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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자질과 역량

실패한 대통령이 많은 까닭

by 최길성

대통령으로서 자격 요건은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국민들로부터 비난과 거부, 증오의 감정을 안겨준 대통령들은 국민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맞지 않게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가와 국민을 우선 생각하는 후보가 누구일까 고민해 보게 된다. 다시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실패한 대통령이 탄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절대 권력을 쥐고 국민의 자유과 권리를 억압한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무력으로 권력을 차지한 후 민주주의 발전을 후퇴시킨 독재자도 있다. 최고 권력을 남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다 쇠고랑을 찬 대통령이 넷이나 된다.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였다.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되는 인물들을 대통령으로 뽑힌 데서 시작된 비극이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자질과 역량을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모든 국민이 만족할 완벽한 대통령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공약을 지키더라도 공과는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온 국민의 평화와 민생, 복지 정책을 성실하게 실천했다 해도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입는 사람으로 평가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 국가 발전과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책임을 다하고 권한을 행사한다면 만족할 수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 정권 대부분이 그렇지 않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위임된 대통령 권한을 무소불위 권력처럼 휘둘렀다. 대통령의 권한을 특권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통치 수단으로 악용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살피는 데 사용될 권한을 엉뚱한 곳에 이용했기에 실패한 대통령이 된 것이다. 국민들이 위임한 권한을 머슴 역할로 실천할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나 왕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까닭이다.


대통령으로서 갖춰야 할 그다음 자격 요건이 청렴함이다. 성품과 행실이 바르지 못한 부도덕한 사람이 국민의 대표이자 국민성을 상징하는 대통령이 되어선 곤란하다. 정치적 역량이 아무리 탁월한 리더라 하더라도 대통령 자격으로는 미달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불행은 처세와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에서 비롯된다. 자리와 위력을 차지하기 위해 처세와 성취욕으로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최고 권력을 차지했을 때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다. 권력과 명예에 눈이 먼 사람을 선택했다가 실망과 상처를 남기고 만 사례가 MB다.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환상과 프레임에 갇혀 대통령이 된 사람이 MB다. 뉴타운이나 4대 강 개발 등 장밋빛 정책을 내세워 지지를 부추겼다.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사실조차 묵살하고 대통령으로 뽑아줬다. 필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기득권 세력과 보수 언론, 야권이 한편이 되어 선악조차 가려내지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펼쳐 그를 지지하게 만든 것이다. 마치 광신도 집단에서 자신들이 믿는 교주를 추대하는 선거쯤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 회사를 차려 돈 버는 대통령을 만들어 준 결과가 되고 말았다.


필자와 같은 6~70대 이상은 일제의 식민 지배 문화나 권위주의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암울한 시절을 살아온 이들에게 불안과 모순은 일상 언어나 다름없다. 특권 세력의 부조리와 부당함에 맞서 투쟁한 사람도 있지만 모난 돌에 정을 맞는 것이 두려워 순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친일과 반공주의자에 뿌리를 둔 기득권 세력과 보수 언론에 동조된 세대들이다.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난 산업화 시대에 향수를 느끼면서 흡족한 사람들이다. 비리와 부정에 눈감고 얼버무리는 정치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성숙한 선진 사회가 된 대한민국이다. 미성숙의 근대화를 살았던 사고와 삶의 방식이 발부리를 잡아채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한국사회를 한국인은 모른다. 국내 보수 언론에는 진보 정권이 잘하는 꼴은 찾아볼 수 없게 왜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진보'나 '개혁'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느끼는 기성세대들은 보수 언론이 하는 말만 믿고 싶어 한다. 4차 산업혁명의 AI시대를 살면서 산업화 시대를 외쳐대는 꼴이다.


2022년 3월 9일 대선이 몹시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쌓아온 선진 한국 사회가 퇴보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군부, 국정원, 기무사, 경찰 등 국가 권력 기관이 개혁을 이루었다. 독선과 부패한 권력 기관에서 벗어나 민주화된 조직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예외인 권력기관이 언론 권력이고 검찰 권력이다. 정작 가장 먼저 적폐가 청산되고 개혁했어야 대상이다. 불신과 부도덕의 온상인 언론과 검찰이 무풍지대가 되어, 민주 시민들을 향해 칼날을 세워 겁을 주고 있다.


검찰 조직을 장악한 검찰총장의 위력은 누구도 저항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낸 인물이 정의와 공정을 주장하는 화신처럼 나타나 민주시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의 등장에는 기득권 언론 권력과 보수 야당이 한편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불만과 불안을 느낀 민심이 그들의 선동에 가담하여 대선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선거에 불안을 느끼는 이유이다.


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전하다. 레임덕 상황에도 그에 대한 민심은 45%가 긍정적이다.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 있는 현상으로 기억한다. 재임 중 어려움과 위기는 여느 정권과 비할 바 없다. 코로나 재난과 경기 침체, 청년 실업, 부동산 정책 실패 등 힘든 역경을 숱하게 겪었다. 주요 방송과 언론은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 기사만 쏟아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크게 변하지 않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적폐 청산이 불발하여 조국 사건으로 이어지고 보궐 선거 참패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통령으로서 자질과 역량에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 후보 관련 포털사이트나 개인 방송의 댓글을 보면 'ㅇㅇㅇ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의 댓글이 수두룩하다. 콩깍지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무지한 광신도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지지하니 남도 막무가내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지지하는 후보가 어떤 허물이나 흠결이 있어도 괜찮다는 표현이나 다를 바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검증에 실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뜻한다. 후보를 맹신하여 비호하는 세력에 의해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면 불행한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기존의 실패한 정치가 재현되기를 유권자가 요구하는 셈이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치활동에서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나 자신의 인간다운 삶과 다른 사람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대통령의 역량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대통령을 뽑으려면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 더 이상 광신도들이 자신들이 믿는 교주를 뽑는 선거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그릇된 선택을 성찰하지 못하고 자신조차 속이는 정치의식에서 깨어났으면 좋겠다. 스스로 후회할 줄 모르고 자신은 예외일 거라고 믿고 싶겠지만, 누구도 예외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만큼은 믿을 수 있는 검증된 후보가 선택되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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