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거지
이상(理想): 인본주의가 사라진 자리
‘개근거지’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보고,
학교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닌 아이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무가치한 존재로 낙인찍는다. 오히려 근면과 성실이 조롱받는 세상이다.
그 말속에는 시대의 윤리가 담겨 있다.
“무언가를 소비하지 않으면,
너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건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이건 계급 언어이고,
소비가 인간을 구분하는 위계표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가치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이 아니다.
그저 보이는 것. 맞다고 믿는 다수를
따라 한 것뿐이다.
다수들은 그들에게 ‘존재보다 소비가 먼저다’라는 이상한 가치를 가르쳤다.
자본주의란, ‘자본(資本)’ 자본이 곧 근본이라는 뜻의 사상이다. 인본주의란, ‘인간(人)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중심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자본이 근본이 된 사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다.
사람이 중심이어야 했던 자리, 이제는 ‘얼마나 소비했는가’만이 남아 있다.
자본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돈 없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그 생존의 수단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시대는 지금, 이런 왜곡된 사상을 다음 세대에게 당연하듯 물려주고 있다.
자본주의 소비자는 마치 초를 닮았다.
소비자(消費者) 무언가를 없애며 살아가는 사람. 자원을 쓰고, 감정을 태우고,
자기 자신을 녹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다.
“나를 다 태워서라도, 빛나보여야 한다.
그래야 고립되지 않는다.
” 이 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자본주의 소비자는 초를 닮았다.
밝다. 빛난다.
그러나 그건, 자기 자신을 천천히 태우는 중이기 때문이다.
빛을 증명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스스로를 녹인다.
말하지 않는다. 항의하지도 않는다.
그저 따르고, 수긍하며 줄어든다.
누군가를 위한 헌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기 위해’
자기를 줄이는 구조 속에
조용히 녹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