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보내는 백일 편지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쯤이면 할아버지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마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겠지. 내 인생에서 봄 여름은 지난 지 오래고 지금을 가을이라 친다면 분명 겨울이 되어 있을 거야. 어쩌면 추운 겨울이지만 추위를 모르는 존재가 됐을지 몰라. 그렇지만 할아버지 마음은 그대로일 거야.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테니까. 지금까지 내 인생도 그랬어. 나를 짝사랑해 준 사람들 덕에 살 수 있었지. 손자인 너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믿어.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네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너의 탄생은 65번째 내 생일에 처음으로 알게 됐지. 엄마 아빠는 로또 복권 속에 너의 임신 소식을 숨겨 놓고 깜짝 놀라게 했지. 할아버지는 복권을 긁고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처럼 기뻐하며 충격에 빠져들고 말았지. 기쁨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더구나. 그 사실에 놀라고 기뻐한 사람은 또 있었지. 정림동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랬고 큰 아빠가 무척 좋아했었지. 너의 이모와 이모부, 외삼촌도 그 소식을 듣고 엄청 기뻐하고 좋아했단다. 너의 탄생 소식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고 행운으로 여겼던 일이었지.
생명의 탄생처럼 기쁜 일에는 위험도 따르는 법이란다. 너도 예외가 아니었지. 엄마 뱃속 265일을 거꾸로 섰다 바로 섰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모두를 긴장시켰고 가슴을 태우게 했지. 뱃속의 너는 평소 아빠가 잠자는 모습처럼 아빠를 흉내 내며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지. 냉장고 벽에 걸린 사진이 그때 네 모습이란다. 아빠를 닮은 네 모습이 신기해 웃기도 많이 웃었지. 태어나기 전부터 너는 감동과 웃음을 선물이었던 거야. 가족의 모든 관심이고 화두였고 가족을 하나의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준 계기였던 거야.
2023년 5월 19일 오후 2시. 너는 세상 구경을 시작했지. 그 순간 모두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 네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모두가 실감한 순간이 아니었지. 그날 이후 100일 내내 네 삶이 그걸 증명해주기도 했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네 모습에 환호했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에 감격하기도 했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존재가 너라는 사실을 스스로 말해주고 있었던 거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네 스스로 알려주었던 거야.
세상 어느 것 하나 나보다 귀한 것은 없는 게 사실이다. 네가 없다면 세상 모든 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네 삶의 주인공으로서 너도 마찬가지지. 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의미 있는 존재이지. 무엇과 비교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되는 존재이지. 네 몸과 마음을 아껴 살아야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지. 백일을 맞은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짝사랑 편지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자신을 아끼고 살라는 말이 이기적인 존재만 살라는 뜻은 아니란다.
소중한 존재로 온갖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컸다고 자신 이익만을 위해 사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지. 온갖 정성과 헌신으로 너를 사랑해 준 부모님의 마음을 항상 잊지 말라는 뜻이지. 엄마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세상에 필요한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거란다. 너와 너의 엄마 아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몸과 마음 간수 잘하는 듬직한 아이로 크라는 거란다. 그렇게 사는 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기도 하지. 할아버지도 그런 너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복잡하고 힘든 세상이다. 폭넓은 안목과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지.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려면 현명한 지혜로 사고하고 행동할 줄아야 한다. 사유를 가까이하고 책과 친해져야 한다. 스스로 깨닫고자 끊임없이 경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네가 엄마 아빠처럼 독서를 좋아하고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이면 바랄 게 없다. 엄마 아빠처럼 마음이 착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손자였으면 바랄 나위 없겠다. 이도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지? 그렇게 자랄 자신 있지?
언제나 손자를 짝사랑하는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