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의 손맛

저는 낚시보다 중독성 있던데요?

by 루미


손맛이라 하면 모름지기 뜨개를 빼놓을 수 없다.


손맛이라 하면 모름지기 뜨개를 빼놓을 수 없다.

외할머니는 평생 시장에서 장사를 해오셨다. 국밥 가게 그리고 뜨개방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양손에 실과 바늘을 쥐고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 사이에 별명이 붙여진다. 국밥 가게를 하는 국밥 이모, 찰지게 욕을 하는 욕쟁이 할매, 딸의 이름을 붙인 성진이 이모 등. 중학생이던 나에게 그들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는 공기놀이보다 재밌었다.


시장의 쉼터이자 나의 아지트였던 뜨개방은 할머니가 아프시면서 성진이 이모가 빈자리를 대신해 운영하다가 가게를 확장하려던 국밥 이모에게 자리를 넘기게 되었다.

뜨개방은 사라졌지만 나는 꾸준히 뜨개를 하고 있다. 나의 뜨개 실력을 논하자면 잘하지도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은 평범한 수준이다. 뜨개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실력이 늘지 않았다.


2018년 겨울이 다가오기 전, 손목 워머를 직접 뜨겠다며 클래스를 신청했다. 매번 마무리가 부족한 나는 어김없이 미완성(90% 완성)인 채로 끝을 냈다. 방을 청소하다 구석에 놓인 짜다만 손목 워머를 보면 '아... 마무리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더 구석진 곳으로 밀어 넣었다.


2년이 흐르고 뜨개의 손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 뜨개 모임을 신청했다. 그곳에서 뜨개와는 조금 다른 '코바늘'을 처음 접했다. 뜨개 모임의 리더인 지영 언니는 코바늘을 잡는 방법부터 짧은 뜨기 등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손이 굳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한 코 한 코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짧은 뜨기를 끝내고 긴 뜨기 진도를 나갔다. 코바늘이 익숙해지며 손맛을 느끼던 중 지영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하루 만에 이만큼 진도 나간 거면 엄청 빠른 거예요. 영잰데요?"


고수 중의 고수들만 있던 외할머니의 뜨개방에서는 절대 들어보지 못할 말이었다.

사실 모임에 가기 전 엄마에게 "오늘 뜨개 모임 가는데 나중에 작품 만들어서 보여줄게"라고 하니 "너는 손재주가 없어. 시간 낭비하지 마."라고 하더라. 뾰족한 엄마의 말에 뜨개 모임을 가는 중에 이미 싫증이 나버렸다. 막상 모임에 도착해 코바늘을 배우며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니 답답함은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마 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따뜻하고 정겨운 외할머니의 뜨개방을 찾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엄마의 뾰족한 말 덕분에 뜨개모임이 내게 무엇을 주길바라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람은 아주 작은 무언가라도 바라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자유, 휴식, 친구, 돈, 실력, 인맥, 커리어 등)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멋진 뜨개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하는 공간이 필요한지. 뜨개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친해지고 꽤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식빵 수세미, 스누피 수세미, 회오리 수세미 등)


그리고 가장 이쁜 수세미를 엄마에게 선물했고, 귀엽다며 잘만들었다는 엄마를 말에 미소 지었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만약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곳은 외할머니의 뜨개방처럼 고수만 가득한 곳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초보시절은 있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다. 뜨개질이 아닌 코바늘의 세계로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디 자신감을 잃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손맛을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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