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사람들은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 부적을 썼다. 불길한 것을 막기 위해 문설주에 붙이고,
속이 불안한 날엔 품 속에 꼭 넣어 다녔다.
그 붉은 글자 하나가,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내 마음을 붙잡아주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는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칼도, 창도, 화살도 아닌 팔만 장에 달하는 경전으로 외적을 막겠다는 건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마음의 힘으로는 절대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은 믿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어리석음이야말로 나라를 무너뜨리는 진짜 적이라고.
그 믿음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오늘날 우리가 싸우는 적은
몽골 기병도, 전염병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분노, 증오, 미움, 탓, 원망 같은 보이지 않는 병들이다.
이런 병들은 정말
끈질기고 지독한 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그 사람이 상처 입길 바라지만,
사실 무너지는 건 나다.
내가 미워할수록 내 일상이 흐트러지고,
내 삶이 뒤틀리고,
더 나아가 내 운명까지 병든다.
몹쓸 병이란 원래 “몹시 고약하고 치료하기 힘든 병”을 뜻한다.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지독하고 지독하다는 것이다.
이 지독한 감정과 생각을 완전히 바꾸는 그런 마법 같은 약은 없다.
한 나라가 외세를 막기 위해 칼 대신 경전을 들었다면, "나"라는 나 하나의 존재 역시
분노와 미움이라는 침략 앞에서 칼 대신 내 마음을 읽어줄 부적 같은 글을 드는 게 맞지 않겠는가.
침략을 막기 위해 팔만 장이나 만들었지만
나는 나를 위해 매일 한 문장만 새기면 된다.
고려는 몽골의 침입 앞에서 칼도, 화살도, 창도 아닌 팔만 장의 경전을 들었다.
그건 정신의 무기였고, 혼란한 시대를 지켜낸 불법의 방패였다.
한 나라가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보다 믿음, 무력보다 법력에 기댔다면,
나 역시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미움이라는 침략 앞에서 글 한 문장을 들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나도 하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곧 수도이고,
내 정신이 통치자며,
내 운명은 내가 다스리는 국토다.
그 나라가 어지러우면
아무리 밖이 평화로워도 의미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음을 잡아줄 문장하나를 품는다.
부적 대신 말 한 줄을 붙잡는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내 운명을 지키는
진짜 만사형통 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