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와 지옥의 구조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 한 마리를 내다 팔기 위해 장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주막을 지날 때 여러 명의 처녀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멍청한 사람들 좀 봐. 당나귀에 타고 가면 좋을 텐데..."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우고 갔다.
얼마쯤 가다 보니 노인들이 정자에 앉아 있다가 한 마디씩 했다.
늙은 아버지는 불편하게 걷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은 편하게 앉아서 가다니..."
이에 아버지가 당나귀에 올라타고 아들을 걷게 했다.
얼마쯤 더 가자 빨래터에 아낙네들이 이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했다.
"가여워라. 조그만 아이의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 매정한 아비 같으니..."
이 말을 들은 부자는 함께 당나귀에 탔다.
얼마쯤 더 가자 이번엔 한 무리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이걸 보고 한 마디 했다.
"조그만 당나귀 한 마리에 두 사람씩이나 타다니.
당나귀가 참 불쌍하오!
그렇게 가다간 얼마 못 가서 쓰러질 거요!
이에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의 다리를 묶어서 기다란 막대기에 끼워 함께 짊어지고 갔다. 마을 입구의 다리 위에 이르렀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이 진귀한 구경거리에 모두 모여 웃고 떠들며 부자를 비웃었다. 이에 놀란 당나귀가 마구 발버둥치자 당나귀를 묶고 있던 끈이 끊어지면서 당나귀는 그대로 강물에 떨어져 익사했고, 그 광경을 본 부자는 풀이 죽은 채로 귀가하는 걸로 이야기는 끝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지옥이 더 고통스러워지는 이유는,
그 말에 흔들리고,
그 시선에 나를 접으며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기 때문이다.
남의 판단에 휘둘리면,
내 인생의 고삐는 내가 아니라
‘세상의 입’이 쥐게 된다.
내 평온한 삶은
남의 입이 아닌,
내 손에 달려 있다.
“이래도 욕, 저래도 욕”이라면,
남을 의식할 에너지 대신
내 삶을 지키는 힘에 그 에너지를 써야 한다.
어차피 인간은
이해의 깊이와 인식의 한계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낼 뿐이다.
타인이 지옥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지옥에
나를 가두는 결정은 오직 나의 몫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남의 인생에 조연으로 끌려다니게 된다.”
— 로버트 그린 (Robert Gree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