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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Jan 16. 2023

열을 식히는 스몰토크

느낀 감정과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기록합니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책과 한 달 내내 씨름하다 끝끝내 다 읽었다. 억지로 잡고 있었던 이유는 편독을 하지 않겠다는 그럴듯한 다짐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다짐은 내 자존심이었다. 또 체면상 바로 포기를 외치기 그래서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 그렇게 꾸역꾸역 하다보니 끝낼 타이밍을 놓쳤다. 완독이라는 결말을 보고나서야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비로소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그나마 얻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마음에 드는 몇 문장과 하기싫은 걸 끝까지 해내 뿌듯함이었. 


   어째 몸이 좀 이상하다. 바람빠진 풍선마냥 축 처지는 것이 흐물흐물하다. 마치 빠알갛게 잘 익은 줄 알았던 홍시를 베어물자 쌉싸름함이 앞니를 툭 치고 입안까지 퍼져 양치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내게 한 달이란 기이-인 호흡의 여파는 꽤 오래갔다. 목구멍 어딘가에 불쾌한 바이러스가 덩어리째 남은 듯 하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아냐. 어떤 단어로 명명하기 힘든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었다. 예전에 사두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걸작선 중 하나인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을 꺼냈다. 시-땅. 짧은 에세이 한 편을 읽는데 걸린 시간은 20분. 평소의 두 배다. '그럼 두 배로 지친 상태겠군.' 이라고 생각할 만큼 단순하게 계산할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확실한 건 가벼운 에세이조차 읽기 버거운 상태에 도달했다. '아,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할 걸, 앞산을 자주 오를 걸.' 뇌에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않자 모든 세포들이 파업을 하고 동면에 들어간 듯 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오만가지 구름을 연신 불어대다 거울에 비친 동태 눈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다. 고작 책 한권 읽고 꼴값이다. 눈에 낀 눈꼽을 떼고 물을 적신 후 다시 돌아와 책을 들었다. 비몽사몽인지 삐뽀삐뽀인지. 



   병원에 가야할 일이 있어 시내에 들렀다가 교보문고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계획에 '교보문고 들리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방금 생겨났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자 관심있는 도서 분야로 슬그머니 걸음을 옮겨 책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부동산 관련 도서 쪽엔 30대 초중반, 어쩌면 나이가 들어보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기웃거리고 영어 서적 관련 도서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10-30대까지 폭넓다. 주변을 둘러보다 에스컬레이터 옆에 책들이 쪼로록 놓인 가판대로 이동했다. 보통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주변의 책 추천 혹은 선물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특정 단어나 제목이 꽂히면 책을 사는 편이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책은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 이 친구는 ‘문학’이란 단어에 꽂혔다. 최근 에세이 위주의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니 매번 비슷한 단어로 돌려쓰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 큰 고민은 글의 주제는 다르지만 내용의 틀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걸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문학이라 생각해 바로 집어들었다. 거기에다 이효성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라니. 네이버 평점이고 뭐고 찾아볼 필요없이 믿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효석님이 누구인지, 이 문학상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른다. 지금도 크게 궁금하지 않아 누가 알려주지 않는 이상 찾아보지 않을 듯하다. 언젠가 알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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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보문고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열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熱 열, 뜨거운 열 말이다.

어지간하면 ‘수험서/취업’ 코너는 피해간다. 열심히 발길질하는 백조들 사이에서 동떨어진 미운 오리 새끼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 썩 내키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있다보면 '내가 이상한가?'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열심히 일하지 않은 자는 문전박대를 당하니, 미래를 위해 성실히 일하라'는 교훈을 주는 동화, 그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베짱이로.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쓸쓸한 베짱이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겹쳐보여 불안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데, 열을 올려야할 시기에 열을 낮추는 건가. 물음표 투성이었다. 열을 감당하지 못해 넘치던 삶도 살아봤지만 내가 내린 답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며 마음이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열심과 열정을 가져다 쓸 때가 있겠지만 현 상태에선 아니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아까 전 쏟아진 물음에 의기소침해진 나에 대한 속상함이 컸다.

  

   수많은 책, 유명인, 명언 기타 등등등등등등등등등.

이미 앞서 누군가 중요하다 말하고 규정한 규칙과 기준에 이대로 따라야한다고 방향을 제시하고 그 울타리에서 커왔다. 그래, 그게 맞지. 맞지? 그렇지? 이대로 따르면 대체로 실패는 없겠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행복은 아니다. 알고있으면서 또 의심하고 말았다. 입꼬리가 솟았다가 내렸다가 다시 또 솟았다가 그 모습을 상상하니 바보같아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려다 코를 먹었다. 그 소리가 웃겨 이번엔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뭐든간에 열심히 하는 건 보는 사람입장에서 흐뭇하지만 한편으로 피곤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쓸데없는 과몰입과 감정의 오류에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낭비하느라 아무래도 나는 기절 직전일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기본 스탯이 체력 5, 공격력 3, 방어력 10, 운 5, 망상 100, 과몰입 100 정도로 나뉜다. 겉으로 티가 나지않을 뿐 지금도 머릿 속의 메인보드는 쉼없이 돌아가고 있다. 과열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선 고요하고 조용한 환경이 제격이다. 내가 교보문고를 찾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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