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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 Jul 16. 2022

초파리 사냥꾼의 깨달음

여름 앞에선 에어컨 앞이 정답입니다.


싫어할 수 없는 애증의 계절


다들 여름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나는 대프리카에서 서른 번째 여름을 보내며 허세와 뻔뻔함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춥다, 추워.' 호들갑을 떨거나 '와 대구 많이 죽었네?' 라며 비웃는다. 대구의 여름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허세따위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더위가 찾아올 때가 있다. 바로 오늘.


아스팔트의 엄청난 열기 '여기가 혹시 전자레인지 속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이대로 조금만  걷다간 펑하고 폭발해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카페로 도망쳤다. 콜드브루와 스콘을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봤다. 흰색 반팔 티와 청바지로 맞춰 입은 커플, 총총 뛰어가는 참새, 짜증을 유발하던 뜨거운 햇살은 건물 창문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풍경을 보고 어찌 여름을 싫어할  있을까. 싫다가도 좋은 좋다가도 싫은 애증의 계절이다.



초파리 사냥꾼


 잠시 여름을 즐기는 사이 누군가가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주인 허락 없이 스콘을 탐내는 초파리들.

'아 맞다, 너희도 여름을 알리는 녀석들이지?'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 건지, 자가 복제에 성공한 걸까? 사랑이 너무 넘쳐 24시간이 모자라게 번식하는 걸까? 온갖 짜증이 섞인 채 냅킨을 집어 들었다. 작고 재빠른 녀석들을 잡기란 쉽지 않다. 날개 달린 곤충은 3억 년 전 갑각류가 물에서 올라와 육지동물로 성장했고 적을 피하기 위해, 먹이를 잡기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펄럭이던 다리가 날개로 바뀌어 날개 달린 곤충이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생존에 유리하게 변이해온 그들을 잡기 위해선 인간의 사냥법이 아닌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자의 사냥법을 따라해보기로 했다. 관심이 없는 척하며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천천히 서서히 거리를 좁힌 후 사냥감이 반경 안에 들어오면 재빨리 낚아채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초파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통쾌함도 잠시 움직임이 없는 초파리를 보니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 어떤 삶을 살지, 비석에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지 생각에 잠겼는데 어쩌면 생존과 번식이 삶의 목적이었을 그들이 내 손짓 한 번에 힘없이 삶이 끝나버린 것이다.

여름철 불청객으로 불리며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들을 차마 좋아하진 못하지만 안타깝게 여기기로 했다. 나는 사냥을 멈추고 스콘 한 조각을 잘라 냅킨 위에 두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에서 '미운 초파리 스콘 하나 더 준다.'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냅킨 주위로 초파리가 모이기 시작했고 도망치기 바빴던 그들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만 움직였다.(물론 몇 마리는 빠져나왔지만) 어느새 나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들이 다가와도 전보다 신경쓰이지 않았다.


매년 찾아오는 여름에는 초파리를 '여름철 불청객'이 아닌 '여름철 사랑의 번식자'로 맞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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