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바뀌겠다 거짓말

습관은 운명된다

by 루치올라



“죽을 때가 됐냐, 왜 안 하던 짓 하냐.”

흔히 들었던 말이다.

인간은 원래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그대로 버틴다.

그래서 변화는 언제나 극적인 상황에서 일어난다.

병원 진단이 내려지거나,

관계가 무너져 내리거나,

자산이 바닥이 나거나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살 만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우리는 버티며 안주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인간은 스스로 변할 수 있을 때 자발적으로 바꾸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삶이 강제로 우리를 변하게 만든다.

견딜 만한 고통 속에서 안주하는 자는,

언젠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맞이하며 억지로 변화를 겪는다.

자발적 변화가 없을 때 삶은 채찍을 휘둘러 강제로 방향을 바꿔놓는다.

인간은 절벽 끝에 몰려야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통은 ‘견딜 만하다’는 데 있다.

지금은 버틸 만하고,

오늘만 오늘만 하다.

바로 그 애매한 고통이 우리를 가장 깊게 묶어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삶이 돼버린 습관

습관은 단순한 반복 행동이 아니다.

라틴어 habitus는 ‘가지다,

몸에 걸치다’라는 뜻을 지닌다.

즉 습관은 우리의 삶에 덧입혀진 구조다.

습관은 반복되며 루틴이 되고,

루틴은 다시 우리의 성격과 운명이 된다.

그래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나쁜 행동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몸에 각인된 패턴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 패턴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익숙한 구조는 고통조차 친숙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 속에서도 여전히 눌러앉는다. 마치 낡은 건물이 흔들려도,

그 안에 사는 이가 이사를 미루듯 말이다.

더구나 많은 이들이 “내일부터 바꾸겠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하지만

내일의 변화는 오지 않는다.

내일은 오늘의 반복일 뿐이다.

오늘 바꾸지 않으면 내일도 바뀌지 않고, 어디를 가든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평이 습관인 사람은 여름에도 불평하고,

겨울에도 불평한다.

이 나라에서도,

저 나라에서도 불평한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불만도 습관이 된다.

문제는 바꾸고 싶지 않은. 그 사람의 내면에 있다.

불만적이고 부정적이며, 세상을 비관하는 눈길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환경도 그 사람을 구해주지 못한다.

견딜 만한 고통은 변화를 지연시키는 달콤한 마취제다. “뭐 어때 죽을 일도 아닌데. 괜찮아”라는 자기기만이 자신의 내일과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자발적 변화가 없을 때,

삶은 결국 더 잔혹한 방식으로 우리를 끌어낸다. 반복되는 문제을 외면하면,

더 큰 불행의 문이 열리게 된다.

살만하다는 이유로 안주하는 자여, 착각하지 마라. 지금 네가 붙들고 있는 것은 안전이 아니라 정체이고, 위안이 아니라 자기기만이다.

내일부터 바꾸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오늘이 바뀌지 않으면,

내일도 바뀌지 않는다.

어디로 가든, 무엇을 만나든, 변하지 않는 한

늘 같은 인생일 뿐이다.




변하지 않으려는 자는,

결국 더 큰 고통에 강제로 끌려가고,
스스로 바꾸는 자는 그 고통을 미리 덜어낼 수 있다.

삶은 자비롭지 않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자비가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먼저 바꿀 기회를 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