가간다. 



이마무라 나쓰코 작가의 소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고 허구인지, 무엇을 믿고 의심해야 할지, 그 선이 불분명하다.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하느냐에 따라서,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힌다. 또한, 선과 악이 모호하여 혼란스럽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것 같다. 그래서 화자를 비롯하여 모든 등장인물들이 선한 인물인가 싶다가도 조금만 지나면 입장이 달라진다. 그냥 모두가 다 같은 범인(人)이라는 점, 기분과 감정에 따라, 소문에 따라 편승하는 소시민이라는 점, 그래서 누구를 동정할 필요도 연민할 필요도 없어진다. 누가 옳고 정의로운지 따질 필요도 없다. 때론 괘씸하다가도 "그럼 당신은 어때?"라는 질문에 당당해질 수가 없다. "당신은 안 그래?"라고 묻는 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거 또한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읽을 때마다 장르가 바뀌는 이야기,
정체불명의 인물을 거울삼아 화자의 본성을 파고드는 구조,
알고 싶지 않은 인간 심리의 일면을 파헤친다.




소설은 쉬운 문체로 어렵지 않게 설렁설렁, 하루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여운은 길고 오래도록 남는다. 일단 다 읽고 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래도록 곱씹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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