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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 Jul 28. 2021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기 전에꼭읽어야 할 책

 톨스토이의 작품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저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 이었을까? 

첫 완독 후 책에 대한 나의 시선은 이반 일리치의 성취감을 넘어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라 단정지었다. 목표로 한 것이 있으면 어떤 방법이든 쟁취하고야 마는 강한 집념의 사람이자 가족들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 같았지만, 실은 본인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사람. 

 그가 살아온 방식은 그의 마지막 순간 고통과 싸워야 하는 고독감에서 깊이 느껴졌다. 처음 가볍게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한 단어는 이반 일리치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두 번을 완독하진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책을 펼치며 이반 일리치의 삶을 읽어갈 때에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였다. 1장에 나오는 장면 중에 이반 일리치의 사망으로 인해 고위급 인사들이 곧바로 생각한 것은 ‘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처음엔 다소 놀라웠다. 하지만 다시 이 문장을 읽었을 때에는 ‘고위급 인사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사회에서의 경쟁구조가 뚜렷이 드러나는 문장이었고, 이반 일리치 또한 그러한 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것으로 내 생각이 변화되었다. 


 마흔다섯, 아직 그 나이를 겪어 보지 않은 나 자신이 볼 때에는 열심히 본인의 성취를 이루고 인생의 여유가 조금 생겨나는 나이 일 것 같은 어쩌면 젊은 나이였다. 작가는 이반 일리치의 삶의 과정 중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반 일리치의 형제는 3명이며, 그중 둘째로 법률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평생 변치 않을 성품을 보여줬으며, 밝고 선량하며 사교적이면서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해내는 그런 성품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반 일리치의 모습에 가장 두드러지는 단어는 ‘자신의 의무’이다. 이반 일리치에게 자신의 의무란, “높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이라고 한다. 최고위층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이끌렸으며 그들의 습관이며 세상을 보는 시각을 그대로 따라 배우며 그들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갔다. 또한 이반 일리치의 법률학교 재학 중 역겨운 행동을 저질렀음에도 주위의 지체 높으신 분들도 그런 행동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반 일리치가 만들어가는 인생의 기준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조금은 작가가 생각하는 ‘최고위층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시각이 아녔을까 라는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 중 눈에 띄는 구절이 많았다. ‘그는 착실하게 근무하며 경력을 쌓아갔고 동시에 산뜻하고 절도 있게 즐길 줄도 알았다. 상부의 명을 받아 군 단위 지역으로 출장을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직위가 높든 낮든 가리지 않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예의를 갖춰 대했다. 그는 젊었고 즐겁게 노는 걸 좋아하는 기질이었지만 업무를 수행할 때는 극도로 조심스럽고 관료적이고 아주 엄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교 생활에서는 장난스럽고 기지에 넘치는 모습을 과시하면서 언제나 아주 너그럽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조금은 길지만 이반 일리치의 젊은 나날을 보여주는 구절로 누구보다 착실하게 살아온 ‘좋은 애’였다. 예심 판사가 되어서는 모두 존경했고, 권력을 절대 악용하지 않은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그가 가진 직급과 올라간 봉급은 어릴 적 주위에 많았던 ‘최고위층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을 보여줬다.

 이반 일리치는 특별보좌관 시절 춤을 자주 추었다. 춤을 추며 쁘라스꼬비야 표도로브나의 마음을 빼앗았고, 그런 이반 일리치의 모습에 사랑에 빠졌고,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예심판사가 되고 난 후에는 춤을 추지 않았으며, 품위 있지 않은 모습이라고 여겼다. 직업에서 오는 절제와 제약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도 생각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와 그의 아내의 생활에서 두 사람이 만나 살아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반 일리치의 어릴 적부터 세워진 ‘가치관’은  ‘높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으로, 새로운 가정에서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만 노력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책 속에서는 둘 사이의 ‘작은 섬’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때에는 아주 잠깐 평화가 온 듯했다. 둘 만의 작은 섬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 이해되지 않지만 인내할 수 있는 용기, 서로의 의견만 고집하지 않는 배려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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