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디 한번? 아님 말고!
‘어제부터 작년’이고 ‘오늘부터 새해’라는 구분이 의미 없어진 지 오래다. 올해는 시작부터 휘몰아치듯 시간의 파고가 덮쳐온다. 책방의 모임을 늘려가기 위한 판을 깔고, 협동조합의 운영체계를 잡아가기 위한 크고 작은 회의를 반복하는 중이다. 마흔 후반에 찾아든 일복이라니.
사실 겨울은 일 벌이기 적당한 시기는 아니다. 아이 셋의 긴 방학인 데다 고등학교에 올라갈 큰아이의 뒤치다꺼리가 조금씩 늘어가는 중이다. “딸 가진 엄마가 어딜 이렇게 다니냐“는 초등 막내딸의 볼멘 타박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린 지 오래다. 엄마의 출근을 고대하며 호시탐탐 농땡이의 기회를 엿보는 중학생 둘째 아이의 모습은 현관을 나서는 등 뒤로 무겁게 감긴다.
강의 비수기임에도 책 한 권 여유롭게 펼치기 어렵다. 눈 아프게 읽고, 머리 터지도록 영화를 봐야 새로운 한 해를 버틸 힘이 생길 텐데, 바뀌어버린 일상에 적응하느라 찢어지는 가랑이를 꿰매가며 움직인다. 나는 변화가 두렵고 불편하더라도 해왔던 일을 유지하는 게 익숙한 현실 안주형 인간에 가깝다. 육아는 정해진 루틴,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세 아이의 리듬에 나를 맞추면 만사 오케이였던 지난날은 이런 내 성향에 최적화된 일이었다.
프리랜서 강사라는 일은 부정기적이다. 불특정한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 정해진 기간의 일이 끝나면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라 관계에 대한 감정의 소모는 덜한 편이다. 그래서 바쁜 날만 넘어가면 내 가족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찾아왔고,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졌다. 차츰 적응해 갔다. 힘들게 만들어낸 경력이니 유지하는 게 당연했다.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과 카카오톡에 내 수강생들이 있었다. 지극히 안전했지만, 뭔가를 놓치는 게 아닐까 종종 의심했다. 2022년 종로구에서 진행했던 독서 토론 리더 양성과정 프로그램의 코스웍이 2년 만에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뒤풀이 모임 때 대면으로 만나자는 제안이 나왔다. 수강생 중 한 분이 혜화에서 북카페를 운영한다나. 소원책담과의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특정 장소를 둘러싼 공간과 분위기는 운영하는 사람의 마음을 닮았다. 소원책담과 그 공간을 운영하는 지기가 딱 그러했다. 강사-교육생으로 만난 터라 프로그램 중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드물었다. 두 번째 책방을 방문하던 날, 책방 지기는 나에게 글쓰기 수업을 제안해 왔다. 날 언제 봤다고, 의아했다. 더군다나 특정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운영해 달라니. 대면으로 진행되는 글쓰기는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어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행여 잘 운영되는 곳에 누를 끼칠까 걱정도 했다.
그럼에도 선선히 제안을 받아들인 건, 거쳐왔던 한겨레 문화센터도, 숭례문 학당도 그러했던 것처럼 아님 말고!라는 편한 마음이었겠다. 스스로의 성장서사를 적는 중이라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책이나 영화 속 인물도 변화를 꾀하고 특정 방향으로 움직였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다른 인물을 방해하든 말았든, 숨겨진 변화든 공공연한 전환이든 말이다. 배우는 삶, 공부를 나누는 삶은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그럴싸하게 포장도 했다. 고민 따위 접자! 길기만 했던 코로나도 끝나가고 있었다.